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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3


결코 달콤하지 않았던 [달콤한 인생]과 우아할 수 없었던 [우아한 세계], 그 반어적 화법으로 꼬여버린 인생을 우린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에둘러 가지 않는다. [즐거운 인생]은 정말로 ‘즐거운 인생’그 자체를 그리는데 공을 들인다.“사는게 어떻게 즐거울 수 있니.”“이 빌어먹을 현실을 보라구.”“ 에잇, 더러운 세상.” 물론 ‘인생’ 혹은 ‘세계’, 이 참을 수 없이 진중한 단어에 부과된 가치관은 제각각 자유다. 그러니까 [즐거운 인생]이 즐거운 인생을 그리려는 시도를 애시 당초 받아줄 용의가 없으신 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다.

영화는 2시간짜리 판타지 놀이다. 앤딩 크레딧이 오르고 극장 밖을 나설 때 얄밉게 전해오던 그 이질감으로 영화 속 세계를 애타게 그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즐거운 인생]은 이러한 극장에서 영화보기 체험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 킬링타임용 영화라는 게 아니다. 뭐랄까. 현재진행형 영화라 할 수 있겠는데, 꿈과 행복 등 ‘즐거운 인생’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영화 속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끝낸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식의 사려깊은 배려는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 속 밴드 ‘활화산’이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이 영화가 갖는 힘은 신기루처럼 서서히 사라진다.

이 영화를 지탱하는 두 가지 요소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영화 속 남자들의 환상.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바로 그때,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그들의 외침. 그리고 “나이들면 마누라보다 친구야” 라는 남성 연대의 끈끈함.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도 ‘활화산’만큼 촌스러운 작명센스를 보이며 ‘충고브라더스’ 라는 밴드가 등장한다. 그들 역시 중년이 되어 다시 모이는데 그 중 단 한명만이 지방 밤무대를 전전하며 음악을 한다.

다시 만난 친구들은 그에게 “넌 행복하니?” 라는 질문을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다른 상황, 그러나 같은 결론.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밴드를 떠나는 이들을 붙잡을 수 없지만 [즐거운 인생]의 인물들은 밴드를 구성하기 위해 서로를 붙잡는다. 두 영화가 놓인 지점이 다름을 알려주는 상황들.

둘째,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근석이 연기한 현준이다. 현준이 없다면 이 영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불안한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드는 것도 바로 현준의 존재 때문이다. 중년 상대의 나이트 클럽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던 밴드 ‘활화산’은 오로지 현준 덕분에 홍대 클럽으로 레벨 업! 한다. (‘현준빠’ 들이 이미 죽치고 있을 정도로 그의 외모, 연주.보컬 실력은 진작부터 홍대 클럽에서도 통한다) 현준과 죽은 아버지 사이에 어느 정도의 교감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현준이 ‘활화산’이라는 곳에서 보컬로 활동하는 이유는 아비에 대한 일종의 ‘제의’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의 활화산 멤버들도 친구 잃은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친구 영정사진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기영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친구의 시선처럼 부감으로 찍혔다. 그 시선 앞에서 기영은 절대적으로 무기력하다. 불타던 기타는 그런 그에게 결정적인 구실로 다가오면서,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니까 현준과 활화산 멤버 사이의 암묵적인 제례의식.

덧붙여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덧붙여' 얘기되고 있다. 김호정이 연기한 기영의 처가 그 중 조금 독특한 위치에 있다. 경제력과 가장의 권위를 가진 그는 기영을 주눅들게 한다. 하지만 이게 조금 애매한 게 그가 기영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님 기영이 그렇게 요령있게 포지셔닝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

하여튼 그는 바람피는 기영에겐 철썩! 뺨 한대를, 음악하는 기영에겐 짝짝! 박수를 보낸다. 후회와 피곤함은 내 몫이니, 그대라도 꿈꾸소서? 환상 속의 그대를 보는 건 다시 내 몫이 될테니. 혁수와 성욱의 처에 대한 캐릭터는 설명이 부족하거나, 설명이 쉬워 다소 아쉽다.

남,녀의 환상과 제례 의식으로 이들의 영화 속 삶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여기서 하지 않기로 한다. 이 영화는 이런 종류의 질문을 요구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이미 서두에서 밝혔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준익 감독은 [즐거운 인생]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자기는 그걸 말이 되게 만드는데 애썼다. 라고 했다. 그렇다. [라디오 스타]도 그렇고, [즐거운 인생]도 그렇고, 말이 안 되거나 혹은 같은 의미로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클라이막스 지점에 가선 분명 울컥!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혁수는 마치 유언을 남기듯이 어린 아들에게 말한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너바나, 신중현, 사랑과 평화, 시나위 는.... 꼭 들어야 한다” 물론 아들은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이건 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읊조림이다. 이 읊조림은 20년 전 그가 락을 모르는 대학후배에게 했을법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더 이상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고 싶은, 오로지 즐거이 살고 싶다는 욕망이 진행형으로 드러난다.

[즐거운 인생] 은 판타지로서의 꿈을 무조건 지지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들이 꾸는 꿈이 한낱 백일몽에 불과할지언정 그 백일몽이 그려지는 과정을 무책임하게 쓱쓱 그리진 않는다. 그리고 꿈은 꾸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거라고, 행동하는 행복론을 거슬리지 않게 설파하고 있다. 인생 뭐 있어. ‘active' 하게 놀다 가면 그뿐인 걸. ‘아, 나도 기영의 생글거리는 웃음처럼 즐겁게 살아야지.’ 라는 다짐이 어린 시절 일기 끄트머리에 습관적으로 덧붙었던 ‘참 즐거웠다’ 식의 무심한 감상이 아니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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