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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동 올림픽>의 한 장면. 철거에 반대하던 한 남자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엉엉 울기 시작한다. 그 남자는 큰 소리로 뭔가를 외치지만 마이크도 없는 상태에서 촬영된 영상인지라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에는 말 못할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영화 속 시민들은 땅바닥에 주저앉거나, 세상에 등 돌리거나, 눈물을 쏟는다. 김동원 감독의 작품 속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의 삶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대들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동원 감독. 한국 다큐멘터리의 존재는 그의 이름만으로도 커 보인다. 김동원 감독의 첫 작품은 <상계동 올림픽>(1988)이다. 변영주 감독은 이 영화에서 다큐멘터리와 카메라의 진정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상계동 올림픽>은 88올림픽을 준비하던 정부에서 도시 미관상의 이유로 빈민촌을 강제철거하고, 거기에 재개발 아파트를 세우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시작되었다. 1987년 4월, 상계동 주민들은 기어이 동네에서 쫓겨난다. 갈 곳 없는 주민들은 “가난한 사람의 인권도 보장하라”고 외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관료들의 무책임한 답변뿐이다. 민족의 영광인 올림픽을 위해서 일부는 희생해도 된다는 막가파식 개발주의. 이처럼 비인간적인 대우에 상계동 주민들은 집을 잃고, 훈훈했던 이웃의 인심마저 잃는다. 주택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지역 주민들은 정들었던 집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임대 아파트를 준다는 보장도 받지 못한 채 길거리에 나앉아야 했다. 주민들 뒤로는 부동산 투기를 노리는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영화는 상계동이라는 철거지역과 올림픽의 이미지를 충돌시킨다. <상계동 올림픽>은 첫 장면에서 88 올림픽의 광고 영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철거촌의 흙먼지 날리는 이미지를 몽타주시킨다. 전경들과 철거 깡패가 들이닥친 현장에서 주민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우리가 인간이라면 이런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고 목 놓아 울어댄다. 김동원 감독은 주관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는 대신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뛰어든다. 그 과정은 치열하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카메라는 이 땅의 천박한 민주주의를 고발하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김동원 감독이 철거지역 주민들에게 보인 관심은 <행당동 사람들>(2001)로 옮겨진다. 이 작품은 <상계동 올림픽>보다 현장성은 떨어지지만 감독이 고민하는 지점은 맞닿아 있다. 행당동에는 350세대가 모여 살고 있었고, 가난해도 전세금 500만원이면 온 가족이 한 지붕 아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훈훈한 정이 넘치던 상계동. 이곳에 철거 깡패들이 들이닥치며 주민들에게 집을 비우라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옮기는 일과 더불어 전문가들의 인터뷰에서 철거지역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에도 골몰한다. 행당동 사람들에게 시급한 해결이 필요한 문제는 ‘세입자 영구 임대 아파트 문제’이다. 영구아파트가 보장된다 해도 집이 철거되는 동안 주민들이 머물 수 있는 임시주거지가 있어야 한다. <행당동 사람들>은 두 편으로 만들어진 연작이다. 1편은 철거 깡패들과 대립하는 주민들의 투쟁의 역사이며, 2편은 행당동 주민들이 ‘공동체’를 결성해 임시주거지를 얻는 과정과, 그 곳에서 가난하지만 서로 돕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을 담는다. 김동원 감독의 작품 속 사람들은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한다. 이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 다큐들은 투쟁의 역사를 기록했고, 투쟁과정에서 연대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을 담아왔다.

<행당동 사람들>에서 중요한 것은 카메라의 존재이다. 영화란 결국 카메라의 윤리와 태도로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 영화 안에서 김동원 감독이 들고 있는 카메라는 주민들과 하나가 된다. 감독-카메라-주민들이 영화 내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 카메라의 존재는 관객에게 잊혀 진다. 영화가 3인칭 내레이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과 영화 사이에 거리두기가 생긴다. 다소 감상적이고 선동적인 내레이션은 휴머니즘을 자극한다. 하지만 내레이션이 개입하지 않는 유일한 장면인 철거 깡패들과의 싸움에서 존재하는 것은 카메라뿐이다. 이 때 카메라는 싸움 현장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는 과감함을 보여준다.

김동원 감독의 카메라는 종종 윤리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비전향장기수들을 12년 동안 기록한 <송환>에는 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태도를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있다. 우연한 기회로 촬영을 시작했다는 김동원 감독은 비전향장기수들과의 첫 만남에서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조심스럽다. 영화 초반부에 김동원 감독은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이데올로기적이고 개인적인 상처를 건드리는 질문을 선뜻 하지 못한다. 또 영화 후반부에 비전향장기수와 그 가족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지자 감독은 카메라를 든 채 집밖으로 나온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 속에는 카메라가 촬영해야 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이 명확하며,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준다고 생각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를 끄거나 마이크를 내밀지 않는다. 김동원 감독은 대화 장면에서도 카메라가 제3자라고 인식되면, 그래서 상대방이 불쾌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카메라를 들고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난다. 김동원 감독은 작품에 현실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앞서있지만, 때론 그 사명감보다 개인의 윤리적인 잣대를 먼저 세우기도 한다. <송환>이 비전향장기수라는 다소 민감한 사안을 건드리면서도 좌파적이지 않은 이유, 혹은 이 영화를 두고 감독의 이데올로기를 물을 수 없는 이유 역시 감독이 비전향장기수들을 인격체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환>은 휴머니즘을 앞세우는 다큐다. 김동원 감독의 전작들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에서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웃음의 미덕과 눈물의 비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김동원 감독은 김영식 씨를 통해 가장 순박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선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비전향장기수들의 순박한 모습 뒤에는 전향의 상처가 있다. 0.75평의 독방에서 갖은 고문과 외로움을 참아가며 그들이 지키려했던 것은 무엇일까?

김동원 감독이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당대의 폭력성이다. 인간의 주거권을 말살하고, 인권과 자유의 가치가 무너지던 곳에는 어김없이 폭력이 존재했다. 혹은 폭력의 그림자가 버티고 있었다. <송환>은 비전향장기수들의 이데올로기를 묻기 이전에, 폭력에 저항하며 인간의 가치를 찾고자 했던 그들의 신념에 대하여 묻는다. 폭력 앞에 길들여지고 순종하는 것은 짐승뿐이다. 그들은 인간이기에 부당한 폭력에 저항한다. 폭력에 저항하는 자들은 인간의 마지막 남은 가치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 저항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명성, 그 6일의 기록>은 6.29선언을 가능하게 했던 명동 성당에서 벌어진 6일간의 투쟁을 다루고 있다. 학생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명동에 집결했고, 그 곳에 미처 들어갈 수 없었던 넥타이 부대는 먼발치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친다. 이 작품만 보아도 폭력이 민주주의를 포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일간의 치열한 전투 속에는 화염병과 최류탄이 있으며, 학생들과 시민들은 독재정권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이처럼 김동원 감독이 기록한 8 ․ 90년대는 저항의 역사이다. 그의 영화 속 사람들은 굳은 신념과 결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을 담아온 감독에게도 다큐멘터리가 세상의 진실을 보여주는 창이라는 신념이 있었을 것이다. 김동원 감독의 작품은 어두웠던 시대를 밝게 비추어온 등대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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