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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비평과 자아비판

필진 칼럼 2009. 9. 25. 21:38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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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영화전문지의 몰락과 모범적인 영화비평이 희귀해지는 근래에 들어 얼치기 평문의 출몰은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글들이 독자에게 ‘쉽고 친절한 좋은 비평’으로 오독되면서 종국에는 타인의 글쓰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이런 징후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보다 훨씬 더 현란한 표현과 절묘한 비유를 사용해 글을 생산하는 관객리뷰어의 등장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들의 활동영역과 영향력은 이미 전문가를 위협하고도 남을 수준에 이르렀다. 영화사도 홍보사도 어떻게 해서든 이들의 마음과 지원을 얻으려 노심초사할 정도다.

심지어 영화제들마저 적절한 수준의 대우를 통해 서포터스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끝 간 데 없이 상승하는 관객리뷰어의 위상과는 별개로 이들이 제공하는 글의 다수는 비평적 자산의 빈약함과 사적 취양과 정보의 한계 등으로 인해 일정 수준에 머무르기 일쑤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호의적 독자들과의 소통과 관계유지에 더 치중하는 까닭일 터. 전문가에 필적할만한 식견을 가진 듯 보이지만 속 빈 강정일 때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감독의 필모그래피 정보 나열과 유사한 영화에 대한 비교와 특정 단어나 관용구를 습관적으로 이어가는 식의 언술도 하나의 경향을 이룬다. 보다 큰 문제는 영화에 대한 무한애정과 가슴 벅찬 감흥을 도려낸 채 글쓴이 자신을 부각시키고 드러내려는 의도적인 글쓰기가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현상을 이들만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될 일이다. 그들이 보고 듣고 배운 영화적 자산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일부라고 항변할지는 몰라도)외국잡지를 고스란히 번역한 후 자신의 생각을 병아리 오줌만큼 붙여 완성시킨 영화 글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그것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비평가와 기자들에게 돌아와 버렸다. 진지한 영화평론이 무의미하다고, 전문가의 평은 신뢰할 수 없다는 표어로 무장한 채 말이다. 평단이라 통칭되는 전문가집단이 작금의 영화비평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이켜보면 《키노》는 풍성한 비평적 자산을 남긴 반면, 겉멋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자들에게는 ‘좋은 카피거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영화에서 미장센이 너무 두드러지게 보여 미장센 위주로 쓴 글과, 미장센밖에 모르기 때문에 쓴 글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생각하지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심지어 영화를 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지식만 나열하는 그런 글에는 아무런 매력과 가치도 없다. 심지어 요즘은 나이 어린 관객도 어떤 주장을 할 때에는 타당한 근거를 내놓아야하며 그 근거가 영화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안다.

무조건적으로 외국비평가를 두둔할 마음은 없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폴린 카일, 로저 에버트, 조너선 로젠봄의 영화평을 원문으로 읽어보라. 우리가 보아온 비평과는 접근방식 자체가 다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영화 속에 완벽하게 몰입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온전히 영화를 통해 끌어낸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영화제집행위원장을 겸하는데다 영화를 보고 쓰고 찍는 ‘트뤼포 식 3단계’의 정점에 올라 글쓰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정성일이 의심할 바 없이 최고의 평론가로 인정받는 이유는, 아직도 그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눈물겹게 펼쳐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영화를 평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고 글을 마무리 지을 때 까지 뜨거운 가슴과 눈시울 적시는 가슴 벅찬 느낌을 간직해야 한다.

“이 영화는 잡탕이랄 수 있다. 나는 장어구이 위에다 커틀릿을 얹고 그 위에 카레를 뿌린 듯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7인의 사무라이>와 관련한 대담에서 구로사와 아키라가 한 말이다. 감독의 표현능력도 이러할 진대 비평가임에랴. 비평이 창작을 이길 수 없는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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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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