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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2


나란 사람은 본시 여름을 못 견뎌하는 체질을 타고 났다. 이렇다보니 혹서기에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꺼릴뿐더러 맥이 풀린 채로 하루를 소일할 때도 부지기수다. 혹자는 삼계탕이나 추어탕 또는 육개장과 보신탕을 한 그릇 비우면 여름을 거뜬하게 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여름을 잘 견딜 수 만 있다면, 그까짓 보양식 한 그릇이 대수랴마는 그렇다고 어디 더위가 한방에 가시기야 하겠는가. 올 여름의 경우는 영화관의 냉방시설이 제아무리 유혹한들, 그곳으로 가는 것 자체가 고문이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 어느 해 8월 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이 드문 것도 따지고 보면 순전히 날씨 탓인 셈이다.

사실 이번 여름이 유독 뜨거웠던 이유는 두 편의 영화가 극장가를 장악하면서 불러온 흥행전쟁에 기인한다. 80년 광주를 그린 [화려한 휴가]와 심형래 감독이 절치부심하여 야심만만하게 내놓은 [디 워]가 그것인데,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의 몰락이 안쓰러웠기 때문인지 몰라도 [디 워]와 [화려한 휴가]에 거는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영화판에 발을 담그고 밥을 먹는 사람으로서 한줌의 공동체의식이라고나 할까. 다만 바랐던 것은 가물어 메마른 땅위를 촉촉하게 적셔줄 단비였지, 무더위를 단숨에 날려줄 한줄기 소나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단비도 소나기도 아닌 열대성 난기류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들을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와 네거티브 마케팅으로 인해 시원하기는커녕 숨 막히는 호흡곤란이 유발되었다는 얘기다. 소위 영화 밥을 먹는다는 필자도 이러할진대 영문도 모르는 관객들이야 오죽했을까. 한쪽은 정치적 이해 득실차로 인한 격한 논쟁이 벌어졌고, 다른 한쪽은 영화 외적인 것, 이를테면 감독의 노고와 가치 있는 시도를 비평기준에 적용할 것을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초대형 블록버스터에 감독의 노고가 비평기준으로 상정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가운데 불거진 다양한 음모론은 상상을 초월할 뿐 아니라 실소를 금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치한 것들로 가득했다. 한쪽에서는 전사모가 부각되고 일해공원 상영을 시비 거리로 삼았으며, 다른 한쪽은 비판적 논객과 기득권 영화인에 대한 성토를 통한 마케팅이 이슈를 만들어냈고 이슈가 스캔들을 일으킴으로써 사태를 예의주시하던 부동층의 지갑을 열어 제치는데 성공했다. 이렇듯 기대감과 호기심과 의무감이라는 각자의 동기가 충돌하는 가운데, 한국영화가 물 만난 고기처럼 극장가를 접수하는 동안, 결국 관객만 이글거리는 아스팔트위에 맨발로 서 있는 격이 되어버렸다.

본지 필자인 이도훈의 지적대로, 2007년 여름의 극장가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화려한 휴가]는 80년 광주를 정면에서 그린 영화라는 장점을 완벽하게 살리지 못한 채 멜로 신파에 안착함으로써, 역사를 재현해내는 방법에 대하여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숙제로 남겼다. 그것은 30억을 들여 지은 금남로 세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알려주었다. 기억이 제아무리 공간의 수용을 통해 보존된다고는 해도, 급조된 공간 속으로 불러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미칠 파장을 우려해서인지 몰라도 공격적 마케팅에서 한발 물러난 모습을 보인 것은,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기획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디 워]의 경우는 심형래 감독의 노고와 땀의 가치를 과대평가한 집단이 벌인 몰지각한 행동으로 인해 영화적으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한 드문 사례일뿐더러, 네거티브 마케팅이 이뤄낸 성과 중에서 가장 나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다.

사실 이들 영화에 대한 숱한 논쟁이 오로지 영화의 흥행이라는 결과물로만 나타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애석해야 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비평적 가치를 잃어버린 영화는 극장에서 내려가는 순간, 사장되고 잊혀지며 자연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입으로 거론하지 않고 글로써 재평가 하지 않음으로 해서 담론의 장을 상실한 영화의 말로란 얼마나 초라한가! 마찬가지로 최근의 한국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예술도 시대의식도 감독의 자의식도 소멸되어 버린 채 흥행사가 쥐락펴락하는 천박한 오락상품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낼 정도다. 그런 점에서 언론과 네티즌의 심리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흥행몰이 중인 [디 워]와, [디 워]의 거센 바람에 맞서기 위해 여주인공을 지프에 태워 서울 시내를 도는 홍보전까지 고려해야 했던 [화려한 휴가]는 태생적으로 같은 형제로 봐도 무방하다.


영화란 관람할 때 마다 효용가치가 감소하는 소모품이 아니다. 관람자의 기억 속에서 남아 있다가 사적 기록을 거쳐 공적 역사에 편입될 때, 한 편의 영화는 가장 호사스런 대접을 받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고전이고 걸작이다. 따라서 좋은 영화일 수 록 인구에 회자되어 오랜 시간동안 개인의 기억을 지배할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 그 생명력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걸작이라 말하는 영화들이 만들어진지 50년 혹은 100년이 다 되가는 오늘 날에도 여전히 상영되고 이야기되며 비평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 수 록 그 가치가 더해져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 말이다.

평소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의 공세에 맥없이 떨어져나갈 때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작금의 한국영화가 만들어낸 현상은 오히려 걱정스럽다. 상영관 확보와 네거티브 마케팅이 영화흥행의 모든 것임을 보여 준 사례가 그렇고, 영화를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들이 빚어낸 불신과 극단의 병리적 현상이 그렇다. 모름지기 회심의 카운터펀치란 잽의 도움 없는 불가능한 법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한국영화계는 강력하고 예리한 잽을 단련시키기 보다는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시기를 찾는 데만 골몰하는 듯하다. 이미 산업이고 상품일 뿐인 한국영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관객을 등에 업고 승리의 나팔을 울려대고 있으니, 이 여름이 어찌 덥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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