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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침묵하게 하는 영화

필진 칼럼 2007. 8. 7. 13:19 Posted by woodyh98
2007.08.05

해가 뉘엇해지자 사자산 기슭에 있는 고추밭에 농약을 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극장에 '화려한 휴가'를 보러 갔다. 노인정에 계시는 할머니를 모셔다가 저녁식사를 급하게 마치고 목포까지 새로 뚫린 길을 따라 내내 달렸다. 영암을 지나 목포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그 길이 막히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한여름밤은 여전히 더웠다.

엄마와 아빠에게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화려한 휴가'와 같다. 살풋이 긴장된 부모님들의 들뜬 마음을 알 것 같았지만,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을 정도로 영화에 집중하셨고, 언니와 나는 옆에서 키득거렸다. 평소에 말이 많기로 유명한 아빠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내내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80년 오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 가족은 서울에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앞에서 둥그렇게 서있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너무 가슴이 아리고 아파서 눈물이 안나오더라. 그 때가 생각이 나서..." 광주,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희생의 역사. 나는 영화를 보고 울지 않았다. 극장안의 관객들은 이준기와 안성기가 죽을 때, 안타까움의 탄성을 질렀고 김상경의 마지막 총알세례를 마음을 쥐어뜯으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영화안에서 광주와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저렇게 다죽고 끝난거야?"

"응, 그랬나보지."

"그래서 어떻게 된거지?"

"뭐가?"

"공개사과를 한다던지, 보상을 한다던지..."

"몇 차례 보상을 받고 그러지 않았나?"

...중략(전모씨에 대한 욕설이 오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무섭다야."

"응... 무서워. 불공평해."

내가 고등학생일 때 매년 5월이면 광주에서 5.18관련 행사가 있었다. 전라도 각지에서 학생들과 사람들이 모였고 금남로는 80년 그 때처럼 시민들로 가득했다. 잔뜩 흐린 회색빛 오후,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 그 음울한 분위기에 나는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었다. 이발사였던 사람, 택시 기사였던 사람, 집에 가던 학생, 시내에 나온 사내, 길 가던 아주머니, 광주에 있던 누구라도 희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어떤 아저씨는 광주가 고립되고 시민군으로 싸우던 그 몇일 동안, 태어나서 처음 누렸던 자유와 연대의 분위기를 꿈꾸듯 말했었다. 모든 시민이 친구요, 동지였다고. 광주에는 도둑도 없고 사람에 대한 의심도 없고 슬픔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이상 공동체였다고. 그 힘, 그 에너지는 결국 짓밟히고 끝나버린 걸까.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나는 총알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생각만큼 괴롭지 않았다.(영화니까) 내가 생각하던 광주와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에 80년 5월의 광주가 장식이나 배경처럼 놓여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더 뜨거웠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다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으로 침묵해야 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나 자신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감정의 정도를 넘어서버렸다. 그래서 이제 영화와 역사가 관계를 맺는 것과 영화와 사회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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