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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목) 제 35회 서울독립영화제가 시작된다. 독립영화계 최대의 축제이자 한 해를 결산하는 서울독립영화제를 목전에 두고 관객심사단(단장 이도훈)에서 초청작에 관한 8편의 프리뷰를 보내왔다. 먼저 읽고 관심 있는 영화를 찜해두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영도다리]_전수일

주인공 인화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피붙이 없이 부산에서 자라났다. 그녀는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어린 미혼모다. 곧 산통이 온몸으로 퍼져오지만,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줄 사람은 없다. 그녀는 홀로 영도다리 위를 걸어가지만, 산통은 점점 심해져 가고 그대로 쓰러진다.

세상에 아직 꽃을 피워보지 못한, 19살의 소녀. 그렇기에 축복을 받아야 할 아기의 탄생은 그녀의 삶의 무게를 더하는 환영을 받지 못할 존재다. 인화는 결국 입양센터에 아기를 보내기로 하고 간직하고 있던 탯줄마저 버린다. 그녀가 아기 엄마임을 증명하듯, 가슴에서 모유가 새어 나오지만, 어린 나이에 ‘미혼모’라는 수식어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름이다.

또한, 인화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폭력, 학대, 죽음 등에 대해 회피하거나 방관적이다. 유독 그녀가 유심히 지켜보는 어느 꼬마가 있다. 대화를 주고받는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담배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동질감을 소통한다.

따듯한 가족애를 느껴보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인화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시점이 찾아온다. 그녀는 우연히 바닷가에 빠진 시신을 찾는 인부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검은 그물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신발을 보고 멈춰 선다. 그 신발을 보고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졌던 슬픈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산통의 표식이 된 수술자국과 핸드폰 사진에 찍힌 아기의 얼굴을 보고 죄책감에 빠져든다. 그 뒤로 인화는 입양센터로 아기를 찾기 위해 나선다.


아기를 향한 인화의 모성애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녀는 입양센터의 직원에게 아기를 돌려달라고 막무가내로 말하지만, 절차의 문제 때문에 어렵다며 거절당한다. 몇 번이고 찾아가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직원은 냉정하게 뿌리친다. 결국, 인화는 맥주병으로 직원의 머리에 내리치며 위협하듯,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말한다.

아기가 있는 프랑스로 찾아가는 그녀. 낯선 나라의 어느 마을 어귀에서 양부모의 집을 찾는다. 아기의 집에 도착한 그녀는 파란 눈의 여인에게 “I came..."이란, 미처 끝나지 않은 문장을 반복한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동안의 모든 아픔을 흘려보내듯, 아이를 향한 그녀의 간절한 마음은 모성애라는 초월적인 힘을 보여준다.

‘하루에 두 번씩 영도다리 끄덕끄덕..’영도다리 노래의 한 구절이다. 영도다리는 사람들의 한과 슬픔,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사의 상징물이라고 한다. 이 영화 속에도 지역성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역사성도 나타낸다. 영도다리는 주인공 인화를 통해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이다. 그녀의 과거가 슬프고 외로웠다면, 앞으로 만들어갈 현재와 미래는 아이를 찾게 되면서 변화하는 그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되어버린 그녀의 제2의 인생 여정을 상상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관객심사단_ 박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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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_신수원

음악과 영화가 만났다. <레인보우>는 음악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 지망생의 이야기다. 주부인 그녀는 홍대 인디밴드와 자신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시나리오의 키워드를 잡는다. 이 영화는 음악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의 음악영화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음악의 열정과 그 열정을 불식시키는 못난 상업영화계를 대차 대조해 보인다.

취재차 방문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여자가 주목한 것은 무대 아래다.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 미친 듯 춤추는 사람들, 화장실 줄을 서며 몸 흔드는 사람들 등. 모두가 서 있는 곳이 무대다. 취재차 만난 인디밴드 '레인보우'도 스스로 무대를 만들 줄 안다. 그들은 관람객이 없으면 없는 대로 공연한다. 연습 공간은 따로 없다. 구경꾼 없는 길 위에서도 연습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편의 근사한 공연이다.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 주체적인 이 모습은 실로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상업영화계는 정반대다. 상업적인 영화 전선에 있는 한 시나리오는 영화사의 영향 아래 놓인다. 상업영화사는 대중의 시선을 끌 만한 이야기 소재, 장르, 구조를 요구한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돈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시나리오는 기계적이다. 갈등 지점이 명확해야 하고 주인공은 중산층이어야 하며 장르는 판타지같이 예외적이면 곤란하다. 이 획일적인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는 영화계는 저 음악의 현장과는 다분히 다르다. 무대의 주인공은 이윤 창출을 보장하는 대중성이다. '사람이야기'가 우선인 여자는 퇴출당한다. 돈과 교환되지 못하는 한 무대에 설 자격은 없다.

대립하는 두 개의 국면에서 영화는 스스로 태도의 차이를 보인다. 페스티벌의 현장에서 관객의 모습은 종종 캠코터의 화질로 대체된다. '레인보우'의 길거리 연습 장면도 여자가 들고 찍은 날것 그대로이다. 그들에 대한 애정이 오롯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것은 여자가 지향하는 것에 대한 영화의 지지이기도 하다. 여자의 환상을 꾸짖는 PD 또한 여자의 시선으로 화면에 담긴다. 그러나 이때 PD는 여자를 내려다보는 자의 위치에 서 있다. 올려 보는 카메라 앞에서 그녀의 '거지같은 상상'을 매도할 때 상업영화계의 위압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결국 여자의 이야기는 상업영화사를 관두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녀의 다음 목적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영화는 '꾸준히 걷기'라는 태도를 마침표로 정한다. 그 행보의 방향은 영화가 긍정한 인디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고 꾸준히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적인 열기가 그들의 서사일 것이다. 영화 <레인보우>는 열정의 이미지를 단지 소비하지 않는다. 뜨거운 현장에서 삶의 태도를 성찰한다. 신나고 든든한 영화다. (관객심사단_ 정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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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기원]_김응수

김응수 감독의 보폭이 넓어졌다. 히말라야로 향하는 여정을 다룬 <천상고원>(2006)은 한 개인의 내면을 깊게 응시하는 작품이었다. 곧이어 1986년 전방입소 반대 시위에 관한 다큐멘터리 <과거는 낯선 나라다>(2007)로 386세대의 부채의식을 다룬 바 있다. 개인에서 세대로 이야기 범위는 넓어졌지만, 감독은 일관된 화두를 던졌다. 두 영화의 공통분모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 부재한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현대사다. 감독의 발자취를 고려해본다면 신작 <물의 기원>은 숙명에 가까운 영화다. 이 작품에서 개인, 세대, 역사는 한 자리에서 조우한다. 마치 예정된 순서인 양. 작품의 모티브를 얻은 사연도 기구하다. 김응수는 고향인 충주댐을 산책하던 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중 사망한 고 김중배씨의 무덤을 발견했다. 감독은 죽은 자 앞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체감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장면마다 죄의식과 회한 그리고 1965년 6.3사태를 영화화하겠다는 한 예술가의 사명감이 감돈다. 그러나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기록과 증언에 충실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영화는 연극과 신화의 형식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 극영화다.

1부라고 할 수 있는 전반부에서 두 남녀가 대화를 나눈다. 여자는 남자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말한다. 남자는 1965년, 그때 그 사건을 회상한다. 헌데 두 사람의 표정은 석고 가면을 씌워 놓은 듯 얼어붙어 있다.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시선 처리와 독백식의 대사는 다분히 연극적이다. 이런 모던한 연출은 장 마리 스타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작품들만큼이나 급진적이다. 2부로 이어지면서 영화는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 남자가 30년 전 어머니가 그렸던 그림 속 숲을 찾아 떠난다. 전설에 의하면 평범한 남자가 나타나 파괴자를 물리친다는 곳이다. 초목이 우거진 숲, 거기서 먹이를 찾는 승냥이마냥 떠도는 남자, 그리고 남자를 무심히 쳐다보는 카메라. 어딘지 모르게 아핏차풍 위라세타쿤의 영화 <열대병>과 닮은 데가 있다.

곧이어 남자의 고행이 시작된다. 남자는 ‘순수’를 찾는 방랑자다. 그가 떠나온 세상은 오염된 곳이다. 오염의 주범은 과거 친일행적을 일삼고 지금은 호의호식하는 자들, 무소불위의 힘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시민들의 지도자다. 반면 자연은 세계로부터의 도피처이자 마지막 남은 비상구이며 순수의 마지노선이다. 남자는 원류로의 회귀하듯 강을 끼고 있는 숲으로 들어간다. 충주 댐에 고인 물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평온함을 간직한 곳이며, 숲은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장소다. 그러나 숲은 남자를 거부한다. 그는 길을 잃고 한 자리를 맴돈다. 동물들은 그에게 적대적이다. 그는 상처를 입는다. 남자는 맹수에게 다리를 물려 거동이 힘들어지고 새에게 눈을 공격 받아 앞을 보기 힘들어진다. 그의 몸에 난 생채기는 인간의 만행에 대해 자연이 주는 응보의 결과물이다. 남자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것은 피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던 예수의 육신, 새에게 눈이 찔려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은 코카서스 바위에 묶여 독수리의 공격을 받던 프로메테우스의 육신과 진배없다. 희생 없이 구원도 없다는 걸, 영화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물의 기원>은 숭고한 희생을 그리는 영화임에 틀림없을 거다. (관객심사단_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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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fungames.im/games/driving/ BlogIcon Driving Games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 예 그 일을 사랑

    2012.08.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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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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