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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돌아서면ㅡ 주로 극장에서 그랬을 때, 영화에 참여했던 모든 스탭의 명단이 올라가고 음악이 종료된 직후 사람들 무리를 빠져나오면서 귓구멍에는 이어폰을 쑤셔 넣는다. 그리고는 바로 생각하게 된다. 내가 방금 보았던 영화는 어떤 의미로 나에게 작용했으며 내 귓가에 들리는 이 음악과 상관없이 왜 나는 이런 이상하리만큼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종종 혼자 있을 때 작용하는 순간들이며 모든 영화가 이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가장 극단적이고 유일무이한 매체는 영화이며 동시에 근간의 삶을 명확하게 굴절시켜 표현하는 도구도 영화이다. 때로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보여 지는 이 정신없는 멜로디가 머리를 강하게 짓누를 때가 있다. 아니, 정정하자. 때로 라고 말하면 필시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니 때로가 아니라 거의 매번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다. 아무 것도 아닌 시간과 공간 내에서 나지막하게 울리는 소리를 따라 온 정신이 당연한 듯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무상한 경험들의 반복일 수도 있다. 한층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지금까지 열거한 모든 것들은 사실은 쓸모가 하나도 없는 주절거림에 불과하고 그 주절거림의 모든 이유는 내가 바로 오늘, 아주 오랜만에 허우 샤오시엔의 <쓰리 타임즈>를 보았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졌다. 꼭 어느 시점, 어느 순간부터 그러하자 라고 약속을 해서 입을 굳게 닫고 모두가 암묵적인 동의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누구도 말하지 않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야기들과 논의와 철학들이 오고 간다고 해도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그 자리에 약간의 동함도 없이 서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들 다시 돌아간다. 내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영화들은 너무나 당연한 듯,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쓰리 타임즈>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이름은 <최호적시광>, 그러니까 ‘가장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지시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1966년, 1911년, 그리고 2005년 각각 사랑과 자유와 청춘의 꿈을 화두로 걸고 진행된다. 하지만 모두의 에피소드에 공통적으로 걸고 돌아가는 뿌리는 사랑에 관한 단편들이라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분명 많은 것들이 굉장히 틀림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시대를 넘나든다.




이야기


1960 년대, 그러니까 아주 오랫동안 뿌리박혀있던 많은 사상들이 붕괴되고 그것은 또 다른 문명화를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급변하던 시대에 60년대는 정확히 일치해있다. 그럼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조금씩 더 발전됨을 느끼고 각박한 삶의 테두리 속에서 어느새 정말 ‘진짜’ 동화 같은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 비가 내리고,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과연 만날 수 있을지 그것 자체가 마음을 졸이게 만들고 그리고 약간은 수줍은 듯 어색한 웃음이 교차한다. 마침내 마음을 다해 서로의 얼굴을 흘끗흘끗 바라보던 두 사람은 약간은 격식을 차리며, 행여 입에 뭐라도 묻지 않을까 오랜만에 만난 우리, 각자의 모습에서 조금의 이상함이라도 나타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음식을 나눈다. 사랑의 마법이라도 하늘에서 부린 양 정확히 그때, 그 순간에 원했던 감정과 시간의 변화들은 흘러가게 되고 두 사람은 손을 꼬옥 마주 잡는다. 극 중 여자가 있는 힘을 다해 열고 닫는 문에서 보여 지듯 마치 커튼으로 가려진 바깥의 아름다운 풍경이 하늘거리며 비칠 듯 비치지 않을 듯 눈앞에 놓아져 있을 때, 사랑은 애절하지도, 애틋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사랑으로 변하고 이것은 진정한 ‘연애몽(戀愛夢)’으로 그려진다.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몽(自由夢)’은 막 변하려는 시대의 이야기다. 사회적 국가적인 갈등을 겪으며 조금씩 변화하려는 초년기의 선비와 기녀는 서로 사랑을 품고 서로를 바라본다. 모든 것은 아름다운 선율 속에 그들을 위해 흐르고 있지만 사실 진심으로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을 수 있는 공간은 아무 곳에도 없다. 선비가 이 곳에 들러서 이야기들을 할 때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손을 잡아 사랑을 고백하고 있지만, 한 번 어쩌다 어색하게 맞닿는 손동작 하나 없이 겉모습은 너무도 태연하며 너무도 차분하다. 선비의 머리를 빗겨주는 기녀의 빗은 떨리고 있으며 기녀의 애절한 노래를 듣는 선비의 눈망울은 그녀를 너무도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 질 수도 이루어 져서도 안 되는 순간이다. 그 어떤 표현의 수단이나 방법을 찾지 못한 체 두 사람은 다시 떨어지게 되고 이곳에 남은 그녀는 끝내 눈물을 떨군다.

어느 클럽, 한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온전히 자신의 노래에만 모든 것을 맡겨버린 이 여자의 주위로 한 남자가 돌고 돌며 사진을 찍어대고 여자는 흡족한 눈빛과 도도한 자태로 그를 유혹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연인이며 연인이 아니고, 사랑을 하며 사랑을 하지 않는 아슬아슬한 관계다. 여자는 각종 마약과 지친 몸으로 정신마저 잃어버리기 일보 직전이고 그 사이에 남자는 시종일관 같은 태도를 보여주지만 둘의 관계는 그야말로 ‘청춘몽(靑春夢)’을 꾸는 것처럼 위태위태하다. 모든 것이 풀리고 이념도 궤변도 모두가 뭉뚱그려져서 돌아다닌다고 해도 그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고소할 자 없는 2005년의 현재, 그리고 우리. 그들은 여전히 참을 수 없이 불안하다.

각각의 시대들은 처음과 끝이 상통하지 않으며 이 모든 공간들에서의 뒤틀림은 언제나 순간순간 절정과 좌절을 선사한다. 지금까지의 허우 샤오시엔의 작은 미학들은 <쓰리 타임즈>에서 사랑의 이름으로 재창조되어 펼쳐지고, 이것은 분명히 시대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뜨겁다. 두 번째 에피소드 ‘자유몽’에서 선비가 가버린 후 기녀는 선비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선비는 그녀에게, 함께 다니는 량 선생을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사회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에 싣는다. 그리고 함께 작은 시구도 곁들여 보내는데 이 편지를 보며 그녀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선비의 필체, 먹의 내음과 그의 손길이 담긴- 결국은 그가 만진 그 모든 것이 있는 편지를 어루만지며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그들을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울음보다는 어쩔 수 없이 감정을 숨기고 ‘보고 싶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조차 쓸 수 없는 선비의 찢어질 듯한 마음에 답하는 눈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청춘몽’에서의 여 주인공 칭은 영화 초반부에 그녀와 위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첸의 오토바이를 온갖 얼굴을 찌푸리고 머리가 깨질 듯한 표정을 지으며 타고 있다. 손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그녀는 그저 ‘괜찮아 졌어’라는 말을 그에게 내뱉는다. 영화 끄트머리, 칭은 첸의 오토바이를 여전히 타고 있지만 이제 정말 괜찮아진 것은 첸이 아니라 칭뿐이다. 그녀가 겪은 그 모든 애증과 갈등의 폭우가 이 때 이 순간 헬멧을 구겨 끼우고 첸의 오토바이를 또 다시 타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다. 허우 샤오시엔은 여전히 관미가 차려주는 따듯한 밥처럼 그립고 절절한,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꺼낼 수조차 없는 시간의 기억들을 말하고 있다.

당신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허우 샤오시엔의(그리고 차이밍 량의)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의 영화 앞과 뒤에 위치한다. 적어도 그의 영화에 있어 영화란 그저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현재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며 사실은 그의 창조된 현재는 주인이 되지 않지만 너무나 중요한 매체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시선으로 그의 영화를 바라보지만 이제는 그의 영화에서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허우 샤오시엔은 그저 좋다.

<카페 뤼미에르>의 지하철 소리, <비정성시>의 벚꽃에 관한 대사, 많은 것들이 이 이른, 혹은 늦은 새벽에 한꺼번에 물밀듯 숨결을 타고 들어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아침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나는, 정확히 ‘세 번’ 꿈을 꿀 것 같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너무도 편안하고 나른하고 아름다운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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