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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와 김경준 그리고 보일러 룸

필진 칼럼 2007. 12. 14. 08:52 Posted by woodyh98

큰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세간에 화제가 되는 영화나 책들이 있다. 이를테면 김대중 정부시절 최규선 게이트의 주범 최규선이 검찰에 출두할 때 손에 들었다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가 단숨에 서점을 뒤덮었고, 재미교포 조승희의 총기사건 조사과정에서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재론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리고 지난 10월부터 한 시도 틈을 주지 않고 귀와 눈을 괴롭히던 BBK의 김경준이 영화 [보일러 룸 Boiler Room](2000)을 모방하여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인터넷 검색어 상위를 차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때문에 2000년에 개봉하여 기억하는 이도 많지 않을 이 영화가 뒤늦게 호사를 누리는 것은, 게다가 썩 유쾌하지도 않은 현안관련 글까지 필자로 하여금 쓰게 만든 것은 순전히 김경준의 덕분이라 하겠다.

[보일러 룸]은 ‘증권이라는 마약을 파는 브로커들’의 세계로 파고든 한 젊은이의 성공에의 헛된 믿음과 좌절을 통해 젊은이들의 성공과 출세를 향한 무분별한 도전기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의 제목인 ‘보일러 룸’은 증권사기를 하는 일군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메가폰을 잡았고 직접 시나리오도 쓴 27살의 젊은 감독 벤 영거는 아주 재치 있게도 그 세계를 말 그대로 마약 밀매를 하는 갱스터의 세계처럼 묘사하고 있다.

J. T 말린이란 회사에 소속된 ‘갱스터’들은 영화 [월 스트리트 Wall Street](1987)를 보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악랄한 브로커 게코의 대사를 마치 자신들의 교리인양 외는가 하면, ‘계집들과는 얘기하지 말라’는 계율을 신봉하는 철저한 마초(macho)들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들은 술집에서 다른 증권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들의 공격적 성향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화기 너머로 잠재 고객에게 어떤 수를 써서든 주식을 팔고자 기를 쓰는 그들은, 그러니까 매일매일 수천 번씩 고객과의 전투를 수행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 아니던가. 영화는 이 갱스터들의 세계 위에 마음을 흥분시키는 힙합 음악을 깔아놓음으로써 보는 이의 심장 박동을 한층 높여놓는다. 그러나 갱스터는 반드시 몰락하는 법. 영화 속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1997년 11월 IMF가 시작되어 많은 이들이 직업을 잃었다.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고, 회사는 감원과 명예퇴직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군살빼기에 안간힘을 썼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이들로 거리는 넘쳐났다. 은행금리는 바닥이었지만, 정부주도의 IT열풍은 20대 벤처사업가를 양산해냈고 이들은 회사를 코스닥에 등록시킴으로써 신흥부자가 될 수 있었다. 너도 나도 벤처에 투자를 하던 시절, 다른 한편에서는 ‘펀드회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으니, 엄청난 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로 개인투자자들을 현혹시켜 거액을 모집하고는 잠적하거나, 파산하는 식의 경제범죄도 잇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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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JT말린사가 하는 일은 IMF시절 기승했던 사설펀드나 주가조작 사기단이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개인 투자자에게 전화를 걸어 주식매수를 유도하고 주가가 오르면 회사 보유지분을 팔아치움으로써 차익을 남기는 수법을 쓰고 있다. 따라서 회사는 이익을 얻어 고액의 브로커들에게 고액의 커미션을 지급하지만, 정작 투자자는 망할 수밖에 없는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 세스(지오바니 리비시 분)가 한 푼의 커미션도 얻지 못하고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가 관여한 주식이 이미 급락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를 믿고 투자한 ‘해리’는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부를 위해 한 사람의 가정과 인생을 패망으로 몰고 간 예는 수 없이 많다. 1995년 영국 베어링 은행의 싱가포르 책임자인 불과 28세의 ‘닉 리슨’이라는 젊은이가 저지른 허욕에 찬 헤지 펀드 투자로 인해 100년 전통의 은행을 파산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1999년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영화 [겜블_ Rogue Trader]로 만들어 진바 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개인적 이득을 취함으로써, 혹은 허황된 욕심을 부림으로써 타인과 기업을 몰락시킨 예가 얼마나 많던가.

그릇된 경제관과 직업윤리의 부재는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해악을 끼친다. 주식으로 돈을 잃고 거리에 나 앉거나, 무리하게 빚을 얻어 투자를 하다 신용불량이 되거나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주식의 원리란 제로섬 게임이라서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사람이 잃기 마련인 것이다. 게다가 21세기 같은 무한경쟁시대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밟고 서야 하는 일은 상도덕과는 무관하게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영화 속 젊은 브로커들의 부가, 공정한 게임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거니와, 다소 사치스럽게 살았다 하더라도 죄가 될 순 없다. 하지만 이들이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것이 아니라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부를 위해서’라는 불순한 목적을 가졌고, 애초부터 그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알았다는 점에서 용서받기 힘든 것이다.

청년실업이 급증함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되는 현실에서 직업에 대한 갈증은 그 어느 때 보다 크기만 하다. 자신의 학력이나 경력, 전공과 취향에 맞춰 취업을 하는 것이 요원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일이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 아무리 보수가 높다 해도 사회에 해악이 되는 일은 직업이라고 할 수 없거니와, 그것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실패한 뒤에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신기루를 쫓다 스러져간 한 젊은이의 회한을 독백으로 담고 있다. “ 난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한다. 그날 그렉이 안 왔다면? 회사에 가방을 놓고 오지 않았다면? 사장님이 들어가는 걸 못 봤다면? 해리한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래도 이미 끝난 일인 것을.

직업이란, 혹은 직장을 얻는 일이란 생계유지와 자아실현과 사회공헌에 목적을 둔다고 볼 때, 무엇보다 건강한 직업관과 올바른 가치관, 돈에 대한 경제의식이 투철히 요구될 때이다. 개개인의 건강한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질 때, 사회는 건강해지고 국가 경쟁력이 강화된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과 생활 경제교육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영화 [보일러 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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