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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더 뜨거웠다면...

필진 리뷰 2007. 7. 27. 15:30 Posted by woodyh98
2007.07.27

5-18 광주 민중 항쟁에 대해 조금만 정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화려한 휴가>의 시민군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즉 <화려한 휴가>의 귀결은 장엄한 죽음으로의 행진에 다름 아니다.

<화려한 휴가>를 가족들과 함께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내는 펑펑 울음을 터뜨렸고 70대이신 아버지(참고로 나의 아버지께서는 늘 정치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선택을 하셨던 분이다)께서는 ‘전두환’에 대해 분노하셨다. <화려한 휴가>는 어느 정도 영화 자신이 의도하고 있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일으키도록 한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는 보고 나서 100% 동의하기에는 영화의 힘이 부족하다. 필자가 느끼기에 이 영화의 비판 지점은 ‘너무 감정적’이라서가 아니라 좀 더 ‘감정적’이고 뜨거웠어야 한다는 데 있다.

지식인은 없다.

이 영화의 연출자가 장선우(<꽃잎>)나 박광수(<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또는 이창동(<박하 사탕>)이나 봉준호(<살인의 추억>)나 박찬욱(<공동 경비 구역 JSA>)이 아니라 김지훈(<목포는 항구다>)인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으며 실은 많은 사람들이 ‘광주’라는 무게 때문에 애초부터 많은 우려를 낳았었다. 앞서 말한 장선우와 박광수 그리고 이창동은 이미 한국 근현대사의 무게를 담아냈던 영화들을 연출한 바 있고 봉준호와 박찬욱은 그들의 출세작들을 통해 시대의 공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능력을 선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제까지 가장 광주 항쟁을 가장 극적으로 담아낸 영화는 <박하사탕>이다.)

이유가 어쨌든 김지훈 감독의 전작은 뚜렷한 관객층을 대상으로 한 영화였고 그 영화의 정서는 매우 표피적이고 감정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김지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상업 영화인 <화려한 휴가> 역시 매우 표피적이고 감정적인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지식인’이 거세되어 있다.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장선우의 <꽃잎>에는 지식인의 시선이 포함되어 있으며 영화 전반에 그런 지식인들의 무력감과 안타까움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 영화들의 제작을 추진했던 ‘먹물’들을 위한 장치지만 다수의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영화적 안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의 제작진은 처음부터 이 영화가 좀 더 대중적인 호흡의 영화가 되기를 바랬다. <화려한 휴가>의 등장 인물 중 지도층 인사는 신부(송재호) 정도가 유일하며 주요 등장 인물은 광주 항쟁에서 최대의 희생자를 낳았던 전남도청의 시민군들이며 그들은 모두가 평범한 시민들이었으며 결코 지식인의 범주에 포함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광주의 에이리언, 공수부대

<화려한 휴가>는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최소화한다. 이 영화에서 ‘공수’들은 일종의 ‘외계인’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민우(김상경)은 녹색이 흐드러지는 시골 길에서 택시를 몰며 찬란한 태양광을 즐긴다. 이 안온함이 영화의 도입부를 장악한다. 천애고아인 민우와 진우(이준기)의 일상, 진우와 친구들, 코믹한 용대(박원상)와 인봉(박철민)의 에피소드, 부녀간인 신애(이요원)와 흥수(안성기)의 식사 장면, 성당의 야유회 등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이 영화의 전반부를 장악한다. 실은 이 영화의 전반부는 민우의 신애에 대한 연정(戀情)을 묘사하는데 할애되며 그들을 둘러싼 평화로운 공동체 ‘광주’를 포괄하여 설명한다.

그 공동체의 안온함을 위협하는 것은 위장복을 입고 곤봉과 M16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에이리언’ 공수 부대이며 그 뒤에는 자신들의 부하마저 ‘군사용’으로 여기는 정치군인 최장군이 있다. 이 영화에서 ‘공수부대원’들은 단 하나의 이미지로 표상된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끊임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에이리언들이며 킬링 머신이다.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그들은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괴물들이다. 이 영화에서 역사의 진짜 괴물인 ‘전 장군’은 대사로 두어 번 언급될 뿐이다. <화려한 휴가>는 1980년 당대의 복잡한 정치적 음모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양심적인 퇴역 군인으로 묘사된 흥수가 그런 상황들을 간략히 전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며 ‘애국가’와 함께 자행되는 학살 장면이 그 괴물의 실체가 ‘국가’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영화의 ‘악’의 실체를 뭉뚱그려 설명해 놓은 후 <화려한 휴가>는 광주의 영웅들의 어쩔 수 없는 싸움을 보여주는데 관심을 쏟는다. 그들의 사연들은 가족의 결핍으로 귀결된다. 앞서 말했듯 민우와 진우 형제에게는 부모가 없다. 또 흥수와 신애에게는 아내와 어머니가 없다. 또 남문희가 연기한 장님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고 누군가는 자식을 잃었으며 교사(손병호)는 제자들을 잃는다. 이 영화의 감정적 고양은 바로 이런 ‘가족의 결핍’으로부터 온다. 민우와 신애의 결합은 온전한 가족의 완성을 의미하지만 그것 역시 공수부대라는 ‘에이리언’에게 위협받는다.

결핍의 공포

물론 <화려한 휴가>의 장르적 장치는 민우와 신애의 관계에서 비롯된 멜러 영화적 구성이다. 둘은 서로를 구하며 광주 항쟁의 한복판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죽고 사는 광주항쟁의 역사적 사실들이 극적으로 배치된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앰블런스를 몰고 사지에 뛰어든 용감한 의사는 사살되고 친구를 잃은 동생은 계엄군의 총알에 목숨을 잃고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은 주검이 되어 거리에 늘어져 있게 된다. 이 영화에서 민우와 신애는 언젠가 서로를 잃는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그것은 ‘결핍의 공포’이며 또한 1980년 5월 광주의 현실이기도 했다.

필자가 <화려한 휴가>에 느끼는 아쉬움은 바로 그런 점이다. 이 영화는 좀 더 절절하게 다가왔어야 했다. 아쉽게도 <화려한 휴가>에는 주요 플롯이라고 할 수 있는 민우와 신애의 조금은 미지근한 멜러적 설정 때문에 관객의 호응을 끌어낼만한 조역 캐릭터들의 상실감과 공포가 잘 살아있지 못하다. 그건 이 영화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조역 캐릭터들의 사연이 차곡 차곡 쌓여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영화의 코믹한 파트를 책임지고 있는 인봉의 가족사나 양아치에서 투사가 되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용대의 에피소드가 좀 더 강화되었다면 이 영화의 대중성은 좀 더 큰 감정적 고양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화려한 휴가>가 의도하는 바는 영화의 말미에서 신애의 방송에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외침. 그래서 쉽사리 <화려한 휴가>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영화의 마무리의 스틸 컷 시퀀스에서 혼자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신애의 얼굴은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적으로 <화려한 휴가>는 완벽한 영화는 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형식적 완성 모델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바로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다. 하지만 그 영화의 형식적 스타일을 광주 항쟁에 도입했을 때 과연 관객의 호응을 잘 끌어낼 수 있었을까 ?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화려한 휴가>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그것이 이 영화에 무조건 엄지 손가락을 올려 세울 수 없으면서도 또한 무조건 비판만 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 영화평자의 고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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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unjena.com BlogIcon Hee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벽한 영화는 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형식적 완성 모델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바로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다'

    동감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블러디선데이류를 택하는 것보다
    실미도류를 택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던 것도 같고..
    이 영화도 그렇게 한 것 같네요..

    그리고 포스팅 전체적으로도 공감합니다만..
    충분히 봐 줄 만한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엄지 손가락을 올려 세울 순 없지만 충분히 권할 만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2007.07.27 16: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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