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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2

언제부터인가 감독의 데뷔작에 한하여 심한 비판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우리 속담에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안다’ 지만 한 편을 가지고 미래의 가능성까지 단정 짓는 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면서 과도한 권리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그 대상이 소위 가능성 있다고 선택된 인물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현재 시네큐브 광화문에서는 지난 2007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한국영화 중 주목할 만한 감독을 선정하여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기획된 ‘한국영화 감독 7인 전’이 열리고 있다. 초대장을 받은 입장에서 무심하게 넘길 수 도 없는 일이다보니, 눈에 띠는 몇 작품을 골라놓고는 기회를 엿보던 중 박준범 감독의 [도다리_ Dodari]를 보게 되었다. 부산에서 영화를 공부하였고 일곱 편의 단편영화를 찍은 박준범 감독은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다. 또한 오는 11월 열릴 서울독립영화제의 장편부문 출품작이기도 하다. 이렇듯 아직 정식개봉을 하지 않은데다가, 격전장에 뛰어들 영화에 대놓고 쓴 소리를 한다는 것부터가 개운치 않지만 어쩌리오. 요컨대 [도다리]는 신인감독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거칠지만 독창적 시선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친구와 우정의 사전적 의미에 과도하게 의존한 범작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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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 영화를 부산 판 [세 친구](1996)로 소개하는데, 솔직히 나는 이 표현에 동의할 마음이 없다. 우선,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와 궤를 달리하는 내러티브도 그러하거니와 [도다리]가 이야기하고자하는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 때문이다. 무엇보다 친구 관계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에 기대어 진행되는 영화에, 그들을 지배하는 당대 사회의 공기가 스며들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를테면 백일몽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일상을 소비하거나, 정체성 혼란에 빠지거나 가장 현실적이고 성실하지만 관계의 그물을 벗어나지 못한 채 도약에 실패하는 세 명의 캐릭터를 통해 그저, 잘 해보려고 발버둥쳤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단순구조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영화가 세상을 향해 소리치거나 문제의식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 친구가 꿈꾸던 삶과 그들이 발 디딘 세상 사이의 관계망을 감안한다면, 감독은 무언가 말을 했어야만 했다. 클럽에서 속절없이 발길질은 당하던 청국의 입을 빌리던지. 돈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우석과 상연의 입을 빌려서라도 그랬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감독은 [세 친구]와 [양아치 어조]의 캐릭터가 뒤범벅된 인물들에게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기를 권유하는 듯하다. 이들로부터 혈기방자함을 박탈해버리더니 거침없는 탈선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세상의 작동방식을 너무 일찍 속속들이 알아버린 젊은이들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상대에게 “징글맞다”며 도리질 칠정도인 인물들이 왜 친구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이 과정에서 그들은 무엇을 깨닫게 되는지. 최소한 이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각자 삶의 변화를 겪고 오해하며 좌절하여 급기야 패배하는 동안에도 이 사회가 그들의 삶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마치 패배주의가 우정의 메커니즘과 연대라도 한 듯 보인다) 그러므로 세상과 맞서 싸우기는커녕 지레 겁을 먹고 세상 밖으로 탈주할 생각만 하는 인물들이 친구라는 이름 하에 같이 어울려 젊음을 소비하는 영화를 [세 친구]와 등가로 놓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한 평가다. [세 친구]의 인물들은 최소한 세상과 맞부딪히기라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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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론가는 [도다리]속 캐릭터에 대하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모습”이라면서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고 감독을 옹호했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응에 철저하게 실패한 젊은이일 따름이다. 진짜 문제는 주저앉은 그들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하여 영화적 상상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지 시작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는 것만으로 희망을 암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신인감독에게서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무리임을 잘 알고 있다.


[도다리]의 경우 경성대학교 학내 벤처 ‘러프 컷’의 창립 작품인데, 이는 학교교육의 결과물이 관객과 만난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드는 것에 만족하고 과도한 의미에 취하다 보면, 완성도는 요원해질 수 있다. 서툰 칼질을 보완하는 것에 앞서, 좋은 칼을 고르는 눈부터 길러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날선 비판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캐릭터들이 살아 있다는 점과 세 명의 친구 중 우석 역을 맡은 김우석의 연기가 발군이었음을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앞서 언급했듯이 캐릭터들의 특질이 확연함에도 시대와 공간이 무의미해져버린 것은 감독의 칼질이 서툴렀다기보다는 칼 선택에서 실수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 작품에서는 진일보된 결과물과 만나게 되길 기대해 본다.

참고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다. 영화에 관계된 이들과 감독의 지인들이 다수 자리했던 것으로 추정됨에도, 적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무엇을 잘 못 본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 속이 복잡했다. 집에서 [세 친구]를 재빨리 돌려 본 후 머리 속이 정리되었다. 임순례의 카메라가 관조적이고 비관적 색채를 띰으로써 운명 같은 패배주의를 인물들에게 심었던 반면, 박준범의 시선은 이것과 정확하게 배치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 이는 신인감독임을 감안할 때, 영리하다 못해 섬뜩한 부분이다. 어쩌면 이것이 결코 못 만든 영화가 아님에도 [도다리]에 비판을 가하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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