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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에 관한 잡문

필진 칼럼 2008. 4. 30. 14:29 Posted by woodyh98
매년 4월 말이면 영화판에서 알게 된 이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횟수가 부쩍 늘어난다. 용건의 대부분이 “이번에 전주 가십니까? 언제가고, 얼마나 머무십니까?”라는 질문이다. 다름 아닌 5월 초에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참석여부를 묻는 것이다. 나 역시 만나는 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기 일쑤이고 상투적이긴 해도 이런 과정을 통해 전주영화제 일정의 윤곽을 잡고 동선을 그리게 된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대방도 그러하듯이)영화제 기간 중 밤 스케줄을 짜기 위해서이다.

필자처럼 영화 글을 쓰는 사람의 경우 영화만 보기 위해 영화제에 참석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영화인들과 평론가와 기자들이 각기 분야에서 서로 잊고 지냈던 이들의 안부를 묻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또는 다른 일거를 얻거나 사업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영화제에 모여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골목마다 술집마다 영화인들과 영화광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을 새우는 것은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의 밤 어디서나 목격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주 무대였던 해운대 횟집의 한산한 모습 위로 한국영화의 불황이 오버랩 되었던 것도 다 이런 까닭이다. 결국 짧은 체류기간 동안 영화도 보고 사람과의 만남도 소홀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화제 기간 동안 효율적인 시간 사용을 위해서는 상대의 스케줄을 사전에 아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아울러 고백하자면 매년 5월이면 습관적으로 전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으면서도 어떤 영화를 보겠다고 사전에 계획 세워 본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 있다고 질책하지 마시라.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영화 보는 것만큼이나 사람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분명히 그렇다.

사실 영화제의 열혈 관람객과 비교하면 필자의 경우는 일정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즉, 일반 관람객일수록 영화에 대한 집착도가 높을수록 일단위 시간단위로 빼곡하게 잡힌 일정과 카탈로그를 손에 쥐고 영화관 순례에 나서기 마련인데,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길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내가 아는 몇몇 영화광만 하더라도 하루에 3~4편은 기본이고 심야관람까지 도무지 눈이 쉴 틈을 주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이다. 그러다 아침이면 퀭한 눈으로 다시금 영화관을 찾아 들어가는 그 놀라운 열정이라니! 게다가 바지런한 관객이라면 하루 일정을 마치기 무섭게 숙소에서 영화리뷰를 작성하거나 인상 깊게 본 영화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며 데워진 가슴을 유지하려 애쓸 것이다.

5월 전주의 밤하늘을 보기 위해 ‘영화의 거리’로 나가면, 영화관에서 보았던 낯익은 얼굴을 다시 만나는 묘한 설렘도 맛볼 수 있거니와 소위 각종 영화제를 통해 낯을 익힌 영화제페인들(영화제를 위해 돈을 모아 영화제 기간 내내 체류하면서 영화제를 즐기는 영화광들)끼리 조우하여 술잔을 나누는 일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전주영화제의 경우, 상영관이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 몰려있는 탓에 이동이 편하거니와 직선으로 뻗은 도로 안에서 움직이다보면 아는 얼굴을 부지기수로 만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결국 인사치레로 약속을 해놓고는 지키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요, 청한 사람이 오지 않아도 그러려니 하는 것도 영화제이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밤에 한 잔 해야죠?”라는 빤한 말이 인사를 대신한다고 할지라도, 다음날 미처 만나지 못한 이들과 멋쩍은 재회의 눈인사를 나눌지라도 그리 흠되지 않는 것도 영화제가 선사하는 너그러움 중 하나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제에 영화만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비단 필자 같은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영화가 좋다고 해도 먹을 것 먹고 즐겨야 하는 것은 기본 일 터. 어디에서 무엇을 먹어도 만족할 만한 음식이 지천에 널렸다는 것 또한 전주국제영화제가 방문객들에게 허락한 축복일 것이다. 특정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추억과 경험이 사람마다 제 각각일지라도, 그곳에 가는 목적이 천차만별이라 해도 향토의 맛 앞에서는 거의 한 목소리를 내기 마련인 것은, 몸으로 기억한 것은 쉽사리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 아니겠는가. 많은 이들이 전주하면 어김없이 전주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을 떠올릴 터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너무 알려져 있는데다 방방곡곡 원조를 표방한 음식점이 산재해있다 보니 전주의 맛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전주에 갈 때마다 찾는 곳은, 도청 근처의 ‘반야 돌솥밥집’과 성심여고 앞에 있는 ‘베테랑 분식’이다. 주머니 가벼운 영화제 관람객에게 이만한 먹거리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이니 9년을 변치 않고 이용해온, 정확하게는 1년에 한 번 먹어서 더욱 맛있는 칼국수 집이다. 절대로 홍보성 글이 아니다. 비단 전주 사람이 아니라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널리 알려진 집이라는 말이다. 물론 삼백집의 콩나물국밥 또한 기어이 한 술은 뜨고 와야 영화제를 무사히 마친 기분일 정도니 전주의 맛이 가진 매혹은 해운대의 펄떡거리는 횟감을 능가하고도 남지 않을까?

전주국제영화제가 첫발을 뗀지 아홉 해가 되었다. 디지털 영상시대를 예비하며 미래지향적 영화제를 표방했던 게 엊그제 일이다. 난생처음 전주를 방문하게 된 것도 영화제 때문이었다. 무수한 영화제를 다니면서도 유독 전주영화제에 마음이 가는 것은, 알찬 프로그래밍과 맛깔스런 음식과 너무 복잡스럽지도 너무 황량하지도 않은 전주의 모습에 기인한다. 혹자는 영화제가 너무 영화관객 위주로 움직인다고 하지만,(물론 맞는 측면도 있다)이미 한국에서의 영화제는 하나의 문화고 현상이며 축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형형색색 장식된 거리를 메운 인파들 속에서, 좋은 영화를 관람한 흥분된 얼굴에서, 힘들게 구한 영화표를 쥔 관객의 환희에 찬 얼굴에서 영화제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불면의 밤을 보낸 피곤함에도 아랑곳 않고 영화관으로 달려가는 영화광의 발걸음에서 영화제의 미래를 본다. 이 땅의 모든 영화제가 그렇듯이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영화광들의 신나는 한판 놀이마당이다. 그러니 어찌 동참하여 놀아주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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