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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 당신이 걱정하는 모든 것

필진 리뷰 2008. 6. 23. 08:23 Posted by woodyh98
<해프닝>이 던지는 화두는 인간 생존, 혹은 인간존속에 대한 문제다. 이것은 결국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구의 일반적인 생태계를 위협하는 동시에 태초 시기로 역행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같다. 주목할 것은 <해프닝>의 엄청난 사건에서 최대 피해자는 인간이며 유일하게 배제된 개체 또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해프닝>의 재앙은 인간을 위협하기 위해 존재한다. 최악의 대재앙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이나 해법은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생각을 해봐도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명확한 근거지를 알 수 없는 '해프닝'이 하루 속히 자신을 지나쳐가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는 자유조차 보장되지 못한다. 발을 내딛을 때 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사고는 발생했지만 답은 찾을 길이 없다.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해프닝>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이라는 생물 중에 가장 기본적인 '호흡'을 제공받는 식물들로부터 탄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해프닝>은 미국 동부의 센트럴파크로부터 시작한다. 시간이 정지된듯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멈춰 같은 단어를 반복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들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이용해서 자살을 감행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죽기 위해 도구를 찾아 헤매는 그들은 알 수 없는 생물체에 의해 조종당하는 듯 태연하다. 센트럴파크에서 발생한 이러한 기현상은 뉴욕을 시작으로 북동부 전역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사람들은 밀집해서 생존을 위한 탈출구를 모색하지만, 노력을 거듭할 수록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나기만 한다. 미 정부가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단정지은 재앙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 아닌 동시다발적인 자연 현상이라고 결론지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무차별적으로 식물들은 바람을 통해 특정 물질을 내뿜는다. 그리고 이것은 공기를 통해 호흡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일차적인 객체, 즉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다가온다. 인간들의 죽음 외에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어보이는 자연은 하루 동안 끔직한 사건사고를 발생시키고 24시간이 지나서야 살인을 멈춘다. 일시적인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안정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믿는 순간, 식물들은 제 2, 제 3의 살인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그리고 다음 번엔 또 다른 국가에서. 영화는 지구에 발을 딛고 삶을 이어나가는 인간들의 일방적인 약육강식의 이행을 가장 극단적이고 끔찍한 이미지를 통해 비판한다. 몇 분 전, 바로 옆에서 큼직한 핫도그를 건네던 노부부가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그토록 의지가 강했던 친구조차 순식간에 무너져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중점으로 공격하는 식물의 특정 독소는 자신이 타겟으로 잡은 사람에 절대 예외를 두지 않는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한순간에 불로 뛰어든 나방처럼 죽어간다. 인물들은 죽어있는 시체들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예감한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살기 위해 몸을 낮추고 최대한 바람으로부터 떨어져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식물은 이제 더이상 인간들이 환경을 공급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약한 객체가 아니다.

<해프닝>은 재난 영화와 호러 영화의 중간지점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재난 영화는 대부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시작은 언제나 외부 생물체 또는 환경이었다. 재난 영화의 주인공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모아 '인력'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해왔다. 하지만 <해프닝>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주인공 자체를 무력화시켰다. 다시 말해, 보는 이와 극 속에서 행동하는 이 모두가 진정한 화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해프닝>속 동물들의 생존방식이다. 영화는 단 한번도 동물의 시체나 동물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사건이 발생한 직후, 최대한 인간들에게서 벗어나 달아날 뿐이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호흡을 하는 생물이지만 생태계의 정방향과 역방향을 일으키는 주체가 누구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환경문제를 다루는 <해프닝>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더는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해프닝>은 인간에 대한 주의와 비판의식을 특정 지역을 통해 극화시킨 '교훈'적인 이야기다. 물론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해결법은 없다. 시원스런 해답 없이 순간 순간의 휴머니즘으로 영화 전반을 이끌어가는 <해프닝>은 반전을 노린 영화도, 그렇다고 생태계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해프닝>은 포스터 한 장으로 영화 전체의 스토리를 대번에 알아낼 수 있는 매우 미적지근한 영화다. <해프닝>이 평범한 재난 영화가 아닌 일종의 호러로 도약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도 위와 같은 이유에 있다. 영화가 사라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 더 잔인하거나 냉혹하게 반복 묘사하는 것에 치중했다면 <해프닝>은 위험하지만 성공적인 실험형식으로 읽힐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조지 로메로가 <시체들의 일기>에서 좀비들에 의한 대학살을 꾀했듯이 말이다. <해프닝>은 재난과 공포의 중간에 위치하는 영화지만 사건, 그러니까 인간들의 자살소동이 극 비중의 반 이상을 넘지 않아 달갑지 않다. 그러나 <해프닝>의 주제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단적이다. <해프닝>은 결과적으로 나이트 샤말란식의 반전, 혹은 그 이상 이하의 무언가를 안겨주진 못했지만, 영화는 인류가 피할 수 없는 명백한 사건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극 중 '지구에서 꿀벌들이 사라지면, 4년 이후 세상은 멸망한다'라는 문구는 그 누구도 벗어나거나 피해갈 수 없는 강력한 호기심과 종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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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lan9.co.kr/tt2 BlogIcon 주성치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었으면 영화가 주는 공포가 더 풍성하게 느껴졌을 것 같지만 저는 이정도가 딱 좋았습니다. 그네가 삐그덕거리고 자동차 덮개에 구멍이 난 장면들..이런게 좋았어요.

    대학살극으로 갔다면 그런 장면들이 빠져야했겠죠.

    2008.06.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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