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건영


오랜만에 아마존사이트를 방문했더니 몇 편의 DVD 타이틀이 떡하니 나를 반긴다. ‘New For You?’ 나를 위한 신작이란다. 게다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이니 신뢰도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터. 칼 드레이어의 1931년 작 <뱀파이어, Vampyr>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 High and Low>이 먼저 눈에 띄고 자크 타티의 <트래픽, Traffic>도 특유의 케이스디자인으로 유혹의 손길을 뻗쳐온다. 오래 전부터 눈독을 들였던 필립 가렐의 영화들도 여전하다. 아마존을 빠져나와 프랑스 고몽 Gaumont 으로 이동하자마자 나의 눈은 오래 전부터 찜해놓은 모리스 피알라 박스세트 앞에서 떠나질 못한다. 12편의 영화가 수록되어 있으니 피알라의 모든 작품을 망라한 셈이다. 180 유로, 어림잡아 30만원이다. 이럴 땐 얼른 닫아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국내 사이트로 눈을 돌리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내레이터로 참여한 환경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을 비롯해 밴 애플렉의 감독데뷔작 <가라 아이야 가라>와 수잔 비에르의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론 극장개봉 없이 DVD로 직행한 작품들이다. 어쩐다. 저것들을 사자면 돈이 만만치 않을 텐데.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묘수가 없다. 이럴 땐 빤한 주머니사정과 맘에 드는 타이틀만 보면 주책없이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는 신경계의 왕성한 활동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침 튀겨가며 주장해온 마당에 DVD 타령이라니. 그래도 극장 개봉을 못하고 직행했거나 고전걸작을 다시 들춰보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자기합리화를 만들어내는 동안 마우스는 장바구니와 위시리스트 근처를 쉼 없이 배회한다.

올 여름 몇 편의 대작들이 극장을 분할 지배하며 무수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음에도 나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다크 나이트>를 아직 보지 못했다. 결국 못 보고 지나갈 공산이 크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놓쳐버린 탓도 있지만 극장 개봉용 영화에 대한 믿음이 시들해졌다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아! 정말 요즘은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이 재미없다. 그러니 허전한 마음을 DVD로나마 메우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다. 이런 가운데 근자에 본 몇 편의 영화를 기억해 본다.

윌리엄 프리드킨의 1985년 작 <늑대의 거리, To Live and Die in L.A>는 그의 걸작 <프렌치 커넥션>에는 못 미칠지라도 요즘 만들어지는 액션형사물에 비하면 몇 수 위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인기 TV드라마 <과학수사대, C.S.I>의 그리섬 반장을 연기한 윌리엄 L. 피터슨의 젊은 시절을 만나는 것은 덤이다. 피터슨의 데뷔작이기도 한 <늑대의 거리>는 촘촘한 내러티브로 긴장감과 몰입도를 한껏 높인 수작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 윌렘 데포와 존 터투로의 풋풋한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는 재미 또한 선사하고 있다. 빌리 와일더의 <사브리나>도 다시 보았는데, 윌리엄 홀든에게 마음을 빼앗긴 오드리 햅번 앞에서 “나도 라러비 가의 남자”라며 애타게 구애하던 험프리 보가트의 표정은 <아프리카의 여왕>의 찰리 올넛 만큼이나 가련해 보인다. 험프리를 사용하는 것만 보더라도 휴스턴과 와일더의 차이가 단박에 드러난다고나 할까? 이처럼 같은 장소에서 두 개의 영화를 비교하며 보는 것도 DVD에서나 가능한 일일 테다. 또 흑인의 일상성을 소름끼칠 정도의 농밀한 시선으로 파고 들어간, 이미 미국독립영화의 전설로 자리한 찰스 버넷의 문제적 영화 <양 도살자 Killer of Sheep>를 본 것은 한 동안 여운이 지속될 정도의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틈날 때 마다 DVD를 접하는 것은 미처 보지 못한 근작 영화를 찾아 보기위해서가 아니다. 과거의 어느 날 분명 보았지만, 또는 모르고 지나갔더라도 이제야말로 몇 번이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곁에 두고자하는 마음에서이다. 다시는 극장에서 만나기 힘든 그 많은 영화들을 불러오는 방법으로 DVD만한 매체가 또 있을라고. 그런 점에서 근자에 접한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와 장산곶매가 만든 <파업전야>의 DVD 출시 소식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오! 꿈의 나라> <닫힌 교문을 열며>와 더불어 영화집단 장산곶매의 대표적 작품인 <파업전야>는 목숨을 건 상영의 대명사일 뿐 아니라, 영화사전심의제도를 위헌판결로 돌려세운 기념비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이제는 한국영화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공수창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고 MK픽처스의 이은 대표와 이용배 교수가 제작을 맡았으며, 장동홍, 장윤현 감독이 연출한 <파업전야>를 9월 초 안방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최근 정치사회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렸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력하게나마 네오이마주가 응원해온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의 DVD 출시 또한 설레는 소식이다. 출시와 관련한 제작사의 오랜 저울질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결국 빛을 보게 되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신작 <반두비> 촬영이 한창인 가운데 들려온 이번 출시 소식이 신 감독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해본다.

주저리주저리 적다 보니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9월에도 내 주머니는 결코 무거워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머리는 벌써 계산에 돌입했고 손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옥석을 가려야 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사고 무엇을 포기할지, 장바구니에서 튀어나와 내 집에 도착할 녀석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다. 대부분은 적어도 당분간 위시리스트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미친척하고 질러버릴까? 아서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89
  • 53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