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9 서독제 장편초청작 <탈주>

필진 리뷰 2009.12.15 14:07 Posted by woodyh98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시원

이송희일 <탈주>

도시의 밤, 청춘들이 오토바이를 탄 채 거리를 질주하고, 카메라는 이들의 얼굴을 바짝 쫓는다. 이들은 절망했고, 벗어나고 싶고, 도망치고 싶어 담을 넘고 숲을 지나 도로 위를 나온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하진 않다. 다만 지금 여기 정주하고 싶지 않다. 그래선 안 된다. 붙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라도 저지른 것일까.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일까.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 이후 12년이 지난 2009년, 한국 중견의 감독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거리의 청춘들을 오토바이에 태우기 시작한다(정성일 <카페느와르>, 김정 <경>, 박찬옥 <파주>, 이송희일 <탈주>). 그들(청춘과 카메라)은 밤 혹은 안개 속의 거리, 그 불확실한 시야의 도로 위를 헤드라잇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달린다. 어쩌면 레오 카락스 영화의 오토바이 질주를 떠올린다. 그 새까만 어둠을 향해 온몸으로 춤을 추다 오토바이에 몸을 싣는 드니 라방과 줄리엣 비노쉬. 그 엄청난 속도에도 불구하고 눈빛 하나 떨지 않은 채 정면의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눈동자. 완전히 절망했거나 완전히 포기한, 백지 같은 얼굴의 순전함, 그 검은 눈동자속의 작은 흰 빛 같은 것.

<탈주>는 세 젊은이가 군대로부터 탈영한 직전의 상황으로부터 6일 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강재훈 일병(이영훈), 박민재 상병(진이한)과 함께 나온 친구는 가장 먼저 다리에 총격을 맞는데, 해병대 출신 아버지가 헬기 위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기겁한 나머지 자살해버린다. 그 친구는 집으로 가도 군대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재훈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민재는 예전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민재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불완전한 정신상태(군대 내 성폭행사건으로 인한)는 이들을 끊임없이 티격태격하게 만들면서 수시로 위기적인 상황에 마주치게 한다. 하지만 수색대의 추격에 쫓기는 때면 이들은 몸을 붙여 서로 의지해가며 그 미로 같은 산 속의 숲길을 함께 헤쳐 나간다. 마치 러시아 해빙기에 나온 전쟁영화들, 특히 라리사 셰피트코의 <고양>같은 데서 보았던 장면(성격적으로 상반된 두 병사(세속적 vs 초월적)가 다친 몸을 부여잡고 함께 의지하여 눈길을 헤쳐 나가던)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는 재훈과 민재의 현실적 소망을 철저하게 앗아가 버린 후(재훈의 어머니는 이미 죽었고 민재는 여자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 재훈이 알고 지내던 '누나' 이소영(소유진)을 그녀의 낡은 차와 함께 이들에 합류시키면서 본격적인 로드 무비의 길을 향한다(남2, 여1의 삼각 로드무비). 이들 셋이 동승한 자동차는 추격을 피해 계속해서 옮겨 다닌다. 똥차에서 개장수 트럭이 되었다 길거리에서 훔친 차량들이 된다. 시간이 하루씩 지나면서 돈과 식량은 점차 바닥나고, 도피 과정에서 입은 재훈의 총상은 자꾸만 그를 무겁게 만든다. 재훈은 소영에게 계속해서 돌아가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민재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어느 갈림길에서인가 재훈은 오토바이 하나를 훔쳐 달아나기 시작한다. 그는 길거리에서 뒤 따라오던 차를 세운 뒤 운전자를 산 속으로 몰아가 잔인하게 살해한 후 다시 갈림길로 돌아온다. 뿔뿔이 흩어질 뻔한 셋은 다시 만나 질주를 시작한다. 이들은 이제 차를 버리고 오토바이 위에 세 몸을 포갠다. 재훈과 소영과 민재가 마치 한 몸이 되어 오토바이에 동승한 채 달리는 신은 더할 수 없는 청춘의 절망감을 가슴 시리게 흔들어놓는다. 젊음의 시간은 계속해서 도로 위에서 소진된다. 이들은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다. 카메라가 이들의 운동을 가까이에서 포착할 때 그것은 흔들리거나 부유하지 않는다(핸드헬드가 거의 불가능한 무게를 가진 바이퍼 카메라로 찍었다). 공간은 시간과 함께 계속해서 흘러가지만 이들은 마치 그것을 따르지 않는 점처럼 존재한다. 배경만 흘러갈 뿐 상황은 그대로 있거나 더욱 악화된다. 이들은 6일에 가까운 시간을 계속해서 운동하지만 이들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공간과 시간이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좁혀가는, 멀리 나아가는 희망적 운동이 아닌 막다른 길을 향해 가는 비극적 운동일 뿐인 것이다.

군대 같은 사회 조직도 아니고 집도 아닌 곳, 그야말로 울타리도 없는 벌판, 대한민국 어디인지도 모를, 지도로 찾을 수도 없는 도로 위를 질주하는 청춘들의 존재감은 마치 경계 위에 선 자의 그것 같다. 끊임없이 경계를 만들어 내부(나)와 외부(타자)를 분리시키는 국가는 결코 경계 위의 존재를 허락할리 없다. 그 위에 선다는 것은 곧 비극을 선택하는 일이다.

탈주의 5일 째, 이들은 마치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열어젖힌 기념비적인 작품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보니 앤 클라이드)>의 한 장면처럼 이 셋은 대낮게 과감하게 은행을 털지만 결국 그 돈이 이들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민재는 이 땅에서 새롭게 살아보겠다며 성형수술 비용을 챙겨 떠나고, 재훈과 소영은 돈으로 브로커를 사 중국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하게 된다. 어쩌면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밤, 재훈과 소영이 사랑을 나누는 사이 민재는 오토바이를 홀로 질주하다 경찰에 발각되고 만다. 만감이 교차하는 밤이 지나가고 드디어 운명의 6일 째 아침이 찾아온다. 로드무비는 이 젊은이들을 어느 샌가부터 마치 무전여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만들어버리고, 그들은 자신이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진 존재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비극은 항상 슈퍼에서 생필품을 사다 발생한다. 주스와 담배. 여행에 앞서 기호품을 챙기게 되는 심리라도 발동한 것일까. 어느 새 이들은 새까만 수색대에 둘러싸여있다.

영화는 <보니 앤 클라이드>의 엔딩에서처럼 장렬하게 총에 몸이 뚫리는 청춘 남녀들의 몸을 보여줄까 싶더니 난데없이 기호품을 챙긴 소영의 머리통만을 뚫어버린다. 수색대의 차량 안엔 벌벌 떨고 있는 민재의 구겨진 모습이, 도로 위엔 총을 맞고도 여전히 살아있는 재훈의 절규가 흐른다. 이 결말은 셋이 함께 몸을 부대끼며 동승해 온 로드 무비의 정서를 뒤집는다. 세속적인 자가 선택하는 결말은 그렇다 쳐도 지금까지 구축되어온 재훈의 캐릭터가 소영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살아있는 상태로 끝이 나는 것은 사실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경계도시인 대한민국에서 경계에 내몰린 청춘들의 영화, 그 정신의 운동을 살려가는 영화였다고 한다면 이들 중 누군가는 자진적인 결정을 해야만 했다. 셋 모두가 수색대 앞에 꼼짝없이 당하는데, 운명을 같이하는 것도 아닌, 각기 다른 운명에 처하는 이러한 결말은 어둠 속을 헤치고 달려온 간절하고도 절실했던 길, 작은 빛 하나를 부여잡기 위해 끊임없이 절망하고 비극을 겪어내야 했던 이들의 여정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탈주는 과거의 레지스탕스 영화들에서만 희망적으로나 비극적으로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브레송, 르누아르, 멜빌의 영화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datadoctor.biz BlogIcon file recovery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기사에 대해 매우 인기있는 영화. 난 그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보고 영화의 예고편과 영화는 정말 맛있 네요.

    2010.08.09 17:39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81
  • 013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