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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보여지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은 것을 말 할 수 있는 방법 


개인적으로 이제 막 영화를 찍기 시작한 신출내기 감독들의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다. 말이 필요 없는 거장들의 숨 막히는 걸작을 보며 느끼는 감동에 비할 바 아니지만, 때론 세공되지 않은 거친 원석에 가까운 그들의 작품을 보다보면, 이 감독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보여주게 될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퀼리티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이런 패기어린 신작들을 즐겨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판이 워낙 체계화되어서 그런지 갓 영화를 찍기 시작한 초짜들의 영화가 기성 영화에 못지않은 나름 준수한 매무새를 자랑해 보이지만, 반면에 신인 특유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관습적인 장면만을 반복하며 내게 실망스러움을 안겨주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여기 최근의 이런 기류를 거스르고 나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심어준 단편이 하나 있다. 바로 이제 막 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초짜 감독 조성희의 <남매의 집>이란 영화이다.

<남매의 집>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벌써 화려한 수상 족적을 새기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부분에 주어지는 이스타항공상-최우수상을 시발점으로 시작된 이 영화의 수상 행진은 칸느 시네파운데이션 부분 3위 입상으로 이어졌고, 또 바로 귀국하여 그 콧대 높은 미장센 영화제에서 7년 만에 대상을 배출하게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사뭇 높아진 기대감에 이 영화를 보고자한 나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고, 드디어 이 영화를 보고야 말았다. 먼저 지극히 주관적인 소감을 피력해보자면, 가히 경악스러울 정도의 뛰어난 재능이 엿보인 단편이었다.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재능은 그의 향후 미래를 확실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다만 그가 우리나라 영화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감독의 위치에 오르게 되겠다는 정도만은 예상 할 수 있었다.




<남매의 집>은 43분 동안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포영화다. 남매만 살고 있는 이 집에 어느 날 괴한이 찾아오고, 그 괴한이 이 집을 빠져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 영화는 공포영화에서 등장하는 그 흔한 괴기한 이미지나 잔혹한 장면도 없이 순전히 상황 설정과 특정한 대사만으로 보는 이를 압도적인 공포감 속에 밀어 놓는다. 이 영화의 장점은 집 밖으로 한 치의 발도 내어놓지 않는 폐쇄적인 영화의 배경이다. 오히려 이를 통해 영화에서 보여 지는 집안 내부의 상황이 외부에서 벌어지는 어떤 막연한 미지적인 공포를 강하게 자극 하게 된다. 그러한 방식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사용된 장치들이 굉장히 일반적인 사물과 경험이며, 이를 약간씩 뒤틀면서 오히려 굉장히 상이하고 감각적인 방식을 전시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의 현시는 어떤 대상을 그려내는 방식에 있다. 이 대상이라 함은 외부의 세계에서 이 내부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대립의 대상이며, 직접적인 설명을 하자면 영화에서 괴한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일종의 마스터이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의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이 절대적인 권력은 자신이 직접 움직이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우리에게 극복 할 수 없는 일종의 좌절감을 선사한다. 도저히 이겨 낼 수 없을 것 같은 대립적인 대상. 즉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또한 그 실체도 불분명한 대상을 적으로 둔 나약한 어린이의 관점을 굉장히 밀도 높게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의 표현력은 기성 감독들과 비교해도 거의 최정상급의 수준이다.

생각해보면 <지리멸렬>, <심판>, <빵과 우유>, <열일곱>과도 같은 일련의 단편 영화에는 각기 봉준호, 박찬욱, 원신연 그리고 김태용 감독이 이후에 만들 뛰어난 장편 영화들의 잠재력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빠짐없이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평론가 하시미 시게히코와 같은 엄청난 감식안을 가졌다고 자평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신출내기 감독의 단편을 보면 그 감독이 보여줄 영화의 세계에 대하여 어느 지형도를 그려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43분짜리의 짧은 중편에서 보여준 어느 초짜 감독의 재능이 지금껏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대단한 기대감을 느끼게 해준 것은 분명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대단한 재능은 오로지 필자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누구나가 공감 할 수 있는 엄청난 것이라고 본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어떻게라도 이 영화를 접해보라. 이런 대단한 기대감을 앉고 살아간다는 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놓칠 수 없는 힘든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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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젤가디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평론글을 잘 쓰셨네요. 저도 한번 보고싶어지는데 이 영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극장에서 하는거 같지는 않고 디비디로 나오나요?

    2009.07.2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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