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행복] 이 남자, 홀로 설 수 있을까

필진 리뷰 2007.10.12 07:46 Posted by woodyh98
2007.10.10


[행복]은 허진호 영화 중에 가장 불행한 결말로 끝맺는다. 그동안 그의 영화에서 마지막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이런 순환의 윤리는 관객에게 ‘위안’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전해주곤 했다. 그의 영화는 결과적으로 늘 혼자를 가리킨다. 혹은 마주보지 않는다. 그는 자칫하면 황량할 수도 있는 단독의 정서를 따뜻한 온기로 환원시키는 재주를 보여 왔다. 단독 숏, 혹은 마주보지 않는 투숏. 이 두 윤곽은 허진호 영화가 연애를 통해 결국 말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다림은 액자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고 웃음을 짓는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는 갈대밭에서 소리를 채집하며 홀로 선다. [외출]에서 서영과 인수는 눈 내리는 봄날, 운전을 하며 어딘가로 떠난다. 이들은 하여튼 기꺼이 다시 시작한다. ([외출]의 마지막 장면은 이런 ‘기꺼워함’의 범주에 넣기에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행복]의 결말은 비참하다. 은희는 죽어 떠나고, 영수는 홀로 요양원에 다시 들어간다. 롱 숏으로 잡힌 쓸쓸한 뒷모습은 위안의 순간이라곤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다. [행복]에서 볼 수 있는 순환은 의미상으로는 시작이지만, 그 시작은 생의 시작이 아니라 죽음의 시작에 가깝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허진호 영화에 ‘어머니’가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늘 그의 영화에는 아들들의 어머니가 부재했다. [8월] [봄날]에서는 아버지만이 등장했고, [외출]에서 주인공의 가족은 묘사되지 않는다. 그런데 [행복]에서 영수의 가족 중 오로지 어머니만이 등장한다. 1년 반 만에 영수는 어머니를 찾아가 무릎을 베고 눕는다. 영수는 함께 살게 된 은희의 가슴팍에 머리를 파묻고 눕는다. 여기서 은희의 두 대사는 그래서 중요하다. “ 내가 낫게 해줄게요” “그런게 있어요” 난 이 대사가 곧바로 영수의 어머니가 예전에 내뱉었을 법한 “내가 키워줄게” (너도 자식 낳아봐라) “그런 게 있다” 로 치환되어 들렸다. 여기에 “그런게 어딨어?” 라고 코웃음 치는 수연의 대사까지 더해보자. 다시말해 자애로운 어머니와 어리둥절한 아들과 쌀쌀맞은 며느리와의 관계. ‘젤소미나’와 ‘마츠코’와 ‘은희’가 한자리에서 만났다면 동시에 내뱉고 서로를 쳐다보면 고개를 끄덕였을 그 대사 “그런게 있어요.” 하지만, 먼저 죽을 수밖에 없는 어머니는 살아남은 아들을 구원할 수 있을까.

허진호의 이야기에는 두 남녀가 중심에 있다. 당연히 투숏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그의 영화에서 둘이 마주보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서로 정면을 바라보는 숏이 빈번히 등장한다. (혹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그들은 상대에게 호감을 느낀다.) 특히 그들이 심리적으로 처음 가까워지는 순간은 둘이 함께 앞을 바라보며 앉아있을 때다. [8월]에서 다림과 정원은 더운 날 선풍기 바람을 쐬며 그들 사이에 부는 설레임을 처음 느낀다. [봄날][외출]은 단도직입적으로 둘이 함께 앉아있는 의자에서 관계가 시작된다.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시골매점 앞 탁상에서 서로를 처음 인지한다. 하지만 [행복]에서의 투숏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랑의 윤리를 말하기보다, 동상이몽에서 오는 절망감을 표현하는데 주목한다. 물론 허진호는 늘 그 시선의 엇갈림에서 오는 연애의 유한함에 주목했지만, 이 영화는 이전 그의 영화들과 달리 투숏에서 한 명을 지워버리려 한다.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이,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넘어가는 바로 이 지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느 날, 수연이 영수와 은희의 시골집에 등장한다. 네 편의 허진호 영화에서 가장 달력사진스러운 매끈쭉쭉한 장면. 시골에서 자동차 광고를 찍는 듯한 이 숏으로 관객은 이야기의 끝을 가늠하게 된다. 이 장면 이후 이야기는 마치 3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빠르고 느슨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이후 등장하는 파멸의 과정은 굳이 인과의 전개로 보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오히려 지루한 앞 뒤 반복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낫다. 영화의 첫 장면, 영수는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담배를 피며 운전을 한다. 우린 이 장면이 수연과 헤어지기 전의 상황이란 걸 다음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영화의 중반부 첫 장면, 영수는 선글라스를 끼고 룰루랄라, 운전을 한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언제인지 명확하지 않다. 정말로 은희와 헤어지고 난 후인지, 혹은 은희와 만나기 전의 상황인지, 혹은 은희의 상상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은희와 헤어지고 나서 보여주는 영수의 도시 생활은 선형적 시간에 구애받아 볼 필요가 없다.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 그러니까 무한한 반복에서 오는 끔찍함.

영수는 변하지 않았다. 은희에게 구원받지 못했다. 여기에 이 이야기의 끔찍함이 있다. 영수는 “그런게 있긴 있어”와 “그런 게 어딨냐.” 사이에서 “그런게 있긴 있구나” (하지만 난 알 수 없어)를 읊조리며 관찰자로 머문다. 즉 둘 사이를 뜨뜨미지근하게 왔다 갔다 한다. 황정민은 이 중탕의 연기를 절묘하게 해낸다. 이런 그에게 “태양만 비춘다면 나는 살겠소.” 의 비장한, 혹은 소박한 각오의 다짐이 드리워질까. 죽음의 학습효과 덕분으로 그는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다시 요양원에서 딸랑딸랑 댄스를 출 수 있을까. [행복]의 카메라는 인물에 더 살갑게 다가갔지만, 덕분에 그간 가려졌던 허무의 우물은 더 깊어졌다. 그야말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만이 거기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89
  • 53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