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시네마테크에 관한 단상(1) 예술가는 4층으로 모인다

백건영



오래전 내셔널 지오그래픽 TV에서 ‘전갈’에 대한 이야기를 방영하는 걸 보았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생물중 하나로 전갈과 딱정벌레를 꼽았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60,70년대 핵실험이 한창이던 네바다 사막에서 핵 폭풍이 지나간 후 살아남은 생명체를 조사했는데, 결국 핵 방사능에서 살아남은 것이라고는 딱정벌레와 전갈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보여준 실험에서도 사각의 얼음 속에 전갈을 넣어 완전 결빙시킨 후, 사막위에 올려놓았더니 얼음이 녹으면서 전갈도 살아나 언제 얼음 속에 있었냐는 듯이 바닥을 활보하고 있었다. 미물의 생명력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인간의 생명력이야 오죽 강한가. 하지만 극장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러한 생명력에 비교될 만한 장소가 있으니 바로,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 자리한 어느 무도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곳에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4층 옥상에 나란히 자리한 1.2.3콜라텍은 참으로 질긴 생명력을 지닌 곳이다. 물론 90년대 후반까지 한 세대를 풍미했던 서울의 명소 중 하나였고, 소위 춤 좀 췄다는 사람치고 낙원동 1.2.3 카바레를 모른다면 간첩이나 다름없던 시절도 있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내부시설은 알 수 없으나 인구에 회자되던 곳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던 것이 시대조류에 발맞춰 콜라텍으로 바꿨으며 허리우드 극장의 명멸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성업 중이니 어찌 유구한 생명력이라 하지 않겠는가.

업소명이 바뀌었음에도 이름만큼은 여전히 1.2.3일 정도로 자존심도 있다는 말씀이다. 업소명이 원 투 쓰리? 그렇다! <바람의 전설> 속 제비 김수로가 외치던 “원 투 쓰리 다 포” 이 떠오르고 <쉘 위 댄스>에서 어느 샐러리맨의 무료한 일상을 바꿔놓은 작은 무도학원도 생각나는 원 투 쓰리이다. 그러고 보니 레슬링에서 원 투 쓰리를 치면 폴승인 것과 장안평 김일 체육관 꼭대기에 ‘무학성 카바레’가 있던 것은 무슨 상관관계란 말인가. 아무튼 이 낙원상가는 가히 예술가의 총본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3층까지 각종 악기사가 들어차 있어 유명 가수에서부터 밤무대 밴드마스터까지 온갖 음악인이 드나든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가는 예술영화관과 무도장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4층으로 집결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대한민국에서 아마도 가장 느린(언제부터인가는 음악까지 흐르는)엘리베이터(실제로도 걸어 올라가는 것이 빠르다)에는 두 부류의 사람만 탑승한다. '예술영화 보러 가는 사람'과 '예술 하러 가는 사람'이 그들인데, 이 두 부류를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연령대를 보고 복장을 본 후 대화내용으로 확인하면 끝이다. 정확한 구분의 오차는 0.1%도 존재하지 않는다.

4층에 내리면 그들은 서로 제 갈 길로 간다. 한쪽은 우측이고 한쪽은 좌측이다. 서로가 넓은 옥상에서 만나는 일조차 흔치 않다. 옥상은 언제나 젊은 영화광들의 차지다. 하지만 달리 보면 도심개발에서 밀리고, 춤의 대중화에서 밀리고, 춤바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4층 까지 밀려온 중년들. 그들은 이곳에서마저 젊은이들의 영화바람에 밀려 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엘리베이터와 옥상에서 또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까지 빨강바지와 유치찬란한 복장을 한 아줌마와 흰색정장에 검정남방을 입은 초로의 아저씨들의 행적을 입에 올리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즐기고 삶을 즐기는 사람들일 뿐이다. 예술영화를 즐기는 젊은이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급한 문화로 분류되어 엘리베이터서 조차 숨죽이고 눈치를 보는 그들을 보면서 아니, 글을 쓰면서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이제 그들을 영화를 사랑하는 젊은이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쳐다볼 것이라 다짐한다. 당당하게 춤을 추고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낙원상가에서나마 너그러운 시선을 유지하리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8,883
  • 6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