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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ger Than Life. 우리가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일상의 많은 것들은, 사실 안에 엄청난 독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때론 인생보다 더 크게 폭발되어 결국엔 인생을 잠식해 버린다. 2009년 한국, 우리들 일상의 바램은 그저 '조금 더 잘 살기'다. 참 소박해 보이는 이 소망은 현재 우리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담보로 하고 있는가. 대가가 한 사람 뿐 아니라 한 가족을 잠식해 버린 일화가 50여년 전의 이 미국영화에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다들 지루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만큼은 지루한 삶이 아니라 생각하고 싶지만 그걸 인정하는 게 쉽진 않은, 적당히 화목한 중산층 가정이다. 가장 에드 애버리는 초등학교 선생을 하면서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택시회사에서도 일한다. 그러던 중 에드는 희귀병을 얻어 쓰러지게 되고, 의사들에게 처방 받는 약 코티존에 중독되면서 미쳐간다. 이 미쳐가는 과정을 영화는 정말 무시무시하게, 동시에 흥미롭게 그려낸다.

퇴원하고 처음 약을 먹었을 때 에드는 약간의 조증 증세를 보인다. 쉰만큼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현재 우리에게도 참 익숙한-생각과 함께. 퇴원도 했겠다, 다시 힘도 얻었겠다, 아내 루와 아들 리치와도 더 돈독해졌겠다, 이제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까 싶어질 때 에드는 약병을 열다가 '아 참, 아까 먹었지' 혼잣말하고 프레임 아웃한다. 특별히 눈에 띄게 찍힌 장면은 아닌데, 이상하게 오싹하다. 중독 증세를 의심하게 하는 시작은 언제나 중독 이후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두렵다.


에드의 정신이상은 심각한 자기도취와 함께 가는데, 그 시작으로 보이는 장면이 화장실 장면이다. 자줏빛 가운을 입고 거울을 보는 에드의 표정은 서서히 조금씩 변해간다. 거만한 눈빛을 짓고 얼굴근육에 힘을 주며 그런 자기 모습에 점점 빠져든다. 그는 이제 예전의 선하고 다정했던 가장의 눈망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잠시 후 거울이 깨져 금이 가면, 모든 것은 명확해진다. 거울에 비친 조각난 에드의 모습은 분열된 자아 그 자체다. (요즘엔 너무 흔해져 버린 일명 '깨진 거울 장면'. 그래도 이 영화에선 군더더기 없이 빛을 발한다.)

그의 광기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아동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급기야 아들 리치를 해하려 하는데 까지 이른다. 혐오의 대상이 유년기의 아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 을 보면, 중세까지는 아동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아동이라는 개념이 세워지고 어른의 사랑으로 보살핌 받아야 할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정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주의가 발달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50년대 미국 중산층의 가정도 이 형태의 모범답안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중산층가정의 유지가 파멸의 덫이 되어버린 가장의 무의식 속에, 아이와 자식에 대한 불안과 증오가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시종일관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2.35:1의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장악한다. 영화의 첫 장면. 카메라는 조금씩 서서히 한 건물의 문 앞으로 다가간다. 문이 홱 열리고, 수많은 아이들이 깔깔대고 뛰쳐나온다. 음악은 경쾌하고 아이들은 웃고 있지만 긴 가로 화면을 터질 듯 채우는 얼굴과 웃음소리는 왠지 기괴하다. 에드가 환자를 마치 실험대상 다루듯 하는 의사들과 대화할 때, 그는 대부분 텅 빈 가운데 홀로 있는 원 샷을 부여받고 의사들은 늘 두셋씩 짝을 지어 프레임을 꽉 채운 후 에드에게 이것저것 지시한다. 에드가 미친 상태로 아들 리치에게 수학문제를 풀게 하는 장면에서, 문제 푸는 리치를 중앙에 두고 왼쪽 끝엔 에드가, 오른쪽 끝엔 아내 루가 자리 잡고 대립한다. 이 때 에드에게 스탠드로 인한 커다란 그림자까지 등에 짊어지게 함으로써 한층 광기를 자아낸다.

영화에서 코티존은 중산층 가장의 무의식을 폭발시키는 일종의 맥거핀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실화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이것 참 남 일이 아닌 것 같다. 현재 우리의 삶에 코티존과 같은 맥거핀이 침범했을 때 미치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남을 자가 얼마나 있을까. 영화는 갑작스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마지막 웃음에 소름이 돋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의 '오싹한' 해피엔딩은 결국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삶을 나에게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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