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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그의 아내가 배가 고파 눈물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평생에 과거 한번 보지 않으면서 글은 읽어 뭣하오?”
허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아직 글을 못다 읽었소.”
“그러면 장인바치질이나 해보지요?”
“그건 본디 배운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하겠소?”
“그러면 장사라도 해야지요.”
“딱한 말이오. 밑천 없는 장사를 어떻게 하겠소?”
아내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 밤낮없이 글을 읽어 배웠다는 것이 고작 ‘어떻게 하겠소?’란 말 뿐이오? 장인바치질도 못한다. 장사도 못한다. 그러면 도적질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오?”

연암 박지원이 쓴 『허생전』 의 한 대목이다. 갑자기 고전문학을 끄집어낸 이유는 천하를 주유하던 남편에게 감히 도적질을 권하는 허생의 아내의 모습과 어느 영화 속 인물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했기 때문인데, 지난 해 인디포럼 폐막작이면서, 2007서울독립영화제에서 Yes24 상을 수상한 김삼력 감독의 <아스라이>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대구지하철참사에 관한 단편 <나의 마음이 너에게 가 닿길>로 주목받았고 대구의 척박한 영화토양을 보여주는데 집중해온 김삼력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 싸이더스 FNH와 공동으로 만든 첫 번째 장편이다. 때문인지 <아스라이>의 배경은 대구단편영화제와 대구시청, 아양교, 신천강변 등 대구 사람들 눈에 익은 풍경들이고, 감독이 대학원 재학 중에 찍은 영화들 역시 대구, 경주 로케이션을 고집했을 정도로 그의 영화에는 온통 제 고향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근본이 안 되어”있고 “재능도 없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너무 하고 싶은” 한 영화청년의 성장담인 <아스라이>에서 감독의 페르소나 격인 주인공 상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무지 재능이라곤 발견할 수 없는 인물이다. 오죽하면 후배에게서까지 “이게 영화냐!”는 소리를 들을까. 상황마다 측은지심이요 안쓰럽기가 매일 높이뛰기를 해대는 개구리보다 천 배는 더 할 지경인데, 그럼에도 주위 시선에 아랑곳 않고 영화 만들기 또는 영화관련 일에만 매진하는 주인공의 뚝심과 열정은 탄복할 만하다.

다만 주목할 점은, 김삼력 감독이 상호의 우직함 못지않게 영리함까지 겸비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주인공 상호가 재능 없이 열정으로 버텨낸 인물인데 반해, 정작 <아스라이>는 김삼력의 재능으로 채워졌다는 말이다. 단편이었음에도 <나의 마음이 너에게 가 닿길>에서 보여준 (지하철 입구에서 시작되어 철도 건널 목 앞에서 끝나도록 배치함으로써 큰 울림을 유발시킨) 결코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닌 연출력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한편 <아스라이>에서 감독은 자신의 목소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동어반복’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작법이 무척 흥미롭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환경적 변화가 감지될 때마다, 핵심 단어인 ‘근본’ ‘재능’ ‘욕망’을 내세움으로써 오기를 촉발시키거나 탈주욕망을 잠재우게 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타르코프스키도 모르고 근본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느냐”는 영화 동아리 선배의 비아냥거림이 영상편집 사무실 장면에 이르면 “부모의 한자도 못 쓰는 근본도 모르는” 한심한 젊은이로까지 추락시켜 버린다. 게다가 영화제에 관한 서류를 관공서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또 한번 등장하는 이놈의 기본 타령은, 여기서도 어김없다. 뭘 해도 기본이 없으니 재능 또한 키워질리 만무할 터. 결국 “오빠, 영화 그만 하면 안 되느냐”는 모독은 “형, 재능 없다!, 때려 쳐라, 형, 영화 좆도 못 만든다.”는 후배의 반항까지 불러내기 이른다. 그러나 아직 남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상호의 ‘욕망’이다. 밥상을 엎은 아버지 앞에서도 그랬고 소주병을 집어 든 후배 앞에서도 오로지 “나도 알지, 나 영화 못 만드는 거” “그래도 하고 싶은 데 어떻게 하냐”는 말로 대신할 뿐인 자기도취형 뻔뻔함이라니. 근본과 재능의 결핍을 일거에 전복시키는 '욕망'의 힘은 또 얼마나 위대한가!

하지만 제아무리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해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지치기 십상인 법. 드디어! 상호에게도 상대적 우월감을 확인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취업난에 시달리는 친구들과 함께한 자리에서이다. 하나같이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가운데, 자신만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는 만족스런 미소와 득의양양한 표정에 보태지는 상호의 의미 있는 한 마디.

“다들, 열심히 해...”

이런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영화를 찍을 것이며, 그러니 어찌 이 녀석을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아스라이>를 통틀어 자신과 독립영화인을 위무하며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은 김삼력의 속내가 드러난 실로 빛나는 순간이다.

이렇듯 감독은 재능 없는 청년의 10년 영화인생을 통해 자신을 성찰함과 동시에 독립영화인의 애환을 담담하게 응시하는 한편, 소위 영화엘리트 집단의 무능과 허위를 풍자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따라서 상호가 관습이나 명분 따위에 아랑곳 않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묘사된 것은, 비단 정규 영화교육을 받지 못했고 재능이 부족하다는 캐릭터적 특징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어쨌든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영화제마다 영화를 돌리는 PD의 심정, 그야말로 배급이 아닌 보급차원으로 전락한, 김삼력을 비롯한 모든 독립영화인들의 한 때가 중첩되는 순간일 터이다.

그러므로 내가 <아스라이>와 김삼력 감독에 호감을 갖는 이유는 독립장편영화라는 것, 또는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온전히 제 고향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젊은 감독의 영화에서, 자신의 바쳐온 시간을 성찰하려는 의도와 소박하게 토로해내는 속 깊은 고백을 발견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요컨대 <아스라이>는 2007년에 만들어진 가장 좋은 독립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때론 편안한 마음으로 또 어떤 장면에선 달뜬 기분으로 응원해주고 싶은 그런 영화임에 틀림없다.

영화의 오프닝, 계단에 앉아 있는 상호의 등 뒤로 구슬이 굴러 떨어지고, 이어 스크린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마치, “열정 하나로 10년을 버텨온 나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초대에 기꺼이 응해도 좋으리라. 85분 동안의 아스라한 침윤을 경험할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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