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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고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동시상영관이 두 개 있었다. 집 근처에 있던 극장의 경우 그 시절 웬만한 동네라면 하나 쯤 있던 동네극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규모와 수준에 있어 버스 한 정거장 너머의 극장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너머의 극장이 개봉관에서 내려간 지 얼마 안 되는 따끈따끈한 영화를 한 편 정도는 반드시 틀어줬던 데 반해 집 근처 극장은 정체불명의 영화를 두 편 틀어주는 무늬만 동시상영관이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나는 집 근처의 극장만 이용했는데, 이유는 너머의 극장에는 속칭 ‘호모’들이 득실댄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때가 70년대임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나와 같이 다니던 친구 녀석은 그 극장 앞을 한 달음에 뛰어서 지나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마음 한 구석을 뜻 모를 불안으로 몰아넣던 동시상영관의 이상한 아저씨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 것은 80년대가 저물면서부터였다. 동시상영관이 하나둘 씩 사라진데다가 보다 자유로운 사회분위기 속에서 만난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제고된 탓이다.

호모포비아도 아니거늘, 그 후로도 이상하리만치 퀴어 영화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니까 2006년 하반기를 떠들썩하게 달궜던 <후회하지 않아>를 보지 못했고, 김조광수가 연출 데뷔를 선언한 <소년 소년을 만나다>역시 놓쳐버렸다. 그렇다고 퀴어 영화를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와 개봉예정인 <쌍화점>도 보았으니 편견을 가졌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닐 테다. 다만 최근 기사로 다뤄지는 동성애 코드의 영화들이 하나 같이 만듦새에 있어 기대 밖이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즉 동성애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에는 이야기 전개의 급급함이 드러나고, 그 결과 보편적 사랑이 휘발되어버렸다는 점에서 가능성보다는 한계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동성애 코드를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대중적 관심을 끌어보려는 전략은 오히려 비평적 논의 가능성마저 봉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아쉬운 일이다. 이런 와중에 2007년 당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놓친 후로 잊고 지내다가 느닷없이 보게 된 소준문 감독의 <올드랭 사인>은 근년에 만난 최고의 퀴어 영화라고 단언할 만한 영화다. 불과 25분짜리 단편영화가 내 눈시울을 적실 줄이야.

젊은 시절 서로 사랑했던 두 남자가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시작되는 <올드랭 사인>은 그들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회한을 하나 둘 씩 끄집어내는 하룻밤 동안, 동성애를 보편적 사랑의 위치로 승화시켜놓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소준문 감독은 <동백꽃 프로젝트> 중 ‘떠다니는 섬’을 통해 세인의 시선을 피해 보길도로 온 두 남자의 일상을 파고들어 현실과 격리된 사랑의 공허함을 이야기 한 바 있는데, 그런 점에서 <올드랭 사인>은 ‘떠다니는 섬’과 종과 횡으로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오래전 그들이 꿈꾸었던 대로 실행에 옮겼더라면 ‘떠다니는 섬’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지만, 용기가 없었기에 노년에서야 만나게 된 두 남자의 사연들을 담아낸 것이 <올드드랭 사인>이라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를 통해 감독이 얘기하는 것은 사랑의 보편성이다. 이때 동성애의 일반화를 시도하는 중심기제로 사용되는 것은 노인의 성인데, 동성애도 모자라 이성애에서조차 소외시킨 노인의 성을 전면에 내세운 감독의 배짱은 탄복할 만하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영화의 매혹은 말없이 몸에서 몸으로 전달되는 감정의 파동이다. 이를테면 재회한 노인들이 모텔에 묵은 후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감독은 손길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절절한 그리움과 사연을 그들 이마에 패인 주름만큼이나 깊게 뇌리에 각인시켜놓고 있고 그 절절함이 어떤 이야기도 도달하지 못할 지점에 이르고 있으니, 처연하고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는 이처럼 겹겹이 쌓인 소외와 편견의 굴레 속에서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다.

정말로, <올드랭 사인>을 본 후로도 한참 동안 장면 장면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무엇이 이토록 감정을 붙잡아 맸는지는 나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퀴어 영화들마다 추구했으되 이루지 못했고, 넘어서고 싶었지만 감히 발 떼지 못한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동시대성이라는 책갈피에 곱게 꼽아놓았다는 사실이다.

독립영화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우회하지 않는 직설화법으로 소수자를 헤아리는 시선이야 말로 독립영화라서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알려고 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놓쳐버렸고 지금도 ‘독립영화’라는 변방의 곳간에 한 가득 쌓여있는 영화들. 이제 그것들을 만날 다시없는 기회가 찾아왔다. 12월 11일(목) 저녁, 최대의 독립영화축제 ‘서울독립영화제’가 막을 올린다. 바라기는 독자여러분의 무한한 관심과 관람이 이어졌으면 한다. 얼음장 같은 시대를 무력화시킬 뜨겁게 휘몰아치는 날것의 열기를 온 몸으로 체험하시라.


(추신) 서울독립영화제 이야기를 하자고 학창시절 동시상영관부터 <올드랭 사인>까지 빙빙 돌아 왔으니, (대체 동성애는 왜 나온 거냐?) 요즘 내 상태도 영 아닌가 보다. 너그러이 넘겨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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