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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스트


신재인 감독은 2002년에 내놓은 두 편의 단편, [재능 있는 소년 이준섭]과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일약 유명 감독으로 떠올랐다. 신재인 감독을 ‘영화제 킬러’라고 칭하는 것도 봤을 만큼 그의 영화는 유명세(?)를 떨쳤는데, 그의 영화가 상을 많이 탄 건 사실이지만 정말 킬러 어쩌고 할 정도로 상을 많이 탔다기보다는 영화로서의 재미와 신재인 감독의 재능을 증명하는 재치를 동시에 갖춘 수작들이었다는 편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신재인 감독의 특징이라면 이야기가 거침없이 진행하는 속도감, 재치 있는 아이디어, 식욕과 성욕 등 인간의 욕망을 권력에 의한 통제에 연결해 사유하는 행위, 종교적인 요소등이 있다.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은 이런 개성이 모두 녹아있는 단편이다. 주인공 이준섭은 비위가 좋아 무엇이든 잘 먹는 소년이다. 그는 좋아하는 소녀의 눈길을 끌기 위해 모든 걸 먹어치우기 시작하고 급기야 식량난 이후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먹을 수 있음을 가르쳐 구원자의 위치에 이른다.
 
언뜻 황당하게 들리는 이 이야기를 감독은 거침없는 비약으로 건너뛰며 이끈다. 비위가 좋아 아무 것이나 잘 먹는 이준섭의 재능은 식욕 즉 욕망을 상징하고, 그의 식욕이 반에서 화제가 되는 상황은 개인의 욕망이 사회의 규제를 넘어서는 일탈이 되는 순간을 말한다. 욕망이 금기를 초월하는 순간 이준섭은 사회의 호기심의 대상이자 경멸의 대상이 된다. 그가 완전한 금기마저 넘어서 세계 평화를 구원하는 결말을 통해서 개인의 욕망에 대한 사회의 통제를 관찰하고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을 상상해보는 감독의 취향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흥미로운 가정을 재미있는 이야기 안에 묶어내는 감독의 재능이 대단함도 알 수 있다.

그의 다음 작품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도 같은 경향 아래 있다. 이 영화는 식욕이나 성욕을 소재로 다루기보다는 사회의 통제와 종교적인 테마에 더 중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보다 더 재미있는 영화다. 물론 소재 자체는 훨씬 괴롭지만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이 마지막에 반전을 둔 장르 영화와 유사한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관객에게 더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한다는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진실에 모두가 빠져죽을 것이라며 병원과 법원과 교회를 오간다. 그는 입에서 물을 뿜어대고 사람들과 교회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없는 물에 잠긴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의문점이 생길 때 쯤 영화는 네러티브 없는 상징적인 장면들을 쏟아내다가 갑작스러운 반전으로 영화를 뒤튼다.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는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처럼 이야기의 속도감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다. 영화의 초반에 관객은 이야기에 압도되어 끌려가고, 이야기가 끝나고 상징적인 교회 장면으로 이어지는 순간 감독의 개성에 끌려가다가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 이야기를 구성한 감독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독립영화 중에는 감독의 재능을 증명하는 여러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는 개중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자랑한다. 그의 영화 제목에 들어간 ‘재능있는’과 ‘전진한다’라는 표현이 신재인 감독을 소개하는 수식어로 따라붙기 시작한 것도 이 영화 이후부터다.

단편들의 연이은 성공은 신재인 감독이 장편 데뷔작 [신성일의 행방불명]을 연출하게 될 기반을 마련해 준다.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장편영화인 만큼 더 많은 이야기와 많은 오가는 야심만만한 작품이다. 제목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패러디이다. 도입부에서 ‘가져다 쓰긴 했지만 오마주는 아니다’라고 대놓고 밝히고 있지만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부모 없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 표류하는 어린아이라는 설정이 같기 때문이다.

영화는 보육원에서 진행된다. 보육원의 원장선생은 식비를 아끼기 위해 먹는 것은 죄악이라고 가르치고, 아이들은 초코파이만 그것도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먹어야 한다. 주인공 신성일은 고아원 아이 중에서도 믿음이 깊은 아이지만 뚱뚱한 탓에 다른 아이들에게 몰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산다. 살을 빼기 위해 금식을 시도하는 그 앞에 다른 보육원에서 온 소녀 이영애가 나타난다.

원장은 보육원이라는 사회의 권력자이자 종교 지도자이며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치규범을 수단으로 식욕을 통제한다. 앞의 두 단편에서 등장했던 요소가 영화에 반복해 진행됨을 알 수 있다. 약간 다르다면 주인공인 신성일의 태도인데, 그는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의 이준섭이나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의 남자와 달리 체제에 순응한다. 신성일은 자신이 뚱뚱한 것이 아니라 못 먹어서 부은 거라고 말하며 단식을 시도하며 원장의 칭찬을 마치 어머니에게서 칭찬을 받는 것처럼 좋아한다.

신성일의 대척점에서 극을 끌고 가는 다른 두 인물은 이영애와 김갑수는 신성일과 다른 입장을 보인다. 이영애는 식욕의 부끄러움을 모르고 마치 선악과를 먹자고 아담을 설득하는 이브처럼 식욕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아이들에게 설파한다(그녀는 팜므파탈일까?). 김갑수는 보육원을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탈출 계획도 세운다. 이 두 아이가 보육원에 내분을 만들면서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흘러간다. 영화는 거침없는 태도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보육원에서의 장면은 흑백으로 촬영했는데 감정 없는 흑백 화면은 차갑고 남루한 보육원의 풍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원장이 음식을 먹는 것을 봤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뒤에서 벌어지는 원장의 베드신처럼 재치 있는 상상력도 동원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이야기 속의 식욕과 종교와 통제라는 소재가 모두 겹쳐지는 교회에서의 구토 씬이다. 원장은 이영애에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밥을 먹으라고 강요하고 그것이 추하고 부끄러운 일로 만들어 다른 아이들에게 구토를 유발한다. 남의 앞에서 음식을 먹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강제가 더해지는 순간 정말 부끄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성일은 교회를 떠난다.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후반부는 마치 예수가 광야를 헤매듯 신성일이 남루한 천조각을 두른 채 도시를 헤매며 겪는 일과 환상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영화는 끝을 맺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신성일은 정말 행방불명이 되며, 다른 중심인물인 이영애와 김갑수의 이야기는 중간부터 뒤로 밀려나 아예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속편 [김갑수의 운명]과 3편 [심은하의 잠적]을 예고하며 끝난다.

내가 본 DVD에는 이 두 편에 대한 구체작인 기획도 셔플로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영화로 만들어지진 못했다.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적은 제작비로 어렵게 만들어 졌고, 힘들게 극장개봉 했지만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진 못했다. 그래서 2편과 3편을 만들 제작비도 모으진 못했다고 들었다. 신재인 감독이 3부작을 통해 무엇을 보여줄 계획이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게 된 셈이다.

신재인 감독은 현재 다른 장편을 준비 중으로 알고 있다. 재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가 두 편의 단편과 장편 데뷔작으로 보여준 재능을 이후의 작품에서도 보여주길 기대한다. 기왕이면 좀 더 좋은 작업환경에서 영화를 만드는 행운도 따라주길 필자는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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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ifferenttastes.tistory.com BlogIcon 신어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그 감독 맞군요. 두번째 장편을 기대합니다.

    2007.09.07 15:13 신고
  2. Favicon of https://neoimages.tistory.com BlogIcon woodyh98  수정/삭제  댓글쓰기

    Cinerge님/ 운영자입니다. 네, 첫 장편을 본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죠^^

    2007.09.07 15: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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