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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을 쓴다는 것

필진 칼럼 2007.07.30 16:10 Posted by woodyh98

2007.07.28


이제 영화평은 여기저기 곳곳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글 중 하나가 됐다. 영화전문지에서부터 개인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영화 관련 글이 차고 넘치는 시대. 하지만 그런 각양각색에도 불구하고 글이 촉발되는 시기에 관한 한, 모든 영화평은 같은 대답을 지닌다. 요컨대 영화평의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영화’인 것. 보다 정확한 시제로 말하자면 ‘완료된 영화’다. 쓰는 이의 입장에서 완료된 영화는, 촬영과 편집의 종료가 아니라 ‘보고 듣는 것’까지가 끝났음을 뜻할 터. 그러니까 모든 영화평은, 극장을 나선 누군가가 어떤 할 말을 쥐게 됐을 때 마침내 시작하는 것이다.

그 할말이 뱉어지는 곳은 어디까지나 극장 밖, 다름 아닌 현실이다. 현실에서 영화 이미지로,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여정. 그래서 나는 ‘현실을 향할 줄 아는’ 글을 좋은 영화평이라 생각한다(물론 그럴 여지를 영화 자체가 잠재한 경우에 한해서다. 비판이든지 옹호든지 그래야 가능하다). 현실을 향할 줄 안다는 말은, 영화를 경유해 도착한 실재 세계 속 어떤 지점과 관련해 영화평이 나름의 구조를 세울 수 있음을 뜻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구조를 세우다’가 정교한 조직체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하고자 세계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더듬어보는 노력에 가깝다. 요컨대 영화평 쓰기는 영화가 건져낸 ‘지금 여기’를 ‘내가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내가 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만든 체계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말을 떠올려보자. 영화평을 쓰고 있는 당신. 당신은 지금 당신의 소중한 체계를 만드는 한 과정 중에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현실과 유사한 이미지를 통해 프레임 안과 밖의 대화를 유도하는 매체다. 유도된 그 대화는 극장 밖으로 나와 다양하게 변주되고 또 여러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말하자면 영화평은 그 흐름들을 포착하고 보존하는, 개인의 언어인 셈이다. 한 영화가 어떤 담론으로 나아갈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인 텍스트성을 지닌다면, 즉 ‘살아있는 몸체’로 불릴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평의 사유 능력과 폭넓음에 대한 믿음이 애초에 전제됐기 때문일 것이다. 재생이 완료된 영화가 세상 밖에서도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영화를 둘러싼 개별 언어들의 그런 전방위 활약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영화평은, 영화의 완료에서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점에서 영화가 꼭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님을 환기시켜주는 일종의 각성제 같은 것이다. 이미지의 지속 가능성이 제한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영화평은 (거의 유일하게) 빗겨갈 줄 안다. 상영이 끝남과 동시에 영화 이미지 또한 종료되는 것으로만 인식될 때, 그때 영화가 남길 수 있는 흔적은 사실상 몇몇 숫자들에 불과하다. 제작비와 관객 머릿수와 순수익, 혹은 영화나 배우의 뒷이야기 같은 것. 물론 영화가 산업의 틀 안에서 발생하고 소비된다는 점에서, 숫자들에 담긴 의미 역시 가벼이 넘겨볼 성질의 것은 아닐 테다. 영화에 따라서 그것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수치나 수식은 어디까지나 속도전의 양상에나 어울리는 지표다. 그 지표들이 지상목표가 되는 경우, 영화들이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은 꽤나 빈빈한 일이 된다. 소비를 촉진하는 시간 속에서는 영화자본이 내리는 판단이 영화의 등장과 퇴장에 대해 가장 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나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 속도 때문에 영화가 먹고사는 것과는 별개인 시공간으로 여겨질 때, 또한 그것이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때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아니더라도,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해 영화는 여전히 고민하고 질문한다. 그 질문들을 극장 안에 그냥 남겨둘 참인가? 좋은 영화평을 쓰고 또 좋은 영화평을 찾아 읽고 싶은 욕망은 바로 그런 근심에서 출발한다. 영화평이야말로 영화의 지속시간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인 반응이자, 사유의 통로를 지나온 대답이며, 그것의 보존과 공유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자, 지금 여기서 영화를 다시 써보자. 몇몇 영화는 당신이 꺼내고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여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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