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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들어가면서.

영화를 통해 사랑의 담론을 거론한 예는 많았다. 하지만 시간의 담론을 불러낼 만한 영화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삶 자체를 구성하고, 생멸을 넘어서는 무한공간 속에서 현실과 부딪히거나 이상을 꿈꾸는 시점은 언제나 시간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봄날은 간다]이후 오랜만에 시간을 끌어들여 사랑의 담론까지 형성한 영화를 만난다. 한재림 감독 연출의 [연애의 목적]이다.

필자는 이 영화가 유쾌하거나 불쾌하거나를 넘어서는 담론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글은 [연애의 목적]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성에 대한 사유와, 그들의 삶이 아픈 과거와 불신의 벽을 넘어 어떻게 현실화 되는지를 살피는 데 주력할 것이다. 또한 성 담론이 등장하는 한국영화 속 여성캐릭터를 끄집어내어 그녀들의 사고 뒤에 숨겨진 방어본능과 채홍의 그것을 비교하게 될 것이며, 시간의 구조 속에 담겨진 유림과 홍의 성향과 행동이 서로에게 전달되는 방식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은 개인적이고 더러는 공통적 경험과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와는 다른 개념으로 평가했음’을 밝힌다.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자. 유림은 자신이 내뱉는 대사처럼 대책 없이 밝히는 호색한인가? 채홍은 상상을 초월하는 앙큼함과 발칙함으로 무장한 부도덕한 정신이상자인가? 몸이 정신보다 우선하는 사랑이 가능한 것일까? 그들은, 섹스에 목매거나 내숭이나 떨면서 ‘사랑은 없다.’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쿨한 인생을 빙자한 자유연애주의자들일까?

도대체, 처음 본 여자에게 “젖었어요?” “나 지금 섰는데”라고 말하는 남자가 있을까?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차마 말은 못해도 그런 맘을 먹는 남자는 부지기수일 것이다. 어차피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에도 사대부들이 풍류를 빙자하여 음탕한 농지기를 서슴지 않았고 여염집 규수들의 규방대화나 기방을 드나들던 한량들의 질펀함은 지금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지 않았던가. 벤치에서의 짧은 대화를 끝낸 두 사람은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그들 앞에 점점 크게 다가오는 커다란 학교건물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들이 넘어야할 첫 번째 벽이다. [연애의 목적]의 오프닝이다.


그 남자 유림, 그 여자 홍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거니와, 처음 본 여자(남자), 좀더 정확히 말하면 스쳐지나가며 본 매력적인 여자(남자)와의 섹스까지도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저 맘속에 꽁꽁 가둬놓고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야 섹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 것이며, 여자 싫다는 남자가 또 어디에 있으랴. 남녀를 막론하고 성에 대해 한번 쯤 꿈꿔볼 만한 백일몽을 누가 마다하겠냐마는 배우자나 애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조심스럽고 눈치 채지 못하게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할 것이다.

영화에는 두 명의 남녀가 나온다. 유림과 홍, 정교사와 교생으로 만나 어쩔 수 없이 긴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이가 되었기에 그들은 매일 접하고 수시로 대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림은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다. 일단 필이 꽂히면 섹스를 하고 보자는 식이다. “나는 다른 조개를 먹고 싶은데”라고 태연하게 말하며 “우리 저기서 키스나 하고 갈래요?”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홍은 또 어떤가. 집요하게 치근대는 유림에게 “나랑 자고 싶으면 50만원을 내라”며 한 술 더 뜬다. 물론 그녀의 진심은 아니지만, 순전히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이상의 강수를 두는 여성의 대응방식은 자칫 자충수를 불러오기 일쑤이다. 게다가 자꾸 찍다보면 흔적도 남기 마련 아닌가. 급기야 도덕적이고 고상하며 한 때 거룩하다 여김 받던 스승들이 손에 손잡고 모텔을 드나들고 거침없는 연애질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달리 보면 유부남 유부녀도 아니니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게다가 영화는 대낮에 모텔을 드나드는 그들의 행위를 중요시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고, 눈떠보면 방안에 있거나 이미 상황이 종료된 상태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전 한국영화 속에서 찾기 힘들었던 독특한 캐릭터인, 유림과 홍, 이 두 사람이 동상이몽이 아니요 오월동주도 아닌 한 배를 타고 영화를 끌고 간다. 그들이 가려고 하는 종착점에는 [연애의 목적]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끝까지 대답을 유보한 채 관객 각자에게 답을 맡겨버린다.


외롭고 보수적인 기이한 청춘들

원 나잇 스탠드도 문제가 되지 않을 당대의 세상을 살펴보면 의외로 고루한 사람들이 눈에 띄곤 한다. 아직은 금기시 되어 부끄러운 이야기인 섹스에 대한 담론은 영화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적극적이고 도발적으로 성 담론을 모색해온 영화 속 인물들마저도 보수적인 성의식으로 자신을 묶어놓은 예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성해방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정작 쉽게 상처받고 오래 아파하는 그들. 쉽게 몸을 허락하고 아무하고나 뒹구는 것이 단순히 자유분방한 성의식에서 발로하는 것만은 아니다. 태생적으로 남을 쉽게 믿거나, 사랑 없이 살기 힘든 후천적 외로움강박증에 걸린 이들에게서도 이러한 성향은 쉽게 발견된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정신이상 증세와도 맞물린다.

그런데 문제는 유림이 실제로는 고루하고 보수적인 시각을 가졌으며 오히려 홍이 발칙한 여자라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 자신이 좋아했던 조교에게 상처입어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게 된 홍은 밤이 두려워 잠을 못 이루고, 불안한 환경에서 탈피하고자 절절한 사랑 없이도 안정을 택해 의사인 약혼자에게 인생을 맡기기로 한다. 그리고는 유림과의 섹스에서 죄의식 없이 깔깔대며 쾌락을 한껏 즐긴다.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여자, 유림보다 오히려 쿨한 구석이 있다.

유림은 외국학자의 연구결과를 늘어놓으면서 ‘사랑이 가져오는 떨림의 유효기간은 3개월’ 이라고 말하고는 사랑이란 별것이 아니니 그저 마음 내키면 같이 자고 쿨 하게 지내는 것이 낫다고 홍을 유혹한다. 홍은 그렇다 치고, 이런 남자가 보수적이라니! “5초만 넣고 있을게요.”라고 말하는 남자가 제 정신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귀엽고 뻔뻔하면서 사실은 나약한 남자다. 한없이 약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남자. 사랑이 뭔지를 모르고 사랑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조교의 신상조사를 자신의 여자에게 부탁하는 어리석음이나, 하필 애인의 선배인 국어선생에게 변명하는 유림의 모습에서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순진한 남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교육청 조사도중 폭탄선언을 한 홍에게 다가가려던 안타까운 몸부림과 그 눈빛을 기억해보라. 게다가 다시 만난 홍에게 “넌 나쁜 년이야!”라고 윽박지르면서도 결국 여자와 한 이불 속에 있음으로 해서,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용서되는 남자가 유림이다.(물론 그가 그녀의 진심을 알았기에 용서가 됐을 수 도 있다) 또한 보편적 남자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 남자의 냄새가 좋고 편안해서 그의 품에서야 비로소 잠들 수 있는 홍이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그녀를 좋아하는 유림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요 천생연분인 것이다. 당사자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그들의 행위가 발칙하고 도발적으로 보이기는커녕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이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보수적이고 허약한 정신이상자들이 깔끔한 섹스나 트라우마에 푹 빠져 스크린을 활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쿨함과 아픈 과거를 버리고 다시금 연애에 빠져들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은 몸으로 먼저 상대를 느꼈고, 그것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홍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몸이 정신을 우선하는 사랑이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섹스 혹은 몸의 기억

[그랑블루_ Le Grand Blue]에서 엔조는 말한다. “17살 때 사랑에 빠져 그녀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어. 그런데 2년이 지나니 이름도 기억나지 않더군.” 처음만나 사랑을 싹틔우다가 자연스레 섹스에 이르는 것이 적절하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섹스를 먼저 하고 묘한 예속감에 젖어들어 관계를 지속하면서 사랑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섹스를 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상당히 중요해 보인다. 진실한 사랑에 대해 논하고 순결과 정신적 교감을 중요시 여기는 인간들일 수록 사랑에 대해 고루하고 이기적이며 의외로 몸에 대해 집착하고 몸의 언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몸의 율동이 서로에게 쾌감을 준다고 해도 자신이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랑,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섹스 속에 사랑이 있을 수 없고, 그 섹스가 온전히 만족될 수 없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한결같이 여자의 마음을 섹스와 연관지어 읽어낸다. ‘몸을 허락했느냐 아니냐.’로 구분지음으로써 애정과 기억을 송두리째 말살시킨 채 몸이 이동한 경로를 추적하는 데만 집중한다. 또한 섹스 유무를 소유의 존재증명과 결부시키는 어리석음도 가지고 있다.

홍의 약혼자는 만나서 함께 하기 좀처럼 힘든 유형의 남자다. 정신적 사랑은 가능할지 몰라도 건강한 여자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해 보인다. 홍은 섹스기피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즐기고 그 맛을 아는 여자다. 자기의 여자를 만족시키지도 못하는 홍의 애인 역시 섹스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 있어 섹스란 상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일 따름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절교를 선언하는 그녀에게 긴말을 생략한 채, “잤어?”라고 만 묻는다. 누구를 좋아하더라도 섹스만 하지 않았다면 괜찮다는 논리이다. 반면에 유림은 고결하고 애틋한 정신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지 몰라도 편안한 체취와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여자를 사로잡을 줄 아는 남자다. 게다가 귀여운 구석도 있다.

「이성(理性)적인 계기로 피어오른 사랑이란, 때로는 감정적 육체적 경지로 이르지 못할 때도 있다.」던 미셀 푸코의 말을 기억하자. 물론, 홍이 유림의 몸만을 기억한건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여자라는 틀에 묶여 적정한 선에서 방어와 허용을 거듭하면서 머뭇거리고 있다. 적어도 오랜 시간의 굴레를 깨버릴 확실한 모티브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의 자유를 표방한 계산된 자기방어

영화 속 여자들의 성 담론은 지극히 자기 방어적 형태를 보여 왔다. 성의 파격적 담론으로 화제를 불러왔던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성에 대해 가장 자신 있게 얘기하던 순이가 정작 남자경험이 전무한 여자였다는 아이러니를 기억해보자. 또한 “따뜻하고 정열적인 섹스는 없는 거냐?”라던 자유주의자 호정 역시 유부남과의 간통에 휘말리자 “난 정말이지 상처받기 쉬운 여자가 아니었다구!”라며 자기변명에 몰두한다. 또한 [싱글즈]의 동미는 “사랑은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난다.”거나 “니가 내 맛을 알아?”라고 거침없이 말하지만 아이를 갖고는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미혼모의 인생을 시작한다. [아메리칸 뷰티]속 화려한 남성편력을 떠벌이며 자랑하지만 정작 숫처녀였던 안젤라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듯 영화 속 여자들이 드러내는 성적 자신감으로 포장된 이중적 자아는, 외부의 침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겉으로는 강하고 성에 대해 도가 튼 듯 말하지만 그녀들은 결국 남자의 따뜻한 품과 제도권안의 보호가 필요로 했던 것이다. 애정을 가득 담아 안아주는 손길을 느끼고서야 섹스에 응할 수 있는 소심함으로 인해 결코 성의 해방주의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홍이 ‘돈 안 받고는 안 한다’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대체로 이러한 여자들의 성향은 겉으로는 사랑을 불신하는 듯 하나 절대적인 사랑신봉주의자이며 백번의 건조한 섹스보다 단 한번의 열정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버림받은 사랑에 대해서 처절하고 파멸찬 복수를 해대는 것도 이런 부류의 여자들이다. 대중은 그런 여자들에게 ‘팜므 파탈’혹은 ‘요부’라는 이상한 명찰을 달아주기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홍 역시 전에 있던 불미스런 일로 인해 팜므 파탈의 성격을 부여받고 있다.

여기서, 유부남 조교를 스토킹하고 유림을 유혹해 욕정을 채우고는 기어이 파멸로 이끄는 여자로 왜곡되어 가는 홍의 이면에 자리한 말 못할 기억과 아픔은 사랑을 시간의 담론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녀의 방안에서 흘러나오던 녹음기의 목소리는 전율 넘치는 스릴러의 한 장면과 흡사하지만 그것은 공격이 아닌 자기 방어적 태도일 뿐이다. 게다가 유림에게 “정신병원에 같이 가보자”라고 할 정도로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없다. 물론 그녀를 정신병자라고 단정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조교와의 불륜도, 유림과의 연애도 모두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내놓고 방기해버린 결과로 벌어진 것들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사고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그 단초는 유림과의 만남이며 그들 사이에 섹스가 개입되고 있음이다. 아픔을 불러온 과정의 반복 속에서 홍은 결단을 내려야한다. 동등한 위상으로의 재정립 혹은 수학여행지에서 벌어진 기억의 폐기를 위해서 유림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만약 눈물이 감정의 극단적 고양 상태에서 치솟아 오르는 존재라 할 때, 지금 내가 흘리는 눈물 줄기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깨달음의 사유 과정(이성)이 분노와 암담함의 카타르시스(감정)로 극적 변환을 이룬 것인가? 교육청 조사 씬을 뒤로하고 유림은 쓸쓸하게 퇴장하면서 영화가 반전드라마로 변질되려는 찰나이다. 그들은 지루한 줄다리기를 끝내고 마침내 연애의 목적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과거와 현재가 나누는 사랑의 담론

(가장 앞에서 논했어야 할)이야기를 맨 뒤에 배치하면서 긴 글의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사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로부터 인간의 기억은 장소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시점(과거 현재 미래)은 모두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며 현재의 현재는 ‘직관’이고, 미래의 현재는 ‘기다림’이다. 그러하기에 현재와 과거를 구분지어 두 남녀의 캐릭터를 분석하는 일은 자못 중요하다. 이것은 (‘어떤 방식을 통해 그들이 연애라는 한 배를 탈 수 있는 가‘라는)미래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홍은 철저하게 과거에 집착하는 여자다.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고, 남자를 믿지 않는다. 그녀의 집은 추억의 집합소이다. 옛 사랑과의 통화내용이 담긴 녹음기, 빛바랜 사진들, 그녀가 한 때 그렸던 그림들이 그러하다. 그녀에 대해 영화가 알려주는 정보 역시 과거에 일어난 이야기 뿐 이며 핸드폰 속 남겨진 수신부호 역시 모두 과거형이다. 게다가 먼저 전화를 걸지(거는 장면을 보여주지)않는다. 따라서 수동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홍의 현재모습은 영화 속 어디에도 비춰지지 않는다. 수업하는 장면 하나 없이 철저히 과거 속에 유폐된 그녀는 유림 앞에서만 현재형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유림과의 만남은 홍의 삶을 바꿔놓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유림을 알게 된 이후, 홍의 현재는 언제나 기억되는 현재(과거)와 상충되며 마찰을 빚는다. 집요하게 그녀 주위를 맴도는 과거를 물리쳐야 하고, 아픈 기억을 떨쳐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그녀에게 현재의 현재란 존재할 수 없으며 유림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홍에게 있어 유림은 현재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림은 현실적인 인물이며 현재에 모든 걸 건 사람이다. 섹스를 하고 싶어 몸부림치지만, 그것은 바로! 오늘 이 순간이어야 한다. 직관에 따라 움직이고 오늘에 충실하려는 사람이다. 섹스가 아니면 키스라도 해야 하고, 모텔이건 차 안이건 가리지 않는다. 보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자동차 백미러를 부숴서라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기다릴 줄 모르고 성급한 남자가 유림이다. 그는 홍의 전화번호 속 수신내용을 실수로 지워버린다. 사실 먼저 전화 걸 일이 없는 그녀에게 그다지 필요한 기능도 아니다. 이 장면은 영화문법이 극단적으로 사용된 영리한 연출이다. 유림이 전화번호를 지워버림으로써(과거의 현재를 없애버림으로써) 그녀를 현재만 남겨진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지도 못한 그녀가 작위적 방법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는 폭로를 이용한 반전을 결심하게 되고 이 사건을 통해서 유림과 홍은 상징적 동격이 된다.

영화가 좀더 진행되어 그녀가 약혼자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에서 이르면 처음으로 홍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 과거의 현재와의 단절을 결심하는 대목이다. 과연, 그녀는 약혼자를 만나 절교를 선언한다. 미적거리던 홍이 적극적으로 현재를 수용하면서 오히려 유림을 밀어붙이는 종반부에 이르면 실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과거의 현재를 극복한 그녀는 “내가 책임질게” “나 이제 잘 자”라고 말하며 얄밉도록 생글생글 웃어댄다. 참으로 무서운 여자가 아니던가. 모질게 괴롭히던 과거와 안녕하고는 바로 돌아서서 현재에 몰두할 수 있는 여자. 그래서 정작 발칙한 쪽은 홍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연애의 목적]은 과거의 아픈 기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홍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남자 유림을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사랑의 담론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의 현재와 현재의 현재가 만나 미래를 엿보는 이러한 방식은 일견 복잡하고 어렵게 읽힐지는 몰라도, 대다수 영화에 관습적으로 쓰이고 있는 설정중 하나이다. 이제, 솜에 물이 스미듯 두 사람에게 감정이 생기면서 섹스가 연애로 발전하기 이른다.


나가면서.

[연애의 목적]은 두 남녀의 사랑과 애증의 이야기를 적나라한 대사를 통해서 흥미롭게 끌고 가는 멜로영화이다. 요컨대 영화는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와, 사랑이 필요 없는 남자가 만나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연애의 목적이 결국에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 하고 있다. 여우같은 여자와 늑대 같은 남자의 치열한 연애질이 여과 없이 쏟아내는 적나라한 대사 속에서 펄떡거린다. 거리낌 없이 여관을 들어가던 남과 여. 그들은 자신들이 연애를 시작했던 상징적 장소인 모텔을 나와 첫눈을 밟고 걸어간다. 첫눈을 밟던 홍의 발에 맞춰진 카메라는 그녀가 과거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현재를 밟고 미래로 향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쿨한 섹스와 아픈 사랑을 뒤로하고 목적 있는 발걸음을 딛는 그들은 연애에 성공할 것인가. 자못 후일담이 궁금하다.



후기 - 연애의 목적 혹은 싸이더스의 목적

한 때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싸이더스 픽처스는 2004년 후반기,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외면당했던 [역도산]에서부터 주춤거리기 시작하더니 야심작 <남극일기>마저 기대이하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리곤 2005년 여름 [연애의 목적]을 통해서 원기회복을 모색하게 된다. 물론 결과는 원기회복 못 했음이다. 어쨌든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거쳐 [싱글즈]에 이르기까지 이미 성 담론에 관한한 진일보 된 영화를 기획. 제작했던 경험을 가진 싸이더스가 전작들과의 차별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의도는 관객을 움직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진부하게 섹스를 논하기보다는 노골적이고 유쾌하면서도 현실성 짙은 성 담론으로 관객에게 어필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굳이 필요하지 않은 설정들이 눈에 거슬린다는 점과 필요이상의 노골적인 대화는 유사한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감독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여겨진다. 이를테면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나 날리면서 쉽게 자고 쉽게 헤어짐이 쿨한 것’으로 읽혀진 것은 관객의 보편된 정서와 연출 사이의 괴리감 탓으로 보인다는 것. 그러니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이다. 결국 시원한 감칠맛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영화가 불러온 개운치 않은 뒷맛이라니! 이런 와중에도 영화 내내 흐르던 스페인풍의 기타소리는 기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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