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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디워], 그리고 토론과 평론

필진 칼럼 2007. 8. 13. 17:39 Posted by woodyh98
하성태


[디워] 관련 100분 토론은 최소한 인터넷 상에서 만큼은 아프간 피랍 사태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잠재운 ‘디워 광풍’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토론 시작 전부터 7,000여 건의 시청자 의견이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올 정도의 열기 혹은 광풍은 확실히 이례적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인터넷은 ‘진중권’이 누구냐는 네티즌의 추격전, 각종 블로그 포스팅, 진중권의 발언을 받아쓰기한 언론들의 뉴스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먼저 패널을 보자. [후회하지 않아]등을 제작한 청년필름 대표이자 최근 블로그 글로 디워 팬들에게 사이버 테러를 당했던 김조광수 씨와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가 ‘디워광풍’의 반대파로, 문화평론가 하재근 씨와 스포츠조선의 김천홍 기자가 옹호 패널로 나왔다.

‘심형래 감독은 겸손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요지의 의견을 개인 블로그에 피력한 바 있던 김조광수 대표는 항간에 떠도는 풍문에서 진실이 되다시피 한 심형래 감독에 대한 충무로 왕따설을 반박했고, 학벌 없는 사회의 사무처장이라는 하재근 평론가는 평론가라면 응당히 한국 영화를 응원해야 마땅하다며 ‘소말리아’ 영화를 예로 드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김천홍 기자의 논지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마케팅은 마케팅일 뿐이다’라는 아주 기본적이고 시의 적절한 일침이었을 뿐이다.

논란과 포커스의 중심은 단연 진중권 이었다. [디워]의 이데올로기를 ‘애국, 민족, 기술력, 인생극장’으로 정의하고, 평론을 하려고 해도 영화가 엉망진창이라 별로 할 것이 없다는 식으로 초반부 혹독하게 영화 내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만 CG와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해서는 두고 볼 여지가 있다며 호흡을 고르는 인상을 보여줬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민 논객이 예전에 진중권이 쓴 [300]의 평을 예로 들며 비교하자 욱하는 성질의 발언들이 이어졌다. 제발 평론을 하게 놔둬라, 충무로는 한 달에 한 번 지하철 갈아타는 관계다, 심형래가 무슨 국가 보안법이냐, 황우석, 아니 죄송합니다, 등 현재 인터넷에서 [디워]와 관련한 어떠한 비판 글과 논평에 대해 ‘입막음’을 하는 이 파시즘적 분위기에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자, 논란이 된 부분을 찬찬히 곱씹어 보자. 스포일러를 왜 유포하느냐고? 도대체 스포일러가 보도의 전가처럼 휘둘려 진 것이 언제부터인가. 절름발이가 범인이라는 [유주얼 서스펙트],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는 [식스 센스]부터 아니던가. [디워]의 팬들은 괴수영화에 스토리가 무슨 상관이냐, CG만 볼만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충무로 조폭 영화들이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내러티브가 뛰어나느냐고 들이대기 일쑤다. 착한 이무기가 죽느냐, 안 죽느냐? 이게 스포일러인가. 어차피 권선징악에 주인공이 승리하고 전 세계의 평화가 지켜지는 것, 이게 괴수 영화의 기본 플롯 아니던가. 무슨 대단한 반전이 숨어있다고 스포일러 운운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개봉 전 프리뷰도 아니고 개봉 후 1주일이 넘게 지났으니 만큼, 그리고 영화의 내적인 완성도를 짚고 넘어가려면 무릇 그 정도의 디테일은 설명되어도 마땅하다. 아마 홍보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토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면 진중권의 의도를 눈치 챌 수 있으리라. 아리스토텔리스의 극작론 중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끌고 들어온 것도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자, 스토리 봐줄 만하다고, 아니면 상관없다고 자꾸들 그러는데 이래도 스토리가 엉망 아니냐는 것. CG나 애국심, 민족주의 이건 다른 영역이지 않느냐. 우리 영화라고 옹호해주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평론이냐, 이거다. 하고 싶은 얘기는 정작 [디워]를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루고 있는 우리 사회와 광풍을 몰고 다니는 팬들에게 쓴 소리를 내뱉고 싶은 거다. 그래서 ‘황우석’이란 이름을 실수인 듯 내뱉었지만 선수들이 보기에는 고도로 계산된 행동이다. 여기서 생각나는 건 프로이트의 말실수 이론. 진중권이 보기에 [디워]는 영화 내적인 평론의 영역에서 논할 것 보다는 그 외에 사회적인 맥락에서 짚을 수밖에 없기에. 평론가의 눈으로 [괴물]은 이것저것 논할 가치가 있는 엄밀히 따지자면 장르 영화가 아닌 작가 영화에 가까웠다. 외국에서 실패한 요인을 몇 가지 꼽자면 바로 일반 상업 영화와 다른 플롯 구조와 한국적인 콘텍스트 때문 아니었던가. 그렇게 따지만 [디워]는 전체 관람가에다 상업 영화 아니냐고 반박하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이건 시민논객이 ‘전체 관람가’ 영화에 왜 미학적 잣대를 들이대느냐란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세력이나 심형래를 지지하는 세력이나 진중권이 보기에는 원천기술에 목 매다는 그 놈이 그 놈인 셈이니까.

다음으로 화법. 진중권 교수의 글을 읽어 본 이가 있다면, 그리고 그가 토론 프로그램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걸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매체마다 화법이나 문체가 약간씩 차이가 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미학이나 철학에 관한 글 보다는 현실 사회에 대한 논평이 훨씬 날이 서 있고, 반대 진영의 토론객의 논리가 허술 할수록 혹은 주제의 경중에 따라 화법은 달리잔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블로그 대문 글을 보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정치 평론과 미학 평론, 토론과 평론의 언어는 분명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네 패널 중 가장 날이 서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왜? 그 만큼 영화 한 편을 놓고, 그리고 자신이 볼 때 미학적으로나 혹은 할리우드를 정복하기에는 전체적인 완성도를 놓고 보자면 한참 떨어져 보이는 영화를 놓고 토론을 하고 있는, 거기에다 [300]을 놓고 한 평을 가지고 상대의 말을 잘라가며 날을 세우는 시민 논객의 질문 이후에 전투력이 급상승 한 것 뿐이다. ‘애국, 민족, 기술력, 인간극장’이라는 논리를 전개했음에도 피드백된 질문은 할리우드 영화와 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느냐는 우문이었으니 말 다했다. 평론가들에게 평론을 하게 내버려 두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로 들리지 않는 것일 게다. 왜 황우석 팬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당한 바 있는 그다.

토론은 자뭇 논리가 확실해야 한다. 어떤 보수, 우파 논객이 나오더라도 논리만 확실하다면 토론에서 이길 수 있다. 단숨에 거성으로 떠오른 전원책 변호사를 보라. 여전히 잘나가고 있는 전여옥은 어떻고. 이데올로기가 어떠하든 그 만큼 준비와 식견 그리고 내공이 쌓인 자만이 토론에서 자신의 말 빨을 패널들과 시청자 혹은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든다고? 전원책이 이안을 혼낸 건 되고 진중권이 목소리를 한 톤 높인 건 문제인건가.

이제 평론의 문제를 짚어 보자. 도대체 언제부터 대중들이 평론가 한명 한명의 글을 퍼다 나르며 이리도 문제가 많다고 떠들어 댔었는가. 아니 도대체 그 평론가의 글을 몇 편이나 읽었단 말인가. 또 언제부터 평론가가 추천하는 영화를 몰려다니며 봤단 말인가. 평론이란 것은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닌 이상 한 개인이 지금껏 쌓아올린 세계관과 철학의 산물이다. 그걸 의식적으로 전면에 배치하면 섹시한 글이 될 수도 있지만 평론이란 건 어쩔 수 없이 기계적 중립을 지킬 때도 있고 과도하게 이데올로기와 자의식을 드러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라면 혹은 공인된 지면에서라면 충분히 논쟁과 반박글로 가능하다. 한때 ‘인물과 사상’이 인기를 얻었던 것도 바로 이 공개되고 장려된 논쟁과 반박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인터넷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하다못해 블로그는 트랙백 기능이 있지 않은가. 이게 다 인터넷 민주주의기 가져온 폐혜라고? 그렇게 투덜거리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명약관화한 문제가 아니다.

평단과 대중의 괴리. 이 화두는 영화판에 관심을 기울인 이라면 누구라도 제기하고 술 안주거리로 즐겨왔을 문제다. 왜 이해되지 않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호평하고, 그네들이 좋다는 [다세포 소녀]는 네이버 평점에서 최하위를 달리냐 말이지? 자, 그렇담 이건 어떤가. 먼저 홍상수. 이 프랑스 분위기 물씬 나는 감독의 영화들은 단 한번도 흥행한 적이 없다. 고현정의 데뷔작이면 뭐하나. 하지만 호평한 평론가들을 이렇게 대놓고 욕하지 않았다. 자, 다음은 천만 영화들.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는 대중이 열광하고 사회적인 이슈가 됐음에도 비평가들은 제각각 논리를 내세워 지지하거나 비판했었다. 그 다음 예는 김기덕. 관객들은 물론 평론가들도 호불호가 완전히 갈린다. 반페미니즘이라느나 가혹의 작가라느니 말들이 많지 않은가. 진중권이 지적했지만 제 할일 하게 놔두면 된다.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으로 텍스트를 평하면 그만이다. 그 평들을 수용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는 역시 관객과 수용자의 몫이다. 재갈을 물일일이 아니라는 거다. 왜 [디워]에만 이 난리들인가. 진중권의 논리와 일맥상통하지만 CG=할리우드=문화산업=경제력=민족주의 공식에 심형래 감독의 열정에 대한 호감까지 곁들여 진거 다 안다. 하지만 이쯤 되면 미쳐 돌아가는 것 아닌가 말이다. 상식 수준에서의 논쟁과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중, 고등학교 수업에서도 배우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평론가 일반이 대중적인 화법으로 소통하지 못한 것은 꾸준히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어떤 인문학과 관련한 스페셜리스트도 대중을 전적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나쁘게 얘기하면 지식인의 존재이유고, 좋게 얘기하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소통하는 자신들의 방법론일 뿐이다.

괴리는 여기서 온다. 인터넷과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 하면서, 특히 영화라는 대중 예술은 점점 더 낮은 데로 임하고 있다. 내 돈 7,000원 내고 즐거우면 됐지 당신이 무슨 상관인가. 맞다. 하지만 누구도 선동하지 않았다. [디워]를 보지 말라고. 그들은 하던 대로 자기 일을 해 왔을 뿐이다. 대중들이 열광한다고, 언론이 부추긴다고 하루아침에 응원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별점으로, 혹은 좋다, 나쁘다로 영화를 평가하는 시대, 좀 더 생산적인 사유가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속도전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누구나 블로그로, 미니홈피로 담론 아닌 담론을 생성해 낼 수 있고, 또 우리는 기꺼이 그렇다고 착각하고 살아간다. 적어도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전문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지 오래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평단이 자처한 측면도 있지만 분명 대중들이 영화를 전적으로 오락으로 취급하는 측면이 더 크다. 더 이상 초고속 인터넷 시대에 사유와 대중은 점점 더 등을 돌려가고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대중 예술이었다. 평론가들은 그들의 일을 계속 하면 된다. 다만 앞으로 좀 더 대중적인 화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겠다. 화법만큼이나 2007년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영화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더 한 가지 던져졌다. 똘레랑스라는 구태의연한 결론을 끌어내고 싶지는 않다. 자기 할일을 할 수 있게 입막음을 하지는 말자는 거다. 그리고 댓글을 갈무리해 기사와 여론을 만들어 내는 시대이지만 제발 상식적인 토론을 하자는 거다. 100분 토론이 다시금 가르쳐 준 교훈이다.

덧글. 충무로 VS 심형래 감독의 발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버센스다. 쇼박스과 [디워]에 관여한 것은 꽤 오래된 얘기고 이 정도 대규모 극장을 잡았다는 것은 이미 IN충무로란 얘기다. 그리고 충무로라는 규정은 도대체 누가 내리는 건가. 제작, 투자, 마케팅 회사들은 대부분 강남으로 이사간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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