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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9


손쉬운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일상과 사랑과 꿈을 그린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또한 극중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트뤼포의 여인들이 떠오를 수 도 있고, 왕가위 영화의 인물들이 연상될 런지도 모른다. 」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긴, 이렇게 피상적으로 영화의 내러티브를 말해봐야 도무지 구미가 당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들어가 보기로 하자.


여기 영화가 삶의 전부인 남자가 있다. 재규어 매장 앞을 기웃거리는 남자도 보이고, 변화 없는 생활에 지친 패스트푸드 점의 여직원도 있다. 그녀의 룸메이트는 점성술을 신봉하는 미용사다. 중요한 등장인물이 다 모인 셈이다. 희뿌연 먼지가 빛을 받아 흩어지고 내레이터의 극중 인물 설명이 이어지면서, 다비드 페라리오 감독의 [애프터 미드나잇_ After Midnight]은 이렇게 시작된다.

무대는 이탈리아의 북부 공업도시 토리노이고, 영화광들의 넋을 쏙 빼놓을 만한 국립 영화박물관이 주 공간이다. 피아트의 생산 공장과 국립영화박물관(Il Museo Nazionale Del Cinema)이 있는 도시답게, 차량전문절도범과 그의 애인인 패스트푸드 가게의 점원사이에 (자기의사와는 무관하게)끼어든 영화박물관을 지키는 남자가 등장한다. 모든 차를 훔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재규어만큼은 돈 주고 사야한다는 원칙을 가진 ‘엔젤’과, 영화박물관에서 고색창연한 영화의 향연을 만끽하면서 자기 세계에 빠져 사는 ‘마르티노’와 구질구질한 현실이 싫지만 탈출할 대상조차 모호하던 차에 뜻하지 않은 기회로 사랑을 얻는 여자 ‘아만다’가 그들이다.


요컨대 [애프터 미드나잇]은 세 남녀의 애정방정식을 통해 영화를 매개로 꿈꾸는 삶의 가치와 의미 있음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로부터 The Great Stone Face 버스터 키튼을 거쳐 찰리 채플린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고전시대의 흔적을 빼곡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방대한 영화자료가 보관된 국립영화박물관을 거처삼아 살아가는 마르티노가 아닌, 영화광들을 시샘하게 만드는 곳곳에 가득한 영화적 향취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삶과 진심어린 관계의 결핍에 지친 여인이 숨어들기에 이만한 장소가 또 있을까? 혼자인 줄만 알았던 그녀에게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마술적 리얼리즘이 피어나는 장소로서의 영화박물관은 얼마나 환상적이던가. 그러므로 공간이 인물을 지배할 때, 영화가 인물에 영향 끼칠 때, 그 인물이 적어도 영화에 관한한 완전한 풍요가 깃든 공간에 압도당할 때, 결핍은 사라지고 우연은 필연이 되면서 호감이 사랑으로 바뀌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초기의 영화에서는 “인물보다 풍경과 건물이 중요했다”던 내레이션처럼, 토리노의 거리와 영화박물관에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시작하던 영화는 과연 마르티노와 아만다 사이에서 피어나는 화학작용에 집중한다. 이는 영화의 현실재현 가능성에 대하여 영화 스스로가 증명해내는 독특한 방법이라 하겠다.

[줄 앤 짐]에서 잔 모로를 바라보는 트뤼포의 시선을 기억한다면, [애프터 미드나잇]에서 아만다 역을 맡은 배우 프란체스카 이나우디를 바라보는 감독, 다비드 페라리오의 시선 또한 주목할 만 하다. 고전과 현대의 여성상을 무력화시키는 보이시한 헤어스타일로 마르티노와 엔젤 사이를 유영하던 아만다의 당당한 여성성이 감독의 애정 어린 카메라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향해 무한질주 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수줍은 미소와 순수한 매력 속에서 두 남자가 안주하고 질투하며 깃털처럼 가벼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음을 말이다.


우리는 ‘영화가 무엇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 란 기술적 명제에 집착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대답을 해묵은 시대적 산물로 치부하거나, 그런 시절은 일찌감치 가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다. [시네마 천국]과 [몽상가들]과 [영화소년 샤오핑]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버스터 키튼의 팬이라면, 영화가 삶의 전부라고 믿는 이들이라면 또는 영화보기에 싫증난 사람이라면, 삶의 절망에서 새로운 희망이 시작됨을 믿는다면, [애프터 미드나잇]이 던져주는 화두 즉,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렴풋이나마 대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영화가 현실에 삼투하여 현실이 영화가 되어버리는 꿈같은 여정이 마침표를 찍을 즈음에 이르면, 극중인물이 보여주는 소심하지만 영롱한 비눗방울 같은 사랑에, 이 매혹적인 영화에 흠뻑 취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바로! 이 순간, 영화를 사랑하는 마르티노에게 내려진 소담스럽고 따뜻한 사랑의 축복이야말로, [애프터 미드나잇]을 빌려 영화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마술의 다른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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