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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를 향한 어떤 시선

필진 칼럼 2007. 7. 30. 16:11 Posted by woodyh98
2007.07.28

 <화려한 휴가>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실 영화를 보기 훨씬 전부터 <화려한 휴가>의 존재가 내심 불편하고 언짢았다. 5.18 민주화운동을 신파 코드로 접근하는 상업 대중영화. 이런 종류의 영화는 대개 타자화의 오류를 겪기 마련이다. 과거에 이런 저런 슬픈 일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는 얼마나 안락하고 평안한가, 라는 안일한 이데올로기. 그 질퍽한 상업화술과 짜게 식은 눈물 한 방울의 신파 속에서, 과거의 비극은 흑백사진 속에 영원히 봉인된 박제가 된다. 하지만 2007년 한국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조금도 치유된 과거가 아니다. 차라리 현재진행형이다.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있는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없는, 그래서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를 할 수가 없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이제 모두 다 용서하고 치유와 화해의 시대를 열자며 문학을 하고 시를 쓰고 대리석을 세우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려 정치적 면죄부를 팔아 챙기는, 요컨대 그런 상황인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그 이름만 폭동, 내란, 사태, 항쟁, 민주화운동으로 고루 바뀌어왔다. 도대체 치유된 건 뭐고 해결된 건 뭔데 어떻게 추억이 가능하단 말인가. 게다가 <화려한 휴가>를 보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인양 포장하는 광고는 진심으로 수준 이하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상업영화의 위험성”에 대해 언성을 높여가며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를 도마 위에 올려 욕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화려한 휴가>는 최소한 이 피비린내 나는 상흔을 ‘그 옛날 아문 딱지‘ 즈음으로 느슨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우리를 기억해주라”고 절규하는 여주인공의 목소리와, 결코 이뤄질 수 없었던 결혼식 장면으로 채워진다. 기념사진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장면 속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은 모두 미소 짓고 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 혼자만 더 없이 절망적으로 비극을 곱씹는 표정이다. 여태까지 당신들 앞에 재현한 역사의 비극이 결코 끝나지 않았고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그 슬픔이 이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위로 우리 앞까지 주욱 그어진 연장선을 떠올렸다. 여기에 방점 따윈 없다.

그 상업적인 구술방식에 있어서도 생각을 달리 해볼 가치를 느꼈다.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선데이>같이 누수 없고 무미건조한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의 일차적 목적이 돈벌이, 이차적 목적도 돈벌이, 아무튼 무조건 많은 돈벌이에 사활을 다 바친 영화라 할지언정(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그 속의 얄팍하나마 존재하는 진정성이 모조리 7000원과 등가로 매겨지는 가치라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건 궁극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누구나 5.18을 이야기하지만 놀랍게도 그 날 정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아는 사람은, 혹은 부러 알아볼 의지를 가진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심지어 북한 개입설을 여전히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바라볼 때 <화려한 휴가>가 보다 더 대중적인 화법으로 스스로를 구축한 건 영리한 선택이라 할만하다. 그간 한발을 걸치던 두발을 걸치던 애매하게 기대던 5.18을 소재로 가져갔던 영화들을 떠올려보라. 하나같이 지식인의 제 잘난 회의와 단절의 한숨에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그 전부를 싸잡아 합쳐도 <화려한 휴가>가 광주의 진실에 접근하는 얇고 얕은 울림에 미치지 못한다.

이 영화의 진짜 위험성은 그 안에 재현된 상황들을 ‘극적으로 과장되거나 축소된 이야기’라고 여기는 게 가능하다는데서 발생한다. 이건 역사를 극화하고 각색한 상업영화가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양날의 폭력성일 것이다. <화려한 휴가>는 실제 광주에서 벌어진 도륙의 현장을 삼분의 일밖에 투영해내지 못했다. 이를테면 발포 전의 단계에서 사용된 총검과 이를 둘러싼 살풍경 따위는 12세 관람가 대중영화의 속성상 아예 증발해버렸다. 분노의 이데올로기, 즉 지역감정을 조장한 정권과 그에 편승한 사회가 이후 어떻게 교미하고 프로스포츠 같은 오락거리로 광주를 희석시켰는지에 대해선 아예 다룰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폭력의 강도나 흘러내린 피의 절대적 양, 무엇을 얼마나 더 깊고 너르게 보여주느냐가 아니다. <화려한 휴가>는 당신의 지갑 가까이 가 닿은 지극히 속물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구축했지만, 무게 잡은 지식인의 담론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영화는 가장 직접적이고 상업적인 방식으로나마 광주와 관객을 소통시킨다. 누군가의 실패한 과거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현실로 기억을 연장시킨다. 이 얄팍한 상업대중영화에는 치유되긴 커녕 고름이 질질 흐르고 있는 상흔을 좀 더 공격적으로, 정밀하게 다루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시장적 토대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 광주의 진실을 혼자만의 문제의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 따윈 추호도 없다. (니들이 뭘 알아, 식의 비평은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공유되야 할 이야기고 울림이다. 금새 짜게 식을 울림이라고, 뜨겁게 80년대를 논하다가 냄비바닥에 그을림으로 남은 듯한 386 세대를 보라고 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화려한 휴가>는 기대 이상의 제 몫을 했고, 그 이후는 어찌됐든 관객들의 책임인 것이다. 이 영화의 상업성에 찬성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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