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코앞에서도 거장을 몰라보다니!

필진 칼럼 2007. 10. 9. 16:35 Posted by woodyh98
2007.10.06


제 1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한지도 벌써 사흘이 되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영화제 소식을 보면 여전히 개막식에서 보여준 스타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베스트 드레서와 워스트 드레서가 누구라는 둥, 누구의 의상이 더 야하냐는 둥, 대선주자들이 대거 몰려왔다는 둥, 스타들이 레드카펫만 밟고 영화는 보지 않고 사라졌다는 둥, 사실 매년 영화제때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단골처럼 올라오는 기사들이다. 하나도 새로울 게 없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올해 개막식과 관련해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은 단연 신인배우 ‘허이재’가 아닌가 싶다. 파격적인 의상에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으로 인해 기자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인데, 그것이 굴욕이란다. 삼전도에서 인조가 당한 치욕도 아니고 일제강점기의 보상 문제를 간편하게 마무리 지은 군사정권의 외교 행태를 일컫는 말도 아니다. 단지 변신 때문에 기자들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하기야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어디 스타인가. 이렇게 보면 굴욕이 될 법도 하다. 문제는 이런 기사를 읽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기자가 배우를 못 알아보나’라는 냉소를 지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남의 흉볼게 아닌 이와 유사한 경우가 나에게도 닥쳤기 때문이다. 그 사정은 이러하다.


제 12회 부산국제영화제 셋째 날인 6일 오전 만사를 제치고 부산으로 달려왔다. 숙소를 잡고 ID카드를 받은 후, 제일 먼저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의논할 것도 있고 최근 들어 극장을 자주 찾지 못한 미안함이 있는데다 타지에서 만나면 반가움이 두 배가 되는 지라, 그간의 소홀함을 단박에 날려버릴 심산이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해운대 바닷가에 세워진 파빌리온 3층에 마련된 게스트 공간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외국남성과 한국여성이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인사를 나눈 여성은 독일문화원에 근무하는 분이고, 간편복 차림의 노신사는 다름 아닌!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이자 [양철북]을 연출한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이었다. 아뿔싸! 사진으로 수없이 보아왔고, 그의 영화도 적지 않게 봤건만 코앞에서도 알아보지를 못하다니. 비단 나 뿐 아니라 김 프로그래머도 인사를 나누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감독의 외모가 69살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게 보였던 것이 유일한 이유일 것이리라. 정말로 그는 도저히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너무 젊었다.(이건 절대로 비겁한 변명이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북을 두드리며 괴성을 지르던 [양철북]의 오스카를 통해 감독을 알게 되었고, 사랑과 이상을 꿈꾸다 쓰러져간 여성 혁명전사의 이야기 [레전드 오브 리타]와 [스완의 사랑]으로 그의 영화세계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그의 작품은,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사적 이익과 공공의 선(善) 사이에서 갈등하다 숭고한 희생을 택하는 크레머 신부의 이야기를 그린 [9번째 날]이었는데, 2006년 초봄이었을 것이다. 사실 20편 가까운 작품을 연출했음에도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감독이 있다면 폴커 슐렌도르프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와도 비슷한 얘기를 나눴지만, 파스빈더나 벤더스에 비해 심지어 헤어조크 보다도 더 거리감이 느껴지는(물론 영화의 문제는 아니다)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슐렌도르프는 70-80년대의 기억에 머물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아마도 [양철북]에서 오스카의 괴성이 너무 컸기 때문은 아닌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절대로 폴커 슐렌도르프의 굴욕이 아니다. 그는 너무 오랜 만에 우리에게 왔을 뿐이다.

최근작 [울잔]을 들고 부산을 찾은 폴커 슐렌도르프는 <마스터 클래스>와 <핸드 프린팅>을 하게 되고, 일요일 밤에 열리는 ‘독일의 밤’에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래저래 감독의 영화와 독일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해운대 바닷가는 여전하다. 점점 많은 인파가 모여들고 있으며, 저마다의 함박웃음 머금은 영화친구들이 씩씩하게 대로를 활보한다. 어둠이 내리고 해변에 즐비한 호텔과 콘도미니엄에 불이 하나 둘씩 켜지면 해운대는 본격적인 축제분위기로 접어들 터이다. 모래사장과 도로를 가득매운 사람들은 영화 이야기를 안주삼아 밤을 밝힐 테지. 오늘 전반부의 기록은 여기까지다. 나는 이제 [말도둑] 잡으러, 아니 관람하러 프리머스 시네마로 간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hurstvillerepaircentre.com.au BlogIcon repair iphone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글 퍼가도 될까요?

    2011.06.12 23:12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8,894
  • 1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