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7.10.02


바람마저 너무 찬 겨울, 저녁이 올 무렵. 한 소년이 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채 꽁꽁 언 저수지를 걷고 있다. 깨질 듯 위태로운 그 얼음 위에서 소년이 바르바르 떨고 있다. 이제 반 정도만 더 가면 될듯한 한 가운데에 선 소년은, 그런데 더 이상 걷지 못한다. 멈추어선 소년의 머리 뒤로 차디차게 별쳐진 잿빛 하늘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과연 소년은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소년은 끝까지 이 강을 건너지 못한다. 건널 수 없는 강을 마주하는 소년이 살아가는 세계는 그래서 '비극'이다. 비극속에 버려진 소년은 주저하고 또 멈추어 설수 밖에 없다. 소년에게 세상은 하루라도 살아가기 힘든 공간이며, 소년 앞에 서서 강을 건너라고 지시하는 친구는 '악마'에 가깝다. 그런 곳을 살아가라니. <친해하는 로제타>로 깐느영화제 단편 경쟁부분에 진출한 양해훈 감독은 쉽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를 과감히 스크린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생각과 아픈 심정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는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단지 양해훈 감독의 작품이 개인주의 사회 안에서 개인과 개인의 갈등을 이야기한다면, 박종원 감독의 작품은 독재정권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그 독재라는 사회가 나은 표본 '엄석대'라는 인물에게 대항하며, 때로는 포기하고 또 애정을 갖기도 하는 한 소심한 개인 '한병태'의 관계를 극화시킨다.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진 '엄석대'처럼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에서의 '제휘'를 괴롭히는 '표'역시 악마와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난 양해훈이 더 '악'의 캐릭터를 가지고 극한까지 밀고 나갔다고 본다. '표'는 정말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만큼 독한 존재이며,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만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악마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제휘에게 표가 던지는 전화 속 대화를 통해 제휘가 마치 '저수지에서 이제 건져질 것 같은'것처럼 둘 간의 화해 혹은 다시 피어날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난 그 장면에서 너무나 끔직했다. 속으로 정말 끈질긴 감독이구나. 최양일 말고도 이렇게 독한 감독이 탄생했구나. 어떻게 저 소심한 소년 제휘에게 희망조차 남기지 않는걸까? 오히려 난 죽었는줄만 알았던 '표'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대해 이런 비극이 더 있을까 생각했다. 어떻게 다시. 어떻게 저 악마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일까? 잎으로는 다시 너(제휘)에게 나타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그(표)와 함께 다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제휘는 편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과연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결론은 '아니다'인 것이다. 잿빛 하늘로 가린 소년의 미래는 그래서 암울하고 슬프다.

살얼음판을 걷는 제휘. 돌아갈 수도 전진할 수도 없는 그 한가운데서 소년은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내일, 그리고 미래. 양해훈은 하지만 이 비극적 동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로 과감히 한국독립영화계의 내일을 걸어갈 것이며,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힐 것이라 난 확신한다. 이만큼만의 독기를 계속해서 가지고 나간다면 말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96
  • 75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