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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감독, 영화로 말하시라

필진 칼럼 2009. 8. 21. 09:09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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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이 주최한 ‘영화진흥위원회의 미래를 논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현장 분위기는 예상했던 대로 갑론을박에 그친 걸로 알려진 가운데, 특히 평정심을 잃은 정진우 감독은 <아벤고 공수 군단>(1982)으로 대종상 안보부문 작품상을 받은 제작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걸로 전해진다.


이날 토론에서 정진우 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은 예의 영진위 무용론과 폐지론을 주장했는데, 심지어 그는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 같은 영화제에서 왜 영진위 직원들이 거들먹거리며 다니느냐”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또 “영진위 없던 시절에도 영화인들은 영화만 잘 만들었다. 나 역시 연출은 물론 무수한 영화들을 제작하고 성공시켰다”고 말하면서 “지난 10년간 영진위가 합의제를 하면서 자기들끼리 다 해쳐먹었다” 고 말했다는 것. 하긴 2001년 6월 22일 영화 <친구>를 주제로 벌인 ‘TV 토론 공방’에서 안하무인격으로 상대방을 비난해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그의 무례함은 정평이 자자했던 터이니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최근의 행보만 놓고 보아도, ‘영화기관 부산 이전반대 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칠순 나이가 무색하게 영화 외적인 일에 매진하고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요컨대 영진위 문제라는 시급한 불을 끄자고 소방수를 불렀더니 난데없이 나팔수가 나타난 격이다.

그의 주장이 하나 같이 근거 없고 분풀이로 가득 차있는지라 반박할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영화계 선배' 예우차원에서 한 마디 첨언하자면, 나는 도무지 그가 성공시켰다고 주장하는 무수한 영화들이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다.

소위 그의 전성기라 불리던 1960년대 중반에는 나이가 어린 탓에 볼 기회가 없었으니, 그렇다면 속칭 ‘한국 에로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며 무수한 여배우를 옷 벗겼던 80년대에 만든 영화들을 말하는 건가. 내 경우 80년대 나온 웬만한 한국영화는 모조리 보았고, 에로영화들 또한 동시상영관에서 빠짐없이 보았지만 ‘조류에로’ 삼부작인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의 감독이 정진우라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겨우 기억해냈을 정도다. 아, 그러고 보니 <가시를 삼킨 장미>라는 걸출한 에로영화도 있었다. 결국 정진우가 말하는 ‘영진위가 없던 시절에 제작해 성공시킨 영화’ 들이란 시류에 편승하여 오직 관객동원에 재미 본 작품을 말하는 것일 터.

과거 한국영화의 한 축을 담당했고 이제는 선배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내는 이 노감독을 보면서 측은지심이 드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자기들끼리 다 해쳐먹었다”는 식의, 공식석상에서 입에 담았다고는 믿기 어려운 천박한 표현을 쓴 그 자신은, 2000년 당시 ‘표현의 자유 공청회장’에 반바지를 입고 패널로 참석한 조영각(현 서울독립영화제집행위원장)에게 “이런 자리에 반스봉을 입고 오다니 영화계 선배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무례한 처사라”고 호통 쳤던 사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시카고학파의 거두인, 밀튼 프리드먼 M. Friedman은 후배교수 로버트 루카스 R. Lucas 를 위해 시카고 대학을 떠나 MIT로 자리를 옮긴다. 정점에서 홀연히 내려와 후배에게 길을 열어준 프리드먼의 용단이, 로버트 루카스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해 오욕의 말년을 보낸 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정진우의 좌충우돌은 그런 점에서 반면교사로 충분히 활용할 가치를 지닌다.

나이가 들었으니 아랫목으로 물러나라고 권하는 것도 아니요, 선배영화인의 노력과 업적을 무시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영화를 위해 청춘을 바쳤고 한국영화의 오늘을 일궈낸 선배영화인의 한 사람에게 보내는 바람이란 다른 게 아니다. 진정으로 한국영화의 발전과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념과 색깔의 망령에서 벗어나 경륜과 지혜를 겸비한 선배로서의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설사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눈 먼 후배들이 날뛸지라도 모름지기 어른이란 큰 산 같은 존재감으로 경거망동을 경계하고 훈도(薰陶)해주어야 마땅한 일일 터. 그럼에도 선배영화인이라는 자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막말을 퍼부어대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 라고 한다. 목적이 불순하니 과정이 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릇 감독이란 영화로 말해야 하는 법. 팔순의 고다르와 이스트우드와 백수를 목전에 둔 올리베이라가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마당에 왜 우리의 노장은 나팔수를 자청하거나 어른대접 받는 것에만 골몰하는지 안타까울 노릇이다. 이것도 10년 좌파정권 탓으로 돌릴 것인가? 정진우는 선배의 덕목이 무엇인지, 진정한 보수의 길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군사독재 시절, 반공영화로 정권에 화답했듯이) 차라리, 영화로 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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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listasha.wordpress.com BlogIcon alistasha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ㅋㅋ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현장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눈에 훤~합니다.. 그리 크지 않은 지방 시골에서 자랐던 저는 오히려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부족합니다...
    제가 도덕적으로 교육을 덜 받았거나 가정교육을 못받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시골에 살면서 어른이지만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분들을 너무나 많이 접하며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갑을논박으로 끝났으며.. 선배라고 불리는 자칭 성공했던 감독이라는 분의 거친 말언 등... 에휴.. 답답하셨겠습니다..

    2009.08.26 02:04
  2. 조국의 미래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어서 추태를 부리는 인간들이 설치는 세상이 지금정권입니다

    2009.10.11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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