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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험한 약 이야기

필진 칼럼 2007. 8. 8. 17:02 Posted by woodyh98
2007.08.08



주식시장에는 소위 '작전'이라는 게 있다. (아는 분은 아실 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테고) 작전 걸린 주식을 앞뒤 정황도 모르고 매수하는 날에는, 쪽박이 바로 눈앞이다. 그건 그렇고, 영화 한 편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니, 머리나 식힐 겸 옛날얘기 하나 할까 한다.


옛날 옛적, 그러니까 Once Upon A Time In Korea 쯤으로 해두자. 홍길동이란 사람이 좋은 신약개발과 관련한 사업계획을 가지고서는 여기저기 투자자를 찾아 다녔더랬다. 사실 그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인데, 미대를 나온 사람이 신약개발을 하겠다고 하니 아무도 돈을 대려는 이가 없었다. 그래도 홍길동은 자신이 아니면 이 약을 누가 개발 하겠는가 라는 신념으로 오랜 시간 이 사업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조금씩 십시일반으로 창업비용을 모았고, 신약 개발비용을 만들어 드디어 약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약은 만들었으나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홍보도 해야 하고 광고도 해야 하고 돈이 이만저만 드는 것이 아닐 터. 다시 이 분야의 전문회사와 제휴를 맺고는 시판을 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홍길동을 도와준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부터 창업자금을 대준 사람, 운영비를 댄 사람, 직원 월급을 보태준 사람 등등. 기타 등등. 결국 이들의 속마음은 약이 나오면 대박일 테니, 홍길동이 그간 입은 은혜를 다 갚을 거라 믿고 있다. 아니, 만약 대박이 안 나오면 억지로 대박을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문제가 생겨버렸다. 식약청에서 이 약에 대한 시판을 허가하기는커녕 자꾸 문제 삼으려만 하고, 국내 유수의 제약회사와 약학박사 등 전문가들은 이 약의 효능이 터무니없다는 식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설사가상으로 약 케이스에 태극문양을 그려 넣은 것을 유치한 상술이라고 문제 삼는 이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홍길동은 궁지에 몰렸다. 정작 문제는 홍길동 자신뿐만 아니라 홍길동에게 돈을 댄 사람들이 '잘못하다가는 본전을 날리게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만 방법은 하나 뿐, 약을 잘 팔리도록 소비자를 부축이면 될 일이다. 이때부터 홍길동은 수족이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 남의 돈을 빌려서 일을 벌였으니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

결국 홍길동에게 투자한 이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각자 가능한 인맥과 연줄을 총동원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이 약의 영험함을 알려야 했다. "이 약이야 말로, 고매한 약학자나 제약회사도 포기한 것을 한 남자의 집념과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 약은 세계 제약시장을 겨냥한 것이기에 한국의약품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애국자의 신약개발기"와 “남들은 케이스에 연예인 사진을 넣을 때, 우리 홍길동은 나라를 생각해서 태극문양을 넣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 냐는 구호가 입에 입을 통해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게다가 홍길동은 TV에 출연하여, "내 약이 비슷한 효능을 가진 약 중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베링거 인겔하임이나 글락소나 화이자의 것이 뭐가 더 나은지 모르겠더라. 그것들을 써 보았지만, 특별히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못 느꼈다. 특히 글락소의 것은 마신 후 1시간도 못 지나 기분이 안 좋아져서 토해버렸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약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홍길동에게 돈을 댄 모든 이들이 덤벼들어, 집요하고도 무섭게 약 홍보에 나섰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자기 돈이 걸려 있는 일이기에 당연한 집단행동이었다.


홍길동이 만든 약을 써보지 않은 이들마저, 국내제약회사가 나쁜 놈들이고, 약학자나 의약전문가들이 합세하여 홍길동을 죽이려 한다고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홍길동의 약은 졸지에 애국심의 산물로 둔갑하였고, 이 값싼 온정주의와 애국심이 물결치듯 세상을 배회하는 동안, 홍길동에게 돈을 댄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래....여기서 조금만 더 몰아 부치고 조금만 더 팔면, 내가 투자한 돈은 되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약이 좋건 말건, 효능이 설명서대로 건, 아니건 내가 무슨 상관이야. 나는 내 본전만 찾으면 그만이지. 어차피 홍길동 그도, 인류의 생명을 위해서라거나 암의 치료를 목적으로 약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말 한 건 아니잖아? "이 약은 복용하면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운 기분을 얼마간 유지시켜주는 것일 뿐" 이라고 했으니까. 뭐 특별히 문제될 게 없지.


효능으로 구분하자면 약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비타민과 당의정, 몸에 좋은 것은 당연히 비타민이지만 약효가 더디게 오는 반면, 당의정은 즉각 효과를 볼 수 있으나 효능의 지속도 순간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다만 좋은 약이어야만 잘 팔리는 것도 아니고, 잘 팔리는 약이라고 좋은 약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돈이면 없는 약효도 만들어내고 무료 복용행사를 통해 소비된 약도 매출로 잡아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외형 부풀리기, 분식회계가 별건가?

어쨌거나, 홍길동에게 돈을 댄 투자자들. 그들이 누구이고 몇 명인지, 또 그들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큰 돈을 댄 이들은 제 2 금융권(정확히 얘기하면 과거 사채를 양성화하기 위해 만든 상호신용금고와 큰 차이가 없는)이라는 것 뿐. 그리고 홍길동이 개발한 신약이 더 없이 영험하다는 소리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이상한 현상만이 목격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덤으로 하는 이야기)
1. 돈거래라는게 그렇다. 100만원 빌려간 사람에게는 큰 소리 쳐도, 1억 빌려간 사람에게는 쉽게 큰소리 못 치는 법이다. 게다가 이자까지 약속된 거래관계는 좀 더 복잡해진다. 이를테면, 사업을 위해 1억원을 1년간 빌리기로 하고, 이자(수익률)10%를 보장했다고 치자. 1년 뒤에 변제할 금액은 1,100만원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간을 넘겨 2년 되고 3년, 4년, 5년이 흘러가면 어떤 정신 나간 채권자가 10%의 이자만 받겠나. 당연히 이자율은 올라갈 터이다. 원금보장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당신이라면 사업을 위해 투입한 금액을 1억원이라고 하겠나? 아니면 그간 지불했거나 앞으로 갚아야 할 이자까지 포함할 텐가.


2. 평론가(놈들, 새끼들로도 불린다)와 충무로가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해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라고들 한다. 그런데 ‘누구나 다’아는 얘기를 대체 나는 왜 이제껏 몰랐던 것일까? 여기서 영화담론의 구조적 문제가 발견된다. 대체로 현재 영화의 지배적 담론은 인터넷을 통해 생성되고 유포되는 행태를 띠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무런 목적 없거나 특정 목적을 가진 관객이 특정목적과 특정집단을 연계시켜 주장한다고 할 때, (이때 평론가나 기자 등 기존 누리꾼들 눈 밖에 난 이들이라면 파급효과는 만점이다.) 뜻밖에도 이런 얘기가 이슈화 되고 유포되는 과정을 통해 영화와는 다른 식의 해석과 담론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다수의 동의와 지지를 얻게 되면, 기정사실화 되며 나머지 소극적 관객들은 그것에 수동적 동조자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더욱 큰 문제는 마치 이런 주장이 정교하고 명쾌할 뿐 아니라 난제를 해결해낸 것처럼 여겨지는 일련의 병적 징후들이다. 따지고 보면 해묵은 이야기고 철지난 논쟁거리의 답습일 뿐인 것을. 그러므로 한 편의 영화가 이 정도 단계에 진입했다면 그것은 이미 영화비평의 영역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즉, 사회 문화비평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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