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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4층 아트시네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은 책, 배치되는 족족 사라져 웬만해선 구경하기도 힘든 그 책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종로 극장가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하 필.사)은 20대 청년들이 사비를 털어서 2007년 3월부터 운영해 온 순수 영화 무크지입니다. 첫 시작은 12페이지로 소박했지만, 현재 6호까지 발행된 이 무크지는 8월부터 KT&G 상상마당의 후원 하에 시즌Ⅱ를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글은, 영화에 빠진 젊은 친구들이 만드는 잡지,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하 필사)의 편집장인 이도훈 씨가 어떻게 영화와 만나고 짝사랑에 빠져 이 고된 일에 기꺼이 투신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영화언어로 쓰여 진 연대기적 수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편집부에서 정리하여 싣습니다. 이제 한 대학생의 자기 독백을 차근차근 읽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화와 한발 더 가까워짐을 느끼게 될 겁니다. 긴 글이니 만큼 충분한 호흡으로 일독을 권합니다.   -편집부-


20대 영화광들에게 영화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

1. 영화로 놀기

축복인지 재앙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이미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영화와 놀던 아이들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냐고 물어보면 부모님의 영향이 컸었다고 얘기를 했다. 부모님 손잡고 극장가서 영화를 본 세대였다. 내가 살던 경주는 극장이 5개가 있었는데 대부분 한 영화가 걸리면 3개 극장에서 3~4개월 틀기 때문에 영화보기가 척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은 매일 같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그때부터 타르코프스키나 허우 샤오시엔을 이야기하고, 주성치에 미쳐서 비디오를 학교에서 틀기도 하고 그랬었다. 그렇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영화와 만나게 됐다. 물론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1학년 때 극장을 갔는데 그 극장이 하필이면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이상한 공간에서 이상한 영화를 틀어주는 곳이었다. 그런 게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그 때부터 영화에 뭔가가 있구나. 이 세상과 뭔가가 다르다 싶어서 영화를 보려고 매일같이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영화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친구들과 술자리를 할 때 다른 이야기로 시작하더라도 끝에 가면 항상 영화이야기로 끝나는 상태가 됐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만의 놀 공간을 찾아보자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컴퓨터를 잘하는 친구가 영화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냥 8명의 친구가 각 분야를 맡아서 영화, 음악 등 파트별로 담당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자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정도 운영을 했었는데 나름대로 학교 친구들도 많이 찾아왔다. 없어진 이유는 한명씩 군대를 가다 보니까 운영할 사람이 없고, 돈 낼 사람이 없어서 계정이 폐쇄됐다.


군대가기 전에도 모두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한 친구는 2~3명이었다. 그 때 친구들이 동아리에서나 아님 자체적으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 때 그걸 보면서 그 친구들은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화를 찍는구나하고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약간 질투심도 생기고 경쟁심도 생겼다. ‘단순히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해서 저 친구를 능가할 수는 없겠구나, 그냥 저 친구는 가장 최고 단계에 있는 영화를 찍고 있으니까 내가 아무리 영화를 많이 봐도 따라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약간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2. 시작 - 테오 앙겔로플로스, 히치콕과 키에슬로브스키

마침 군대 가기 한 달 전에 부산 국제 영화제를 갔었다. 그 때 테오 앙겔로폴로스가 마스터클래스 중에 “영화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영화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군대 가서도 계속 떠올랐다. 영화를 하고 싶고 영화를 좋아하고 진로를 이쪽으로 결정지으려고 하는데 ‘내가 뭘 해야 되는가’라고 생각했는데 ‘죽어도 영화를 찍는 건 싫다, 그럼 할 수 있는 게 뭘까. 영화회사에 취직을 할까. 그래서 그 때부터 영화를 잡지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영화 글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다 제도적으로 부딪혔던 것은 군대 제대를 하면 바로 영화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대학을 졸업해야만 하고 졸업하고도 글 쓰는 직함을 얻기 위해서는 대학원을 졸업한다든지 아니면 어디 응모를 해서 당선돼서 평론가 직함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대학 내에서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가 잡지를 떠올리게 됐고 친구들에게 얘기를 했다. 그 때 제목을 정했고, 차차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틀이 정해진 건 아니었고 내가 전역을 하고 1호를 냈고, 면회 온 친구들과 이야기 중 지금의 잡지 이름을 정하게 된 거다. <이창>과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금의 잡지명을 정하게 됐다.


3. 외로운 시작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 1호가 나온 날짜는 2007년 3월 5일이다. 개학과 동시에 맞추어서 발행을 한다고 친구들에게 떠벌리기 시작했고, 2월 중순부터 혼자 작업했다. 소박하게 12페이지로 구성된 잡지를 계획했다. 수많은 비판과 조언을 들어가면서 1인 미디어로 시작했다. 감독론으로 오즈 야스지로, 빔 벤더스를 썼고, 인터뷰는 김성욱 영화 평론가를 했었다. 친구들을 찾기 위해서 한양대학교 영화 동아리를 취재하고, 독립영화를 꼭 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인디시네마에서 구본환 감독을 취재했다. 그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글 쓰는 것을 떠나서 한다고 말을 했을 때 비판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하겠느냐, 그리고 글을 왜 쓰느냐’부터 시작해서 사실 글 쓸 실력도 안 될뿐더러 ‘너희가 편집기술을 가지고 있느냐 혹은 자본이 많아서 많이 찍어낼 수 있느냐’ 그런 비판부터 엄청난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미 나오기도 전에 지친 상태였다. 물론 한두 명이 하는 거라서 더 힘들기도 했지만 대체 뭔가를 하려고 하는데 계속해서 명분을 제시하라고 하니까 할 말이 없어졌다. 왜냐면 그냥 좋아서 시작한 거고 찾다보니까 이 길을 찾은 건데 그렇게 세상은 너무나도 정당성과 명분을 찾았기 때문에 거기에 많이 부딪혔다. 그러면서부터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글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보다도 왜 글을 쓰냐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비판은 이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쓰레기를 만들 거라면 만들지 마라.”
“넘쳐나는 영화 담론에 비전문적인 비평은 살아남을 수 없다.”
“왜 그걸 해?”



성찰의 시간, 명분 찾기

1. 영화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글쓰기

친구들과 지인들의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확실히 1호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준비가 되어있는 거라고는 영화에 대한 약간의 (하지만 무시 못 할) 애정뿐이었다. 친구들은 함께 하자는 나의 제안을 못마땅해 했고,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본심이야 알 수 없었지만, 일차적으로 경력도 없고, 전문성도 없는 나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꼭 잡지를 만들어야 하는가? 왜 글을 쓰냐보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잡지를 만들기 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첫사랑에 대해 이유를 대라고 하는 것처럼 난감한 질문이었다.

나는 질문을 되돌려 보았다. 주변에 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에게 그럼 영화를 왜 만드느냐고 물었다. 근데 누구라도 답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례로 서울 독립영화협회에 작품이 한 해에 600편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면 그 600명의 감독들이 전부 뭔가를 얻기 위해서 혹은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드느냐,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달려있는 독립이라는 말 자체가 순수성을 띄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감독들에게 “감독님은 왜 영화를 만드세요?”묻는다면 불쾌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이 하는 친구들이 단순히 좋아서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떠올렸던 말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뤼포가 했던 말 “영화를 좋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영화를 찍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말인데 누구나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시하고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 안에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방법은 세 가지인데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많이 보는 영화광과 영화 찍는 것에 미쳐있는 영화광들, 이 두 가지는 있는데 그 중간에 끼어야 할 영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나 혹은 글쓰기를 지원해주는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아리 활동을 할 때도 영화를 보는 쪽이 있고 영화를 만드는 쪽이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글을 쓰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고 혹은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영화를 보고 났으면 뭔가 얘기를 해야 하고 같이 놀아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이 바로 세 번째 단계로 건너뛰니까 이건 뭔가 잘못되지 않았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이런 생각도 어쩌면 대학 내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교수님들에게 대한 비판적인 시각일수도 있고 영화를 공부하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다. 나는 토대가 받쳐 줘야지 그 세 번째를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 그리고 굳이 이것을 개별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 총체성으로 봤을 때, 자연스런 단계가 되지 않을까. 박찬욱 감독이 영화 글을 쓰다가 영화를 찍었듯이, 혹은 트뤼포가 영화 글을 먼저 쓰고 나중에 영화를 찍었듯이, 이건 별개가 아니라, 영화를 찍듯이 영화 글을 쓰는 것이고 영화 글을 쓰듯이 영화를 찍는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좋은 영화 평론가의 글을 다 모아놓고 보면 그건 하나의 인생론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영화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다 훑어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글쓰기가 우선 한 사람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까지 미쳤던 것은 과대포장해서 말하면 내가 만든 잡지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잡지가 주목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8~90년대에는 있었는데 흐름이 끊기고 이제 와서야 다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런 말에 화가 난다. 그럼 이 당연한 걸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일까. 라는 것이다. 그렇게만 바라볼 게 아니라 앞으로 이런 게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것을 준비하면서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를 가서 인터뷰를 같이 하자고 얘기를 했었다. 그 때 그 친구들이 반감을 표하기도 했고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생각을 하다가 얼마 전에 연락이 왔는데 자기들도 잡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하더라. 정말 이런 잡지가 있었어야 하는 것인데 없어졌던 유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만들 때 글에 대한 자신이 있어서 혹은 뭔가에 대한 반항심 같은 걸로 만들어서 혁명을 일으켜 세상을 바꿔보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거에 대한 결과물을 내놓고 싶었다. 이런 것은 대학 내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무가지로 나올 있고, 자발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20대에 가능한 특권이 아닐까 . 나이를 떠나서 각 세대마다 할 수 있는 것과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지 않나. 나는 이것을 계속할 생각도 아니고 일정 기간 동안만 하고 편집장을 그만 둘 생각이다. 나도 결국은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곳으로 갈 거니까.

나는 고다르식으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고 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친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믿는다. 할 수 있는 자가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자가 하는 게 당연한 거다. 같은 대학 친구들은 이런 활동이 영화를 떠나서 대학 안에서도 신기한 일이라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응이 이상하다. 응당 그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정말 그건 누군가의 말대로 삶의 태도의 문제다. 틀에 박힌 삶 속에 살아가는 자기를 내버려 둔다면 그건 자기 삶을 무시한다고 느껴진다. (20대에 가능한 걸 하지 않는 건 가장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대마다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 잡지도 그 특권의 향유다.)


2. 기존 영화 잡지에 대한 비판과 답답함

첫 번째는 별점에 관한 것이다. 별점에 권위가 생기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수준을 결정짓고, 작품 선택을 하게 하기 때문에 싫었다. 두 번째는 담론의 부재라고 했는데,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씨네21이나 필름2.0을 봤을 때 사실 매일 쓰는 사람만 글을 쓰고 있고 만들어 내는 사람만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 담론이 자연스러운 담론인가, 아니라고 본다. 기존에 프로그램화 되어있고 그래서 무슨 영화가 나올지 알기 때문에 그 영화에 대한 담론이 이미 선행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게 자연스러운 담론이 아니라 억지스러운 담론이라고 결정지었다. 왜 늘 고정 필진을 가지고 그 필진들만 담론을 형성하느냐, 그 외의 목소리는 없냐고 영화전문지에 묻고 싶다. 세 번째는 관객의 시점과 현재가 없는 정보전달 위주의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한 영화 잡지가 영화 자체를 프로그래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고 싶다. 왜냐면 이미 영화가 나오기 전에 미리 영화를 본 기자들이 극장에 걸리기도 전에 그 영화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고 미리 담론을 형성한 상태에서 가기 때문에 관객을 영화를 보고 나서 그거에 대해 담론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기 전에 담론을 먼저 접하게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필자의 글을 보고 나서 결정을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가치 판단을 하고 점수를 매기고 들어가기 때문에 저는 그것이 전혀 담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영화에 선행되는 것이 아니라 상영이 끝난 후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것에 반대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인터뷰를 하다가 왜 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되는 영화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없느냐고 물었더니, “어쩔 수 없이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관객이 극장에 오도록 짤막한 정보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 그 때 영화가 도착한다면 영화가 끝나고 나서 얘기해야 되지 않냐고 물으니까 김성욱 씨는 “영화 평론가들은 그런 글을 쓰지 않으니까, 고다르 특별전이 끝나고 나면 전혀 형성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그렇다면 관객이라면 그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영화를 보고 있는 학생들이라면 거기에 끼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4호 파솔리니 특집 기사처럼 관객들에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글을 써서 보내달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 담론 형성이라는 것은 일단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하고, 필름으로 확인하고 그리고 그 공간을 이뤄낸 주체들이 모여서 담론을 형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잡지에 반영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영화가 죽는 순간이 필름이 다 돌아가고 난 후 라고 생각한다. 극장 내 영사기가 빛을 뿜어내면서 영화가 상영되다가 영화가 끝나면 빛이 없어지고 새로운 빛이 들어온다. 그 때 극장 문을 나서면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영화가 다시 살아나고 그제야 담론이 형성된다고 생각을 했다.

잡지를 보다보면 지금 우리가 보는 ‘현재’ 영화가 없다. 앞으로 다가올 영화가 대부분이며 현재 상영작이라고 해도, 한시적으로 지나갈 뿐이다. 아차! 하는 사이에 영화가 개봉관에서 내리듯 담론에서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된다. 영화 글은 죽어가는 영화를 부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 잡지는 죽어가는 영화를 부활시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중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 눈에서 사라진 영화를 붙잡을 이유가 그들에게는 없는 거다.





필.사의 영화 글(비평)이 나아가야 할 방향

첫 번째, 필.사는 영화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편집장을 맡고는 있지만 필사는 개인의 전유물도 아니고 같이 글을 쓰는 친구들의 재산도 아니다. 열려있는 공간이다. 기존의 영화 잡지 들을 비판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굳어있고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나온 담론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천년학이 나왔을 때, 정성일 씨가 글 쓰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독자들은 어느 정도 예견하고 글을 보지 않을까. 김기덕 영화가 나왔을 때 ‘정성일 씨가 인터뷰를 하겠구나.’ 생각한다. 물론 거기에 대한 기대치도 있겠지만 너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틀이다. 그런 프로그램이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영화를 본 진짜 관객이 서로 영화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 오프라인(활자 매체)을 고집하는 이유는 친구들을 극장에서 만나기 위해서이다. 필사 3호가 나왔을 때 대학원생이 찾아와서 웹 사이트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 때 호의는 감사하지만 거절했다. 오프라인으로 책이 나온다는 것은 어떤 공간에서 손에 책이 잡혀진다는 것이다. 1호를 학교에서 배포하다가 발길을 돌려 아트시네마에 배포를 하는 이유도 그 곳에 진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과 같이 읽고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서울아트시네마가 서울에 존재하는 특권의 향유고 서로 교류할 수 있다는 것도 특권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잡지는 반드시 극장에서 유용하게 읽혀야 한다. 공간은 사람이 만나는 곳이며, 극장은 영화와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그 공간에서 영화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의 특수성이 있다.

세 번째, 온라인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인데 익명성과 가면의 거부하고 당당해지자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필명을 쓰거나 로그인을 할 때 가명을 쓰는 것이다. 거기에 숨는 순간 어떤 보호막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말이든지 뱉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개인적인 공간이 열리고 그 곳에서 공적 공간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공적 공간에서 열어 놓고 만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오프라인을 계속 할 생각이다.

식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네 번째는 영화로 자신의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도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었다. 그것은 누구나 카메라를 잡을 수 있고,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독립영화를 좋아하고 계속 보는 이유는 독립영화를 보고 있으면 상업영화와 달리 자기 언어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영화를 만들 용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도 꾸준히 쓰다보면 자신의 일기가 되고, 돌아봤을 때 비판할 수도 있고 통찰할 수도 있다. 지금 2년 전에 내가 써놓은 글을 보면 왜 저렇게 썼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혹은 2년 전에 누구의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었나를 보는 것은 자기의 과거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다섯 번째, 글쓰기는 극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난 친구들이 서로 글을 쓰면서 나누어 볼 때 진정한 담론이 이루어진다. 나는 영화보고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만 모아도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잡지에 실리는 병영일기는 군대에서 친구들이 보내주는 편지의 내용인데, 거기에 쓰게 되는 내용들은 전부 술자리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무게를 다 빼버리고 쉽게 생각하고 쉽게 글을 써나가고 거기에 못지않은 영화 사랑도 앞으로도 키워나갈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이제껏 ‘필사’를 만들기까지 힘들었던 것은 학업과 병행하다보니까 지친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하다가 힘들다고 중도에 포기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응원의 목소리가 있으면 일 년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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