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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영화를 만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글을 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음악을 듣고 무언가를 써야하는 이들에게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소설이나 시를 읽고 그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건 도구적 관점에서 볼 때 어느 정도 정당하다. 어떤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해 글쓰기. 일대일로 맞짱 뜨는 깔끔한 느낌. 자, 너의 그 알량한 언어로 쌈박하게 갈무리해 봐.

하지만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건 중간거래상을 통해 느낌을 전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른 예술 장르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음악에 관해 그저 “너, 이거 들어봐” (do it yourself!) 이상의 비평은 없는 듯 하다. 영화도 그보다 크게 나은 처지는 아니다. 눈에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를 잡아 두고 글로 박제시키는 작업. 작정하고 보자면 ‘shot by shot’ 식의 영화읽기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물 망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다.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누구나 겪는 태생적인 딜레마다. 욕망의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고, 점근선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느끼고 있는 자신을 확인하려는 인간의 욕망.

[원스]는 이런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뮤지컬 영화인지, 뮤직비디오 영화인지 그 카테고리를 정하는 건 이 영화에서 큰 의미가 없다. 뮤지컬다운 과장의 몸짓이 없고, 뮤직비디오 다운 격정적인 플롯 역시 없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뮤직 -이미지’ 만이 남는다. 그러니까 남는 건 ‘서정’ 뿐이다. 서정이 무엇인가. 나는 서정이란 어휘를 따로 접하기 이전, 교과서 시 문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정시를 먼저 배웠다. 그리고 이 배워버린 서정을 온전히 느끼면서 사는 게 촌스러워진 이 쿨한 현실에 비극적으로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 서정을 스멀스멀 건져 올린다. 바로 ‘음악 - 이미지’. 오직 음악에서, 오직 영화에서, 그 단독 장르에선 살릴 수 없는 기묘한 형태로 말이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경지다.

그녀와 그는 서로 짝이 있다. 물론 지금 여기엔 아니다. 지금 여기에는 그녀와 그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지금 여기가 오히려 판타스틱하다. 저 멀리 있는 그들의 짝이 그들에겐 더 큰 무게를 지니고, 그래서 그들은 판타지를 꿈꿀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그 판타지를 보여주고, 그 꿈꾸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저 멀리를 응시하게 한다. 관객은 이들을 관조할 수 없고, 그들과 동화되는 행운을 누린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서정’은 오랜 간만에 느껴보는 그런 정서다. 과잉의 파토스가 아닌, 온 몸을 열어 동화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서정 말이다. 바로 왕가위의 [중경삼림]에서 느꼈던 그 정서(두 번 째 에피소드에서)이기도 하고, 혹은 링클레이터의 [비포선셋]의 좀더 확장된 오케스트라 버전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영화에서 서정을 다루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과연 우린 서정을 어느 정도 느끼고, 그에게 얼마만큼의 문을 열어줄 수 있는가.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서정을 느끼는 순간, 그래도 우리는 남아있는 감성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인가.

오스카 와일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의 바로 그 도시, 아일랜드 더블린. 이름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이 도시에 감독은 영화적 이미지와 'damien rice' 풍의 아이리쉬 포크를, 즉 담백한 어쿠스틱의 현의 노래를 덧입힌다. 거기다 두 주연 배우와 감독의 전적. 감독 ‘존 카니’와 배우 ‘글랜 헨사드’‘마케다 잉글로바’는 배우이기 이전에 작곡과 작사, 혹은 연주와 노래에 능한 뮤지션들이다. 그들의 움찔움찔거리는 비트와, 배우의 자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싱어송’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다.

한편 글랜 헨사드의 ‘어쿠스틱 기타’와 마케다 잉글로바의 ‘피아노 솔로’는 이 영화의 색깔을 대변한다. 이 영화가 전해주는 서정의 성격은 ‘어쿠스틱 서정’ 이라 부를 수 있는데, 그건 단지 악기라는 도구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고작 1억원 정도라고 한다. 인디영화라고 무작정 쌍수들고 환영하려는게 아니다. 적은 예산으로, 단출한 악기 구성으로 승부한 이 영화는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낸다. 앙상한 제작비와 음악의 조화 속에서, [원스]는 어쿠스틱의 심플함과 두드러지는 보컬 보이스의 과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수치로는 환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서정의 순간들을 연이어 보여준다.

당연한 얘기지만 결국은 ‘서정’ 아니겠느냐. 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가 그 옛날 처음 접했던 서정시 ‘진달래 꽃’ 의 그 떨림에, 그 반어의 안타까움에, 어딘가에 잊을 원형을 잡으려는 아련한 향수에 젖을 수 있다면 이 영화가 전달해주려는 하나의 환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해질 무렵의 따사로운 햇살과, 달뜰 무렵 서늘하다 못해 다소 쌀쌀한 바람을 디졸브로 느끼는 요즘 날씨는 이 영화 [원스]와 천생연분이다. 환절기 감기는 조심해야 하지만, 환절기의 그 짜릿함은 환영해야 한다. 이 영화와 함께후자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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