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백건영


하나.
한 때, 영화보기만큼이나 영화음악 음반 수집에 천착한 시절이 있었다. 영화음악의 전성기라는 시대적 환경에 편승한 결과이기도한데, 당시 FM라디오 프로그램과 빌보드 차트 상위에는 언제나 영화음악이 포함되곤 했기 때문이다. 사실 OST 음반이 빌보드 앨범차트에 장기간 랭크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대게는 <오클라호마>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메리 포핀스>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 오랜 인기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고,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음악 음반의 진정한 지존은 따로 있었으니 핑크플로이드의 명반 [Dark Side Of The Moon]이 나타나기 이전까지를 호령한, 오스카 해머스타인과 리처드 로저스가 음악을 맡은 <남태평양>이 그 주인공이다.

둘.
한 번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음에도, 가끔은 내게 영화음악을 사용할 권리를 준다면 ‘이런 음악을 넣고 싶다’는 생각은 할 때가 있다. 다름 아닌 전쟁영화에 말이다. 하필 처참한 전투와 무차별 폭격이 난무하는 끔찍스런 전쟁영화라니. 생각의 시작은 20여 년 전 공군비행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1980년대 중반, 공군하사관으로 복무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송탄엘 간적이 있는데, 밤새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새벽 그는 기막힌 광경을 보여주겠노라며 나를 비행장으로 데려갔다. 동틀 무렵의 검푸른 하늘을 마주하고 앉은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격납고에서 나와 활주로를 향하는 팬텀기 한 대였고, 그때 관제탑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것은 반젤리스가 만든 <불의 전차 Chariots of Fire>의 메인테마였다. 이때 문득 떠오른 것은 전투 신에 부드럽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넣는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었다. 전쟁영화라고 오케스트라 풍의 웅장한 음악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지옥의 묵시록>에서 전쟁의 광기를 극대화시켜준 바그너의 격정적이고 장엄한 선율 ‘발퀴레’는 적절한 선곡이었다. <더 록>에서 험멜 장군이 아내의 무덤을 찾아 다짐할 때 흐르던 한스 짐머의 장중한 곡도 더 없이 좋았다. <블랙호크다운> 또한 디지털전쟁에 적합한 음악이 돋보인 사례였다. 그럼에도, <플래툰>에서 일라리어스의 죽음 앞에 흐르던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얼마나 처연했던가. 스탠리 메이어스가 만들고 존 윌리엄스가 연주한 <디어 헌터>의 Cavatina는 또 어땠는가. 아니면, <굿모닝 베트남>에서 흐르던 멀 해거드의 Okie From Muskogee의 흥겨움과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들려주는 전쟁의 아이러니도 기억해보자. 전쟁영화가 영화기술 발전에 기여했음을 감안한다면 전쟁영화 음악 역시 다양한 실험과 변주를 통해 영화음악의 지평을 한 뼘쯤 넓혀놓았다는 것에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가 전쟁영화에 잔인한 살육전이나 폭격 신에 음악을 넣는다면 꼭 넣고 싶은 곡이 있으니, 가끔은 이 음악이 흐르는 영화 속 전쟁 신을 상상해본다. 빗발치는 폭격을 피해 공포에 질린 아이들과 절망한 얼굴의 부녀자들이 필사의 탈주를 감행하고, 도시총격전에 참가한 군인들의 중화기가 불을 뿜는 순간, 아비규환의 지옥을 휘감는 어구스틱 기타소리와 더불어 노래가 흘러나온다. 다름 아닌 아트 가펑클의 노래 Mary Was An Only Child 다. 이 노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불세출의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에서 독립한 아트 가펑클이 첫 번째로 낸 솔로음반(Angel Clare, 1973)에 수록된 곡이다. 기막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혼자 미소 짓는다.

셋.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영화 이준익의 <님은 먼곳에>에서 인상적인 것은 커다란 눈망울로 말없음을 대신하던 수애의 표정연기였고, 남편에 대한 애증이 가중됨에 따라 변하던 그녀의 의상이었다. 온몸을 꽁꽁 감쌌던 그녀가 하나씩 옷을 벗어던짐으로써 전근대적 여성으로부터 탈주를 감행하더니 엔딩에 이르러 다시 순이의 형상으로 회귀하는 것이 흥미로웠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작 나를 지배한 것은 써니가 부르는 노래들이었다. 그러니까 영화에는 몇 곡의 노래가 써니의 입을 통해 불려 지는데, 지긋하게 눈을 감고 부르던 ‘늦기 전에’에서 시작하여 이역만리 향수와 불안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수지 Q’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하나 같이 단조로운 스코어들로 채워진 것은 국익 때문에 명분 없는 전쟁에 뛰어들어야 했던 젊은이들과 스테레오타입의 시대를 소환하기위한 장치로 보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김추자의 노래 ‘님은 먼곳에’가 들려오는 장면이었으니, 울창한 정글 위를 비행하는 헬리콥터와 살육전이 벌어지는 전장의 모습이 번갈아 보여 질 때 들려오던 ‘님은 먼곳에’는 정녕 꿈이었으면 좋았을 현실을 반추하는 꿈속의 멜로디처럼 내 가슴을 헤집고야 말았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에도 노래 ‘님은 먼곳에’가 위문공연 장면에서는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흥겨운 것과 거리가 먼 멜로디에 속칭 ‘아미 댄스’용으로 부적합한 박자로 이뤄졌다는 점에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이준익이라면 이 음악을 공개된 장소에서 선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써니가 ‘님은 먼곳에’를 위문공연장에서 불렀다면 야유와 아우성이 쏟아졌을 테니 영화는 신파로 흘러갔을 게 뻔하고 그것은 감독 스스로 자신의 영화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것 일터. 게다가 흥미로운 것은 남편에 대한 만감을 담아 부르던 이 노래를 다시 부르는 장소가 베트콩의 은신처라는 점이다. 천진난만하게 뛰놀거나 공부하는 아이들과 한 곳에 모여 노래를 듣는 가족들의 평온함이 깃든 은신처는 지상의 전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결국 월남에 온 후 처음으로 환한 웃음을 지었던 헬기 장면과 어느 때보다 평온한 모습으로 지하은신처에서 부르는 노래가 ‘님은 먼곳에’라는 점은, 남편을 찾아 나선 순이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에 대한 이준익식 대답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전쟁은 참혹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연속성마저도 끊임없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임을, 이준익은 노래 ‘님은 먼곳에’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는 말이다. 계속하다가는 영화가 좋은 건지, 음악이 좋은 건지, 아니면 전쟁이 좋은 건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니 정신 차리고, 극장으로 나서야겠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81
  • 013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