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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

필진 리뷰 2007.10.20 16:52 Posted by woodyh98
시내 큰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내가 보고있는 책 위에 얇은 종이 한 장을 얹어두고 서둘러 지나간다. 지하철에서 흔히 어떤 사람들이 나누어주는 손바닥만한 종이쪽지다. 광고인 줄 알고 버리려다가 문득 제목이 눈길을 잡길래, 훑어본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 몇 가지

(1) 6:21, 12:47, 7:30 식사 사이 물 외 아무것도 먹지 말고 보신탕, 술, 차, 파랑약 먹지 말 것
(2) 10:45, 4:00 산속 샘물 마시고 앉아 쉴것
(3) 3~4 냉이, 칡4취, 9개암 밤 복숭아 다래 딸 것
(4) 검정, 파랑, 회색 옷 입지 말 것
(5) 여자는 항상 치마 입을 것 <짧은치마 입은 여자가 더 예쁨>
(6) 귀걸이, 눈썹 화장 하지 말고 개 기르지 말고 좌측통행, 물병 휴대, 산에 쓰레기 버리지 말 것
....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고 뒷장에는 동서고금의 금언들이 적혀 있는데, 나는 한편으론 웃음이, 한편으론 경탄이 흘러나와 가방에 담아가지고 돌아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사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어차피 살기로 결정된 것이라면 불행하기 보다는 행복한 편이 좋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행복'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저 어이없는 유인물이 내게 얼마간의 경탄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사실 또렷한 방법론이 있느냐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방법론이 무엇이든 간에, 그리고 저 유인물의 몇 가지 지침들처럼 헛웃음이 비져나오는 것일지라도, 자신에게 더없는 확신을 줄 만큼 뚜렷한 행복의 지침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인물을 통해 내게 돈을 구걸하거나, 도나 기를 권하는 것도 아닐진대, 그 남자는 분명 타인들에게 값없이 전파하지 않고는 못견딜만큼, 자신이 나름대로 오랫동안 세워온 행복의 지침들에 분명 큰 기쁨과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사랑' 이 아니라 '행복'이다. 은희가, 이미 자신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영수의 짐을 싸며 그에게 하는 말, "나 행복하게 살고싶어." 아직도 영수를 사랑하는데 더이상 어떤 행동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은희는 손수 짐을 싸 그를 내쫓아버린다. 우리는 은희가 애써 냉정한 척 한다고 생각하지만, '행복하게 살고싶다'는 말은 어쩌면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행복은 이기적이다. 자기 우선이다. 은희가 스스로의 몸도 편치 않으면서 영수를 극진히 간호한 것도, 자기 희생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자기 희생을 함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는 행복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허진호의 [행복]은 그래서, 넓게 봐서, '행복하고 싶은' 몇가지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그래, 너는 어떨 때 행복할 것 같니? 이렇게 하면 행복할까? " 하고 영화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보인다.

이 영화에서 객관적으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은희다. 8년이나 요양원에서 살았다는 말로 미루어 20대의 대부분을 시골구석에서 이렇다 할 일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았으며, 지금도 그녀는 밤마다 기침과 씨름한다. 심지어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영화에서 '행복'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돌진하는 사람이 바로 그녀다. 영수에게 '같이 살자'고 먼저 말하는 것도 그녀고, 감기에 걸리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영수에게 먹일 약초를 캐러 다니는 것도 그녀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하루하루 잘 살면 그만" 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녀다. 심지어 그녀는 영화 속에서 고아다. 가장 손에 쥔 것 없는 사람이 가장 용감하다는 진실은 '행복'의 방법론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인가.


각자 술집에서 그렇고 그런 의미없는 밤을 보내고 돌아온 영수와 수연.
서로 재미있었니, 없었니 의미없는 문답을 주고 받는다.
"넌 이렇게 사는게 재미있냐?"
"아니."

분명 어제밤 재미있었다고 말한 수연인데, 버럭 화를 내며 묻는 영수의 물음에 수연의 답은 "아니" 다.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는 은희에 비하면, 이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역동적인 삶을 누리고 있을텐데도 둘은 사는 게 재미없고, 더욱이 무엇이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 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영수에게 가장 반대되는 삶을 던져준다. 그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장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그 앞에 데려다준다. 평온하고 소박한 시골생활, 언제 삶을 마감할 지 모르는 아픈 여자. 이것이 과연 너에게 행복을 주겠는가, 물으며.

영화에서 영수는 매우 쉽게 은희와 사랑에 빠지고 시골생활을 꾸려나간다. 이미 그런 생활에 익숙한 은희와 달리 영수가 농사를 짓고 경운기를 몰 때, 나는 점점 불안한 마음이 커져간다. 전원생활에 대한 낭만적 동경이 깔려있는 장면들인데도 어쩐지 영수의 과거를 이미 알고있는 관객인 나는 그 '행복'이 곧이 곧대로 수긍되지 않는다. 그 행복은 찰나의 최면인 것만 같고, 곧 끝이 보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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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가 은희를 저버리는 것은 '사랑'이라는 표현으로는 다 포함하기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재미', 넓게 말하자면 '행복'. 그것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도 그 속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연과 은희, 도시와 시골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어느 편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는 영수는 스스로에 대한 행복의 방법론을 전혀 모른다고밖에 할 수 없다. 순간의 감정과 흥미를 따라 가보지만 영화는 영수에게 모진 후회의 순간을 던져준다.

어린시절, 과학시간에 보았던 빛이 통과하는 검은 상자가 생각난다.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와 다른 구멍으로 나오는 상자. 영화 [행복]은 마치 그 속에 여러가지 거울을 설치하고 빛을 굴절시키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원하고, 그 관계로부터 만족 또는 불만족을 느껴 또 다른 곳으로 갈망의 대상을 찾아 떠나고... 그런 굴절을 통해 우리의 삶의 경로는 예상할 수 없는 각도로 나아간다. 너도, 그리고 나도, 그도 그녀도, 행복하고 싶은 마음은 같은데 서로의 존재에 가 닿아 굴절되는 각도가 모두 달라서 우리들의 경로는 빗나가고 만다.

그러고보니 서점에서 본 그 남자의 행복지침에 '사랑'이란 말은 없다. 모두 혼자 하는 일들 뿐이다. 사랑과 행복은 역시 함께 가기 어려운 것일까. 마치 인생을 달관한 도사처럼, 자신의 확고한 행복의 신념을 전파하러 다니는 그 중년의 남자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는 적어놓지 않았다. 물론 그랬다면 허진호처럼 영화를 찍었을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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