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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일시 : 2008년 10월 19일 (인사동 PALAZZO DUE)
좌담 :
백건영(영화평론가)
김성욱(영화평론가)
이용철(영화평론가)
박부식(영화평론가
김숙현(프레시안무비 기자)




백건영 : 네오이마주가 문을 연지 3주년이 됐다. 그 동안 인터뷰는 여러 번 했지만 객원필진들과 이렇게 모이가 자리는 처음인 것 같다. 먼저 올해 개봉작 중 주목하고 관심을 가졌던 영화가 있다면 얘기해보자. 내 경우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이 굉장히 좋았고, 의외로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도 좋았다. 이윤기 감독의 다른 영화에 비해 참신하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숙현 : 돌아보니 올해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더라. 최근엔 <고고70>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런데 의외로 평이 좋지 않아서 신기했다. ‘7080세대’의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고 얘기하는데 영화적 재미만이 아니라 70년대를 그리고 있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대중문화에서 음악이란 것, 특히 한국에서도 록이란 게 자생적으로 발생 할 수 있었는데 그게 유신이나 어떤 정치적인 사건에 의해서 확 끊겼다. 음악뿐만 아니라 대중문화가 전반적으로 그랬다. 사회가 경직되면 대중문화도 같이 죽어버리는, 이런 현상을 <고고70>이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시대는 풍기문란 이랍시고 사람들 머리를 자르고, 미니스커트를 규제하고, 음악도 그랬다. 다 아시다시피 김추자 노래는 목소리가 야하다는 이유만으로 금지가 됐다. 단적인 이미지를 보자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젊은 가수들 데려가다 술시중을 들게 하는 자들이 풍기문란 법을 만들어낸 사람들인데, 그러한 아이러니가 잘 드러난다. 예전 감독들이 이를 보여주기 위해 역사의 정치적인 면에 함몰되어 있었다면, <고고70>은 정치적인 면을 빼고도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정치와 일상이 분리될 때 일상이 어떻게 정치의 영향을 받는지에 주목한 셈이었다.




이용철 : 상반기는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을 제외하고 크게 흥미로운 영화가 없었다. 반면 최근 5일 동안 내리 봤던 한국 영화들은 전부 좋았다. 상황이 이럴 때 오히려 제대로 된 사람만 생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 7~8년 동안은 여러 영화들이 나와서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제작중인 영화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 얼마 전에 만난 PD 한 분은 젊은 피디 모임 구성원이 200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에 현재 일하고 사람이 두 명밖에 없다는 말을 하더라. 그런 상황에 정작 본 영화 5편이 다 좋았다. 모두 걸작이란 뜻이 아니라, 놀라운 영화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이 영화들을 걸러내는 그런 효과를 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반기에 영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주목했던 영화는 신동일 감독의 작품이다. 곧 개봉한다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말이다. <사과>도 4년 정도 묵으면서 오히려 더 성숙해진 느낌이더라. 풋사과가 능금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김기덕의 <비몽>도 최근 작품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이윤기의 경우 <멋진 하루>가 왜 나왔는지, 다시 말해 앞에 영화들을 이제야 알겠더라. 솔직히 이윤기의 전작들은 별로였다. 뒤로 갈수록 좋아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 사람 영화는 처음부터 비슷했는데 내가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 이 감독이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는지를 <멋진 하루>를 보고야 알게 됐다.


 



박부식 :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볼수록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지, 마케팅에 많이 현혹되는 것 같다. 기대치에 어느 정도 맞춰지면 좋겠는데 많이 그렇지 못한 것 같고. 그래서 마음을 바꿔먹었다. 영화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신인이나 중견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들에서 그들의 해야 할 역할들이 어떤 게 있을까. 신인 감독들이 보이는 신인다움. 첫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의 모든 것들을 쏟아 붓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이 잘 보이는지, 중견감독은 필모그래피를 파악하고 기준을 세워서 보려고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해진 건지, 보고 나서 만족스럽다는 영화가 별로 없었다. 가장 최근에 부산영화제에서 본 <걸어도 걸어도>란 영화가 참 영화적이고 굉장히 뭐랄까…. 세심하고 치밀하면서도 영화적 힘이 느껴졌다. 서울에 와서 <아무도 모른다>를 다시 봤는데, 그게 더 좋던걸(웃음). 한국영화 중에서는 <추격자>가 좋았다.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서 대중영화들이 갖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영화의 완성도나 문법을 밀어붙여서 평가 받는 다기 보다, 대중적인 평가들이나 취향들과 영화적인 잘 어우러지는 게 한국영화의 미덕이라고 흔히 말해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국영화들에 대해서는 영화적 완성도 보다는 그 영화가 다루려고 했던 테마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나 하는 점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미학적인 취향에서만 더 나았던 영화나 못했던 영화는 있었다. 하지만 그 보다 한국영화가 사회에서 다뤄지는, 관계하는 방식들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한국사회 잔인하지? 한국사회가 뭐 그렇지 라고만 받아들일 문제만은 아닌 것 같기도 싶고.


김성욱 : 어떤 “영화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들에서 뭔가를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개봉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영화를 보는 게 드물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영화에 대해 좋은 평가, 혹은 나쁜 평가를 가지고 있는 영화 일반 독자처럼 뒤돌아 생각해보면, 영화들에 관련해서 음성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 영화자체가 아니라 영화가 좋았다면, 그 좋았던 지점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남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중에는 뭔지 잘 생각이 안 나고.



박부식 : 김성욱 평론가에게 궁금한 게 있다. 고전 영화를 많이 볼 텐데, 최근에 봤던 영화 중 영화 역사상 관심 가지고 있는 볼만한 부분들이 어떤 게 있었나?


김성욱 : 개봉 영화는 놓치는 스타일인데, 한국영화는 어떤 영화는 개봉이후 저평가 받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렇지 않나? 결국 좋은 건 평가 받고 아닌 건 아니다 라고 평가 받는 것 같다. 물론 찬반으로 나눠지는 경우도 있지만…. 비평이 좋은 영화는 잘 놓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는 좋은 게 무엇이었는지를,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해보면 뭐였는지를 잘 모른다는 점이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밤과 낮>도 좋았다. 그런데 그것의 어떤 점이 좋았던 것일까. 그걸 돌이켜 생각해보면 불분명하게 남아있다. 언제나 많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좋은 걸 좋은 거라고 얘기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데, 어떤 것이 좋았을까를 생각을 해 보면…. 저널에서 충분히 그런 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평가 안에서 영화에 관련된 무언가를 끄집어냈나 생각해보면 여전히 미혹의 상태로 남아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다크 나이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영화는 아니지만, <다크 나이트>는 거의 만장일치로 좋았다고 그랬는데 뭐가 좋았다는 건가. 조금 따져봤는데, 악마성? 몇 가지가 있는데 그럼 팀 버튼의 배트맨은 그렇지 않았나? 이런 테마에서 훨씬 떨어졌었나? 최근에 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든지 <데어 윌 비 블러드>같은 영화들도 그 영화 안에서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해프닝>까지 올 초부터 시작된 미국 대작들을 보면 자국 내에서 화제가 됐고, 아마 담론적으로 미국영화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 저널이 만들어낸 담론들이 가장 크고 중요한 이슈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통해 ‘리프레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본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극장과 관련한 생각도 몇 가지 있다. 몇 년 전부터 카운터라는 말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전통적으로 카운터라는 말은 별로 존재성이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에 보면 어떤 한 영화가 또 다른 영화들에 대한 카운터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찾는 게 어려워졌다. 이를테면 <데어 윌 비 블러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 자체의 존재성도 있지만 그게 미국영화 자장 안에서 카운터 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경우 코폴라가 얘기하기를, 이 사람은 미국에서 디지털 편집기를 쓰지 않는 유일한 감독이라더라. 손작업이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중요성을 아직도 생각한다는 거다. 맨 처음 남자 주인공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행위가 폴 토마스 앤더슨이 영화를 만드는 행위가 겹쳐진다. 반면 한국영화를 봤을 때 그 영화가 그 자체로서 미학적으로 뛰어나는 영화는 있는데 그것이 영화의 어떤 부분에서 카운터를 해나가는지는 모르겠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일정 정도 그런 거 같고.

세상이 너무 스펙터클하게 변모하고 있다. 그런 스펙터클의 중심에 영화가 있다. 스펙터클 한 부분이 사람들에게 흡입력을 갖고, 대단히 짧은 시간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흡입 시켜서 화제를 불러 모으고, 홍보와 마케팅을 전체적으로 조직하고 동원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런 스펙터클에 대한 대항점이 있어야 한다. 올해가 ‘68혁명’ 40주년이다. 그 당시 영화들은 스펙터클에 대항했다. 파멸의 의미는 좀 다르지만, 영화 스스로가 파멸해가기를 바라는. 그런 부분들과 카운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박부식 : 카운터에 관련시켜서 말씀을 드리자면 2000년대 초반쯤에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얘기가 있었던 것 같다. <친구>가 80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시장이 커졌던 것 같고. 그때 들었던 생각이 주류 메인 스트림 시장이 커지면 독립영화도 따라 커질 것인가? 그때 암묵적인 합의는 같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장의 팽창을 관대하게 용인하는 부분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전부 상업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주류에서 벗어나있는 독립영화라고 이름 붙여진 영화들도 마케팅이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백건영 : 매체나 평론가들이 확실하게 호불호를 표하는 영화들이 있는 반면, 애초에 아예 배제되고 소외되는 영화도 굉장히 많은 게 현실이다. 차라리 악평이라도 들으면 좋을 텐데 대체적으로 독립영화들은 그런 비평자체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네오이마주가 처음 만들어질 때, 이왕이면 알려지지 않고 비평적으로 수혜를 못 받은 지나간 영화들을 재발견하고 찾아보자는 생각들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지금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 년에 대략 100편 이상씩 개봉한다. 그 중 비평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영화들의 원인이 어디 있을까? 매체의 한계인지, 산업구조의 문제인지, 아님 영화자체의 문제인지 말이다.


김숙현 :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김성욱 평론가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영화에 대한 평가들은 난무하는데 깊이 있게 들어가거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없다. 평가만 나열되고 끝난다. 카운터로 작동할 만한 영화가 없다는 게, 비평담론의 실종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단적으로 얘기 하면 <키노>가 망한 이후 현상이나 평가가 나열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글에 대한 리액션이 오고 가며 담론을 만들어지고, 그 시대에 있어 그 영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키노>가 잘했다기보다 월간지라는 형식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줬다. 현재 영화전문지도 그렇고 영화 리뷰들이 다 짧다. 온라인 시대라지만 온라인에서 긴 글은 못 읽겠고. 온라인 매체에 글을 쓰고 있지만, 편집장이 항상 하는 얘기가 글을 길게 쓰지 말라는 거다. 지금은 전문가의 평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고 블로거들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깊이 있게 하고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시대냐. 각자 다 벽에 다 대고 혼잣말을 하면서 그렇게 모여 있는 상태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형태가 아니다. 카운터로 작용을 할 만한 영화가 안 나온다는 것도 지금의 어떤 경향을 공유할 것인지, 무슨 얘기를 하고 무슨 영화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없으니 신변잡기적이고 혼잣말을 하는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사회전체와 연관을 짓고, 그것에 대해 다시 얘기하는 과정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블로그에 ‘월간지가 필요해’ 라는 글을 썼다. 그런데 이 시대에 월간지에 뜻있는 평론가나 기자들이 모여서 직접 만든다고 해도 시장에서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일단 사람들이 정말 긴 글을 읽지 않을까, 정말 수요가 없을까에 대해 의문이 든다. 깊이 있는 담론에 대한 수요는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담보하는 매체가 안 보인다. 굉장히 멋진 글이 천명도 안 되는 사람들한테 읽히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가버리는 상황도 너무 속상한다. 매체 환경이 중요한것도 같고 모두 그 탓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꽤 절망적인 상황으로 느껴진다.


김성욱 : 난 내 글을 만 명이 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2백 명, 3백 명? 극장에 오는 숫자만큼?(웃음) 개인적으로 비평담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비평가들의 숫자는 많아졌고,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기존 사람들은 남아있고, 새로운 사람들도 들어왔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은 열심이고 숫자도 많고 다양하다. 동시에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글을 덜 읽는다는 판단도 맞는지 잘 모르겠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몇 명의 글을 읽는 게 증가되지 않았다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 않나. 어떻게 생각해보면 백 명 정도의 좋은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쏠림 현상은 정당한 것이니까.

오히려 극장에서 영화를 많이 틀거나 이런 이유 때문에 늘 생각하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영화 글을 쓰는 사람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들은 더 많은 걸 알고 싶은데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담론과 대중들과의 접점이 굉장히 불분명한 상태라는 거다. 이를테면 이번 씨네휴 영화제에서 소쿠로프 영화가 상영이 됐다. 정식 개봉 형태는 아니지만 에릭 로메르의 <로망스>도 상영됐고. 두 영화에 대한 어떠한 글도 찾아본 적이 없다. 로메르의 <로망스>는 대체 무슨 영화지? 영화를 본 천 명 중 이백 명 정도 그런 생각을 할 텐데 통로가 없는 것 같다.

또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영화들과 만나고 있는데 반대로 각각의 영화에 대해서 거꾸로 얘기해주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 다시 말해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경로가 전혀 없다. 그 부분에 대해 비평가들이 얘기하는 장소가 잡지일수도 있다. 어쨌든 자꾸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 주길 원한다. 비평가가 상대적으로 마이너리티한 부분들과의 접점을 각개 형태로 진행해 나간다면 전체적으로는 네트워크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네트워크나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건 저널일 테지만 각개로 진행될 수 있는 경로도 굉장히 많을 것이고, 이 미들급 부분이 중요하다. 주류 저널의 기획이 있고, 일반인들이 블로그에 글 쓰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비평이건 감상이건 자기가 빠져있는 감독에게 대해 좋은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미들급인 거다.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대중은 대중대로 그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박부식 : 직접 애기한다면 스폰지와 관련된 문제인 거 같기도 하다. <알렉산드리아>라든지. 시네휴 영화제 상영작들은 스폰지에서 수입했지만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는다.


김숙현 : 마케팅을 하지 않을뿐더러 정식개봉을 하지도 않는다. 자기네 영화제에서 한번 틀고 말면서 DVD 출시도 안 하고.


박부식 : 이런 영화들이 저널에서 소외된 것이다. 나를 포함해 비평가들의 열의가 없을 수도 있고(웃음). 일반 개봉작이 아닌 영화들은 관심 있는 사람들이 와서 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확대개봉하고 아니면 그냥 묻힌다.


김성욱 : 일반 저널의 문제는 그런 거다. 거기서 그런 것까지 다 소화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쪽도 소통을 해야 되니까. 백 억 짜리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과 십 억 짜리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다르다. 요지는 여기서 말하는 비평가도 너무 추상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층위에서 고유의 역할을 잘 설정을 한다면 더 좋지 않나 싶다. 각자 자기의 고유한 세계가 있다. 각각의 비평가들이 신문에서 하는 영역, 블로그에서 하는 영역이 있고, 저널의 영역이 따로 있는 거다. 각각의 고유한 세계들이 겹쳐있는 현상 중에 언제나 얘기가 주류 중심적인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주류는 언제나 문제가 있어 왔는데 말이다.

또 월간지를 만드는 게 과연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말이 많은데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상업적인 문제를 고려할 필요 없이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필사를 만들어낸 예도 있으니까. 하지만 미리 사람들이 보지 않을 거라고 전제해버리면, 영화제작사가 이 영화는 만 명도 안 볼 거라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숫자를 먼저 겨냥해놓고 진행한다는 건 옳지 않다. 그럼 주류의 태도를 비판할 수도 없다. 저널 하나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은데. 디자인비를 줄이면 할 수 있다. 문제를 제시하고 나서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렇게 많은 영화학과가 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영화제작자와 똑같은 마인드 아닌가? 해봤자 안 된다 이런 건.


박부식 :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현재 각자 영역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싸이더스를 예를 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싸이더스가 주류 영화와는 다른 감독중심의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어내다 위기와 맞물려서 주목할 만한 영화들 만들지 못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 이후 그런 상황이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주류에서도 카운터 적인 영화들이 나와 주지 못하고, 독립영화는 독립영화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또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다양한 글들을 적시에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영화 내적인 지향점이라든지 비평과도 맞물리겠지만, 유통방식 등 산업과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김숙현 : 사실 월간지는 해보고 싶다. 그런데 <키노>의 실패가 주는 두려움이 크다. 주간지나 온라인 매체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있다. <키노> 폐간 될 때 다들 했던 얘기가 ‘최근엔 <키노>를 사보지 않았다, 그런데 ≪키노≫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다 로 통합되고 그나마 CJ에 인수됐다 없어졌다. 분명히 필요한 지점들은 있지만 실패의 경험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질 좋은 종이의 무가지들이 아닌, 한글로 편집하고 그림도 <필사>가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다른 쪽에서 그런 잡지를 만들어봤다. 한 달에 3만원씩 각출해서 조악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영화잡지도 그런 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누가 읽을 것인가부터 만들면 읽기는 할까까지 두려움이 크긴 하다(웃음).


이용철 : 암울하다고 두려워하는 게 문제다. 읽히지 않는 게 왜 문제가 되나. 장 콕도가 영화를 열 명 밖에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안 만들었나? 왜 비교를 하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언제와 비교해 열악한지에 대한 질문. 일제시대부터 연극해왔던 사람들, 그 사람들 아무리 힘들다 해도 언제와 비교해서 못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못 봤다. 그런데 영화 쪽에서 말하는 걸 들어보면 딱 10년이다.

80년대나 90년대 초 만해도 이런 문화가 없었다. 그런데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영화산업이 형성되면서다. 사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영화학과는 딴따라들이 갔다(일동 웃음). 정말 그때는 영화학을 하기 위해 영화학과를 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거나 영화산업에 들어가고 싶어서 영화학과에 들어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학과의 인기는 사회적 추세를 반영하지 않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영화 산업 자체가 커지고 인기를 얻으면서, 산업 쪽에 몰렸다가 언론 쪽에 몰렸다가, 영화 쪽에 몰리는 상황에서 파이가 상당히 커졌다. 그간 10년을 경험한 뒤 그 시대와 비교해보니 읽는 사람이 줄었다. 그때에 비해 더 안 읽는다는 비교는 옳지 않다. 사실 세계 어디서도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그에 대한 글까지 읽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없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내적으로 글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지, 외부적으로 이게 옛날에 비해 못하다, 두렵다 하는 이야기는 수긍하기 힘들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담론보다 정보가 더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라는 건 상영되는 영화의 배우가 누구고, 상은 뭘 타고 하는 게 아니다. 어떤 영화가 지금 나와 있고 어떤 영화를 주목해야 하고, 어떤 영화에 의미가 있는지 모든 평론가들이 드러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 잡지의 평론가들은 똑같은 영화에 대해 다른 이야기만 하고 있다. 사실 그러다 보니 다뤄지는 영화가 몇 개 없다. 담론 형성보다 그게 더 문제다. 온라인이나 주간지의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은 그야말로 일주일 단위로 글을 쓴다. 기자들 기획은 단시안적인 것이다. 평론가들도 자기가 멀리 떨어져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기획에 따라 써주는 거다. 독자들은 결국 상영되는 영화 안에서 맴돌고 있다.

사실 베르히만이 죽었을 때 그의 유작을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소개하지 않았다. 그런 게 문제라는 거다. 평론가들은 주류 영화나 담론에서 떨어져 자기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지금 걸리는 영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영화들, 볼 수 없지만 내가 호기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 영화들을 궁금해 해야 한다. 일반 독자들의 파이를 넓히려면 그래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잡지 만드는 사람들의 내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돌아가는 사정이 너무 뻔하다. 판매부수 걱정하고, 마감일 지켜야 되고. 그러다 보면 해결책은 딱히 없는 것도 같고(웃음). 개인적으로 담론보다 소개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김숙현 : 위에서 언급된 정보라는 것도 담론이라 생각된다.


이용철 : 담론은 영화를 보고 나서야 형성되는 것이다. 근데 영화 자체를 안 보는데 어떻게 담론이 생기나?


김숙현 : 어떤 영화에 주목해야 되나 자체가 담론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무수하게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하는데, 금방 상영되고 다 사라진다. 이후 그 영화에 대해 아무런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주목해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에 대해 소개를 해주는 것 자체가 담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철 : 국내에 개봉되거나 소개되는 영화들은 어느 정도는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본 개인적인 영화라 하더라도 나만 알고 있는 영화는 하나도 없다. 내가 말한 정보는 그게 아니다. 이런 부분은 오히려 한국영화가 수혜를 받고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홍상수 같은 스타일의 감독을 주류 언론에서 특집으로 다루는 나라는 드문 예라고 본다.

지금 매체들은 답답하다. 예를 들어 누보시네마가 지금 상영되고 있다. 뒤라스나 로브그리예 영화들은 국내에서 보지 못한 영화도 있지만 그에 맞추어서 글이 나오는 경우가 없다. 사실 해당 나라에 가서 그 감독들을 전공한 평론가들도 있는데 그들이 전혀 노출이 안 된다. <씨네21>도 매번 쓰던 평론가가 자기가 모든 영화를 통달한 양 글을 쓰게 된다. 뒤라스 영화를 한편이라도 봤다고 하면 다 쓰라고 하고. 하여튼 그런 식의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영화를 다 보고 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각자의 영역을 좀 더 드러내야 한다. 영화평론을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재야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자꾸자꾸 드러나고 사람들과 접점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처럼 매일 쓰던 평론가가 누보시네마를 두, 세 페이지로 쓰게 될 텐데, 글도 심심하다. 어려운 영화를 더 어렵게 써놓는다(웃음). 그럼 독자가 그 영화 보러 가고 싶을까?






백건영 : 가끔 놀랄 정도로 해박하고 여러 인문학적 소양도 상당한 블로거들이 눈에 띈다. 그런 블로거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러 사람들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이 친구들 중에 주류 저널들이 다룰 수 없는 것들을 골라 쓰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들을 활용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이들을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모아낼 것인가. 이것이 내 고민이다. 이런 글들이 모일 수 있는 허브를 만들 방법은 없을까. 굳이 월간지가 아니더라도 팀블로그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네오이마주도 그런 역할을 하고자 시작하긴 했지만, 우리도 결국 대중성과 시의성에 맞춰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용철 : 그런 것들을 모을 필요가 없지 않나? 그 자체로 있으면 되면 아닌가? 수요가 있으면 어떻게든 접점이 생긴다고 본다. 그런 블로그들이 소개가 안 되고 드러나지 않는 것보다 주류 언론이 더 문제고 역할이 더 크다는 거다.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글을 쓰고 있고 필요한 사람들은 가서 읽는다. 그런 사람들의 글이 전사회적으로 읽힌다는 게 더 이상하다. 똑같은 영화를 놓고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다는 점. 나는 예술영화보다 대중영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백 년간의 영화의 역사를 볼 때 실험영화라든지 아주 극한의 예술 영화는 수천, 수백만이 공유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거다. 지금도 대중영화 찍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지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졌다는 말은 안 한다. 사실 예술영화를 전 국민이 보는 문화가 오히려 이상하다.


김숙현 : 매체 쪽에서는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는 게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잡지에서 봤던 평론가가 다른 매체에서 같은 얘기를 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멋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초야에 묻혀있나 싶다. 주류에서 좋은 글쟁이가 될 것 같은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용철 : 그런 면에서 블로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블로그에 조악한 글도 많고 대단한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사실 잡지입장에서 여러 명의 평론가를 많이 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평론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글이 잘 읽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평론가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블로그는 계속 글을 써야 유지가 되잖은가. 글을 계속 쓰면서 자기 자신에게 수정이 계속 들어간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좋아지기 마련이다. 장기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블로그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글을 잘 쓰고 이쪽으로 유입된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끄집어내서 모으고 이런 것은 아니지 않을까.


김성욱 : 주류 얘기로 논의가 흐르는 거 같다. 주류는 늘 문제가 있었다. 물론 마이너도 마이너 나름의 문제도 있겠지만…. 자꾸 개별성을 얘기하는데, 각각의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주류라는 건 언제나 화두가 되겠지만 이렇게 저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건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그걸 다 받아들이면 주류가 아닌 것 같고. 필요하다면 할 수 있겠지만 뜬금없이 어떤 감독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리고 어떤 감독이나 작품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고 분개하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맞지 않다. 로브그리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지는 주류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일동 웃음).


박부식 : 어떤 사람에 대해 소개가 안됐다는 사실에 분노를 하는 것은, 그 영화를 봤는데 너무 좋았다는 것이고 이 좋은 영화를 같이 봤으면 하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비디오를 가지고 소규모로 나눠서 보고 기쁨을 나누었고, 지금도 파일로 공유해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직한 형태는 극장에서 상영이 되고 즐기는 것이다. 주류 대중영화가 아닌 좀 더 새로운 사람들, 보게 만들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분개라고 본다. 주류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인 분노도 아니지만, 내가 산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개인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가 그 누군가나 블로거들에 의해서 봐야 한다고 평가하고 미덕을 글로써 나타낸다 한다 해도 극장에서 상영이 되지 않고 그친다면 안타까운 일인 거다.






백건영 : 네오이마주 3주년 좌담이니 우리에 대한 야기를 듣고 싶다. 3년이 됐다. 처음에는 고정필진이 있었고, 작년에는 필진을 없애고 독자들까지 글을 쓸 수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네오이마주에 대한 가능성과 쓴 소리를 듣고 싶다.


이용철 : 국어사전에 어떤 단어를 넣느냐 마느냐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언어자체에 대해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블로그나 일반 20대들이 이런 평론을 안 읽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자기들과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적인 언어인지 철학적인 언어인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소통할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제가 만나 본 아이들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 그것을 단지 너희들이 책을 안 읽어서 그래, 생각을 안 해서 그래, 영화를 많이 안 봐서 그래 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평론가들은 자기반성이 아니라 그런 언어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유행어를 쓰라는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에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오이마주는 워낙 예전에 나와 있던 그런 정적인 평론만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숙현 : 사실 개별 영화보다 시대의 어떤 비슷한 배경을 다룬 영화들이라든지, 한 발짝 떨어져 영화의 흐름을 짚어주는 특집 기사나 주류 매체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들에 대해 기대를 했었다. 또 한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한 연작 식의 긴 글을 많이 기대했다. 그런 글은 매체가 다루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오래 관심을 가진 것이 경성영화, 근대화에 관한 영화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잡아 쓰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하다. 이런 건 주간지나 온라인 매체에서 하기 어렵다. 여건상 어려워도 욕심이 나는 부분이다.


백건영 : 네오이마주의 경우 이끌어가는 사람이 전업이 아니다 보니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의지해야 하고, 객원필자에게 비중을 많이 두려고 한다. 그런데 각자 바쁘니까 써달라고 얘기하기는 힘들고. 그래도 다행인 게 예전에 쓴 글들 중에 필요한 것들을 요구할 수 있겠다. 비록 지나간 글이라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가져다 쓰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의성과 전혀 상관없는 글들도 있다.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쓸 수 있는 풀이 적은 거다. 그런 것들을 위해 객원필진들을 모셨다. 김성욱 평론가의 경우는 글 대신 한 달에 한 번 좌담을 해서 대화를 정리하자고 했었지만 여러 여건상 이뤄지지는 못했다.

시네마테크처럼 오프라인 소식지 같은 것도 생각을 해보았는데, 원초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스텝들한테 각출 할 수도 없고 독자들한테도 요구하기 힘든 부분이다. 내년에 지원을 받아 한 달에 한번 오프라인 소식지를 낼까 생각 중이다. 글의 품질을 떠나 네오이마주가 꼭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있다면 조언을 해 달라. 대체적으로 독립영화는 어떤 저널보다 많이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양에 불과하지 만족할만한 질적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용철 : 좌담이나 대화를 기록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시네마테크 지에도 두 세 페이지 정도는 그 달에 했던 감독과 대화를 정리해서 나오는데 사실 쉽지 않다. 어떤 주제를 놓고 두 세 명이라도 준비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다. 굳이 기획해서 각자 써달라고 하면 각자 자기 일도 있고 힘드니 좌담을 정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까 말씀하신 모더니티 문제는 개인적으로 올 초부터 관심이 있었다. <청춘의 십자로>를 놓고 한국의 현대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오해도 많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준비를 하다 보니 너무 커져서 포기한 상태다. 대화를 하면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며 생각이 바뀌는 면도 있다. 어느 주제가 있다면 관심 있는 몇 사람을 모아서 얘기를 한다면 한 달에 한번 기획이나 특집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김숙현 : 근대화에 관심이 있다니 반갑다. 내가 <키노>세대인데 PC통신에도 영화 동호회가 있었고 어떤 형태로든 커뮤니티가 있었다. 인터넷 세대에 회의를 느끼는 이유는 다들 혼잣말을 하지 모여서 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있는데 공동 작업이다. 시너지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 각자 고민하고 끝나버리는 것, 담론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잣말로 끝나버리는 게 커뮤니티가 상실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박부식 : 근대 초기 영화는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됐고, 또 그쪽으로 공부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국문학 하시는 분들이 예전에 그런 글을 많이 썼다. 일주일에 한번씩 예종에서 강연회가 있기도 하고. 네오이마주에서 그런 쪽을 소화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사실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 잘 알아야 짧게 쓸 수 있지 않나. 30년대 영화 관련해서 논문을 쓰는 분도 아는데 만약 한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대중매체는 소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네오이마주가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그런 글들을 실을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대담 같은 경우는 전주에서 벨라타르를 만났을 때, 인터뷰를 했으면 좋았는데 충분치 않더라. 지면상 말이다. 네오이마주가 영화제를 찾은 감독들과 대담이나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특집기사를 써도 아이템이 많을 것 같다. 미리 심사위원이나 중요 감독들을 다뤄도 좋을 것이고.


이용철 : 요청해도 온라인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영화제는 몇 개 매체로 정해 져 있다. 하고 싶어도 응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체에 대한 선입견도 존재한다.


박부식 : 안타깝다. 그런 어려움이 있겠지만 준비를 좀 더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백건영 : 30년대와 근대성의 경우 워낙 방대하니 일 년 정도로 기획을 잡고 조금씩 파고 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네오이마주 편집장으로서 고민은 장기적인 기획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의욕부족인지 모르겠지만 과연 어떤 사람들과 함께 진행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사라지는 것도 많다. 가능하다면 한 달에 한번 객원들이 모였으면 좋겠다. 오늘 나온 얘기들은 글로도 읽을 수 없는 내용이지 않나. 이런 부분을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좌담 장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인사동에 이렇게 고요한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공간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정리된 기사만으로는 가늠이 안 되겠지만 현장에서는 특정 대상과 현상에 대한 성토도 있었고, 영화비평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논점의 중요성과 시의성 때문에 중복되는 이야기를 뺐음에도 상당한 분량의 녹취록이 만들어졌다. 네오이마주 3주년 특집좌담이긴 해도 영화와 비평과 담론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제껏 우리가 해온 일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장시간 열변을 토해준 참석자들께 감사드린다. (당일 촬영한 동영상은 편집이 끝나는 대로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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