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중력의 법칙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지구가 인간을 끌어당긴다면 인간은 하늘로 수직상승 할 수 없다. 영민의 발기부전, 중호의 타락한 모습. 여기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들 역시 추락하는 이미지 일색이다. 한 시민은 정치인의 얼굴에 배설물을 던져 경찰서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위신이 떨어진 정치인의 모양새. 경찰들은 배설물 투기 사건으로 향할 여론의 시선을 살인 사건으로 돌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권력 앞에 쪼그라든 경찰들의 정치적 행태는 추락한 관료사회의 모습이다. <추격자> 안에는 앞에서 열거한 인물들이 만들어 놓은 풍경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현실 정치의 권력 구조가 있으며, 권력 앞에서 꼬리치는 인간들이 있다. 이런 몇 가지 풍경을 먼 배경으로 하여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카메라는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땅과 수평을 유지하며 중호와 연민의 숨 가쁜 질주를 따라가기에 바쁘다. 달리다가 지친 영민과 중호의 육체를 대변하듯, 카메라의 포커스가 어그러지기도 한다. 즉 굳이 이 영화의 리얼리즘을 인물과 사건으로 논하기 이전에 카메라는 현장성을 보여준다.
2시간짜리 영화는 대략 24시간의 도망과 추격을 밀도 높게 보여준다. 미로처럼 엮인 골목길을 야심한 밤에 질주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한국 영화에서 (필자 스스로 칭하길) ‘골목길 느와르(혹은 스릴러)’로 정면 승부하지 못했던 한국영화에 숨통을 틔어주고 있다. 특이한 것은 추격이 벌어지는 골목길과 반 지하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언덕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 맥거핀처럼 등장하는 교회의 십자가 역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롱샷으로 찍힌 마을의 모습은 서울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득히 멀고도 높다. 교회의 십자가는 어두운 밤 외롭게 그리고 밝게 빛난다. 마지막으로 살인에 쓰이는 망치와 골프채는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영민의 손에서 수직상승한 망치는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진다. 영민의 손에 살해당한 자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추격자>안에서 살아가는 자나 죽은 자 모두 땅으로 내려가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것들은) 하늘에 떠 있다.
중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그에게도 인간의 악한 본성이 있다. 하지만 중호는 남의 간을 빼먹으며 지갑을 채울지언정, 남의 피와 살을 갉아먹는 일은 하지 못한다. 감기로 앓고 있는 미진에게 매정하게 전화를 걸어 여름에도 감기가 걸리냐며 핀잔을 주는 그는 인간미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이다. 영화 속 미진과 미진의 딸의 입을 빌리면 쓰레기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다. 공직의 힘을 빌려 깡패들에게 기생했던 사람이며, 지금은 변태들을 이용하고, 몸 밖에 가진 게 없는 여자들을 매매하며 살아간다. 중호가 하류인생으로 살아오면서 배운 건,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법이다. 중호에게 미진은 재산의 일부였으며, 영민은 중호의 재산을 앗아간 (중호에겐) 더 극악한 녀석이다. 중호가 영민을 찾아다니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영민은 보도방 아가씨들을 불러서 살인을 저질렀으며, 이를 계기로 중호와 영민의 동선이 만나게 되고 충돌하게 된다.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중호의 차와 영민의 차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 것도, 어찌보면 단순한 우연일 뿐이지만 사건으로 보자면 영화의 전개과정이다. 이 장면은 중호의 사유재산이 훼손되는 의미에서 사건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계기가 되어준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직감적으로 영민이 범죄자임을 알게 된 중호. 이제 중호와 영민은 지리멸렬한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영민의 범죄는 성적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으며, 영민은 자기폐쇄적인 정신분열증 환자의 모습이다.
<추격자>는 중호와 영민을 통해서 선-악을 이분법하지 않는다. 중호에게도 악한 모습이 존재한다. 다만, 중호와 영민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지켜야할 재산과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사유재산을 잃은 중호의 분노는 영화 후반부가 되면 사라지게 된다. 영민은 자신이 미진을 살해했다고 경찰서에서 밝히지만, 중호는 영민이 여자들을 팔아먹은 인간이지 살인을 저지를 위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찰에 넘겨진 영민을 뒤로하고, 중호는 자신의 재산인 미진을 찾으러 다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호는 미진의 숨겨놓은 딸을 만나게 된다. 미진의 딸은 중호의 인간미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사건에 집착하는 중호를 향해 한 경찰 동료는 “언제 인간될래?”라고 말을 한다. 중호가 사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미진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호의 뇌리 속에서 미진의 딸이 스쳐지나가고, 딸아이의 모습위로 살아서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를 미진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김윤석이 연기한 중호라는 캐릭터는 후반부로 갈수록 지쳐간다. 세탁기에서 탈수해낸 인간마냥 그의 몸은 수분이 모두 빠진 것 마냥 맥없이 늘어진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중호가 자신의 목을 누르는 영민의 손아귀를 뿌리칠 수 있었던 불가사의한 힘은, 가시화되지 않은 그의 선한 본성 때문이다. 김윤석은 이빨을 깨물며 자신의 육체를 땅 바닥에 수차례 내리꽂는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이에 그의 육신은 흔들리고 뒤섞이면서 일종의 중화과정을 거친다. 거짓으로 살아온 인생. 거짓과 위선적인 삶을 통해 가시적으로 악해 보였던 중호의 내면과 외면이 마지막 남은 연민과 동정이라는 감정과 만났을 때,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분노가 폭발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어금니 깨무는 소리가 들리는 중호의 처절한 모습은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것 같다.
사건은 골목에서 벌어졌고, 도심에서 외진 곳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종로의 고층건물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병실의 잠든 미진의 딸의 손에 중호의 손이 포개어질 때 카메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메트로폴리스는 많은 것을 감추고 은폐한다. 결국, 이 영화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것은 매스미디어에서 감추고 싶을 혹은 정치권력이 개입하고 싶지 않은 또는 소시민조차도 보고 싶지 않은 일이었음을 말해준다. 드러나지 않고, 드러나더라도 감추고 싶은 삶의 모습과 잔혹함. 도시는 늘 현대적인 미적 감각을 뽐낸다. 병실 창 밖으로 보이는 건 고층 빌딩아래의 모습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는 아래쪽을 보지 못한다. 결국 많은 일들이 은폐되어왔고, 암묵적으로 은폐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서울의 도심 속 외진 곳에서 일어난 일을 땅과 가장 가깝게 찍은 영화이다. 기쁜 마음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추격자>가 아니라면 보지 못할 도시의 공기와 도시의 이야기가 끈질기게 살아있다. 감추려고 해도, 숨으려고 해도 살아있는 이야기를 감출 수는 없다.
'필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과 낮] 일상적인 것, 우연적인 것 (0) | 2008.03.10 |
---|---|
[아름답다] '동사'로 이야기하는 벌거벗은 마네킨 (0) | 2008.02.23 |
[추격자] 살기위해, 내리쳐라 (2) | 2008.02.22 |
[클로버필드]와 [잠수종과 나비]가 선사하는 ‘불편함’의 정체 (0) | 2008.02.21 |
[추격자] 목덜미까지 차오르는 긴장감 (0) | 2008.02.04 |
[순응자]가 일깨워준 몇 가지 것들 (0) | 2008.02.01 |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도훈님 글 정말 정말 잘 쓰십니다.
2008.02.23 01:36땅을 향해 있다는 영화분석도 날카롭고요.
영화 내공 정말 대단대단....
인천에서 준이 드림.
색다르고 명쾌한 해설..
2008.02.23 03:18웬만하면 읽지 않는 영화 리뷰인데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