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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복이'와 여자 신윤복

필진 칼럼 2008. 12. 1. 09:15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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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천재이기 이전에 여성이었다. 여성이기 이전에 천재였다. 이 두가지 명제는 각각 최근 조선시대 천재화원 혜원 신윤복을 두고 그리는 두 작품 [미인도]와 [바람의 화원]의 출발점이다. 명제가 나뉜 만큼 이야기 전개에서도 분기점을 낳는다. 천재에게는 이름이 남지만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드러난다. [미인도]는 천재에서 여성으로 파고든다. 김홍도도 화원으로 등장해 남성으로 남는다. 윤복 역시 자기 본능과 관련한 욕망을 내적으로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화원이라는 외적 면모에서는 비활동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반드시 '신윤복'이어야만 했느냐는 필연성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바람의 화원]은 반대다. [미인도]와는 다르게 신윤복을 '윤복이'라고 불러도 거뜬할 정도로 친밀감이 든다. 이야기의 강조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천재로서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자기가 속한 세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갈등을 빚는다. [미인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행동에 동기가 부여된 셈이다. 이렇게 생긴 이야기는 그 다음 이야기를 위한 계단이 된다. 장애물을 넘은 윤복에게는 다시 장애물이 다가온다. 여기에서 사건의 인과성이 매우 분명하게 생기는데, 이것은 장애물을 넘으면서 눈물 글썽한 '윤복이'를 보며 '귀엽다!'라고 연발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여기에는 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이 잘 반영됐다. 매회마다 장애물 하나씩 준다. 시청자들은 신윤복의 기쁨과 슬픔을 캡쳐해 '윤복이 표정세트'를 만들고 소비한다. 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변모가 [바람의 화원]을 보는 축이 될 수 있고, 여기에서 단 한사람만을 위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것을 삼단논법으로 가볍게 풀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대전제, 신윤복은 그림에 있어서 천재였다. 소전제, 신윤복은 여자였다. 결론, 신윤복 그림을 마음대로 그릴 수 없었다. 이렇게 해보니 소전제와 결론 사이에 빈 맥락이 발견된다. 그 맥락이 신윤복을 천재로서 이야기에 등장하게 하는 필연성이다.

왜 천재여야 하는가. 천재는 다르다. 다른 집단에 속해있다. 천재에게는 평범한 것이, 관습적인 것이 장애물이 된다. [향수]의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파리넬리]의 파리넬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천재는 재능만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천재 이야기는 그에 상응하는 억압 기제가 있어야 한다. 억압이 모든 총체적인 상황에 가까울 수록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 된다. 억제된 상황이 너무 약하면 천재성은 발휘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도 거대한 것이라면 천재이야기가 아니라 괴짜 혹은 몽상가 이야기가 되어버릴 것이다. 따라서 천재에 관한 이야기는 천재의 존재 뿐만이 아니라 천재를 있게 한 배경적 맥락까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까지 고려했을 때 [바람의 화원]에서 그리는 신윤복 이야기는 영웅신화와 유사한 속성이 있다. 영웅신화의 골자는 태생적 한계가 있으나 비범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 조력자의 도움을 얻어 고난과 시련을 거치고 영웅의 면모를 보인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현재는 드라마가 완결되지는 않았으나, 신윤복은 김홍도와 신영복, 정조라는 조력자를 얻어 성장을 할 것이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남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소비한다는 것은 영웅신화의 원형이 오늘날에는 천재의 이야기로 변형되어 교류되고 있다는 것으로 반증된다. 또 여전히 영웅신화는 대중이 있어 생산되고 소비된다는 것 여기 반증된다.

[미인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강무'의 등에 난을 친 상태로 상반신을 포개 가슴팍에 난을 찍어낸 윤복의 미소였다. 사실 신윤복을 본 것이 아니라 애열에 불태우는 여자의 미소를 봤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 얼굴은 처절하게 밟히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신윤복이 여성이었다는 설정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비극에 흥미를 뒀기 때문이다. 비극은 극적인 순간에 터져야 한다. 그것은 편당 클라이막스를 두어야 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와는 달리 두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에서 더 잘 발휘된다. 이런 구조를 가질 때 여성 혹은 에로티시즘은 비극을 얻어내기 위한 계약적인 성격을 가진 소재에 가깝다. 유기성은 떨어진다. 유기성과 필연성이 떨어질 수록 신윤복은 홍보의 모티프로만 자리잡는다.

어쨌거나 [미인도]의 신윤복은 우아하다. 그녀는 부조리한 욕망과 관습과 제도에 얽매여있다. 여기에서 영화가 택한 방법은 모든 외적 갈등을 뒤로하고 자기 내부로 향하는 여인을 그린다.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깨달아버린 윤복에게 있어 외적인 장애물은 처절하다. 그러나 윤복은 적극적으로 대항하지는 않는다.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음으로써 환경적인 맥락에서 설정해두었던 부조리함은 윤복의 행위에서 우선순위가 되지 않으나 관객은 부조리함에 희생되는 운명의 비극을 본다. 영화가 그친 뒤 영화적 현실에서 초연해진 사람은 미인도를 흘려보내는 신윤복 뿐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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