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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PIFF 5박 6일 간의 리포트

필진 칼럼 2007. 10. 12. 07:59 Posted by woodyh98
20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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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모든 문제는 그 놈의 술 때문이다. 걱정했던 인사이동 건도 문제 없이 넘어가고 휴가도 제때 냈기에 기차표 끊어서 내려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술 때문에 가방을 분실하는 최악의 참사(?)를 겪게 되었고 그 바람에 부산을 내려가려던 일정에도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게 되었더란 말이지. 이래저래 기분 좋은 일들이 연속으로 터지는가 싶었는데 꼭 이런 식으로 태클을 걸어주신다. 이 무슨 장난의 운명, 아니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 어쨌든 난 해철 형님의 샤우팅이 귓전을 울리는 듯한 환청현상에도 불구하고 부산행 열차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거고 하기로 했던 일은 해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산했던 KTX 광명역의 풍경을 떠올리며 무리 없이 티켓을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여유 있게 매표구를 향했는데 이게 왠걸? 일반석이 모두 매진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노란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어르신들께서 줄을 쫘악 서계시는거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시는건가? 그래. 기왕에 이리 된 거 태어나서 처음으로 특실이란걸 한번 타볼까 하다 7천원 더 비싼 영화관람석 티켓을 끊었다. 영화제 관람하기 전에 몸 한번 풀어주는 의미에서 김상진 감독의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을 보았다. 덕분에 내가 기차만 타면 해주셨던 열차 맥주 시음행사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하긴, 내가 또 술타령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일이지. 영화 다 보고 나니 도착시간까지 한 30분 정도가 남아있다. 대략 2년만이다. 그 땐 주말에 잠깐 와서 간만 보고 가는 것이었지만 이번엔 꽤 오랫동안 부산에 체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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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긴 긴 여름. 남들 피서 다녀올 때 열심히 땜빵 해주고 참아왔던 보람이 이제야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뭐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애초부터 나란 녀석에게서 이번 영화제를 냉정하게 검토해보겠다는 생각 따윈 자리 잡을 틈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저런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기사들을 못본 것도 아니나 굳이 나까지 거기에 동참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이번 부산행은 내 휴가를 겸하고 있다. 그렇다. 난 일 하러 온게 아니라 만사 제쳐놓고 휴가를 즐기러 왔단 말이다. 그리고 기대하고 고대하던 잔치집을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방문객의 입장에서 본다면야 눈 앞에 놓인 음식들 챙겨 먹는 게 급하지 문제점 찾는 건 관심 밖의 일이다 이 말씀. 어차피 영화제 일정의 후반부에 속하는 시점에 부산에 내려 왔으니 연예인들 구경하는 것도 물건너 간 셈. 그런데 꼭 연예인 봐야 제맛인가? "영화제"의 메인 메뉴는 누가 뭐라 해도 영화이다. 잔치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포식하듯 영화를 보고 함께 자리한 사람들과 그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난 영화제를 찾은 것이다.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쿵 저러쿵 불평 늘어놓는다고 당장에 바뀌는 것도 아닐테니 본전 생각 안하려면 일단은 즐기고 볼 일 아니겠나. 영화제를 많이 안다녀 봐서 이번 상영 프로그램들이 전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본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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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의 풍경도 나름대로 운치 있다. 가을에 찾아도 바다는 바다였단 말이지.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무료했던 지난 여름을 보상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다만 한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해운대 바닷가에는 왜 갈매기 보다 비둘기가 더 많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참 알 수가 없다. 서울에서 줄창 보아 온 비둘기, 부산에도 참 많구나. 아무거나 잘 먹으며 아무데서나 잘 사는 비둘기. 아마 핵전쟁이 터져도 바퀴벌레와 비둘기는 살아남지 않을까? 머나먼 미래, 지구의 지배자는 비둘기와 바퀴벌레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아주 잠시동안 해보았다. 파빌리온 게스트 라운지에서 공짜 커피도 마시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설치한 DVD 판매부스가 눈에 띈다. 한국고전걸작들을 할인가로 판매하고 있다길래 김기영 감독의 [양산도]를 잽싸게 구입했다. 그리고 핑계김에 영상원 측의 담당자 분과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시도. 사진 촬영에도 친절하게 응해주시고 부연설명도 잘 해주시고 글 잘 써달라는 당부의 한마디도 잊지 않으신 한국영상자료원 디지털정보화팀 연구원 이승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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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 100선의 일환으로 다양한 작품이 출시예정이며 이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들인 [집 없는 천사] (1941), [지원병] (1941), [반도의 봄] (1941), [조선해협] (1943) 이 네 편이 박스세트로 발매되어 있다. 그 역사적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소장할만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승재씨의 설명에 의하면 주요 구매층이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이라고 한다. 한편으론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문화이며 우리의 역사인데 정작 우리들 본인은 무심하다는 것. 반성해야 될 일 아닐까? 물론 이런 나도 가격이 제일 싼 [양산도] DVD만 구입했다. 일단 나부터 반성하자. 반.성. 어쨌든 중요한 건 한국영화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고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는 사실이다. 11월부터는 저렴한 가격으로 VOD 서비스도 실시될 예정이라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지면을 빌어 한국영상자료원의 이승재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이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한국영화의 든든한 뿌리라고 할만하지 않을까? 다시금 하염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이번엔 게스트 라운지에서 티켓 예매 업무를 맞고 있는 자원 봉사자들과 접촉을 시도해 보았다. 요즘 초상권과 사생활 침해가 하도 문제가 되어서 사진촬영을 허락해줄까 걱정했었는데 그 분들은 너무도 쾌활하게 사진촬영에 응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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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에 젬병인 날 위해 조명까지 고려하며 포즈를 잡아주신 총무부 티켓팀의 박예순씨, 박경희씨, 장영은씨. 내가 사진 좀 찍어도 되겠느냐는 말 안했으면 되려 서운해 하셨으려나? 나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고 있는데 그 분들은 지칠 법한 상황에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고 계셨다. 영화제와 관련하여 애정어린 비판을 부탁하는 저들 3인방에게서는 그야말로 한점 그늘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제를 빛내는 것은 유명 연예인도 아니고 기자들의 플래쉬 세례도 아니다. 저들 3인방과 같은 이들의 열정이 있기에 부산국제영화제가 더더욱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일터. 그들도 조금도 시간이 흐르면 젊은 날의 한 때를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게 되겠지. 혼자서 줄창 영화만 보고 다니다 모처럼 기분 좋은 수다를 듣게 되니 나 역시도 그들의 활력을 수혈 받게 된 것 같다. 부산엔 영화 보는 재미 뿐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는 재미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박예순씨, 박경희씨, 장영은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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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편의 영화를 더 볼 예정이고 내일은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일이다. 축제의 끝자락엔 늘 약간의 쓸쓸함과 허전함이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번만큼은 맛 난 음식을 양껏 먹은 듯한 포만감과 함께이기를 바라며 남은 일정을 마무리지어야 될 것 같다. 실은 지금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 소화제가 필요할 정도로. 뭔가 냉정한 평가를 바란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사적인 소감 외엔 내가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난 즐기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고 즐거움이란 내가 영화를 보고 영화제를 찾는 가장 큰 이유이다. 즐겁지 않다면 모를까 즐거운데 굳이 트집을 잡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제 난 또 발걸음을 옮겨보도록 해야겠다. 이곳의 풍경을 좀 더 깊숙히 새겨놓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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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최고의 인기캐릭터 꿀벌씨(꿀벌군? 꿀벌양?)와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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