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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푸구>는 극의 형식을 빌려온 실험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특별한 갈등이나 장면 전환 없이, 제자리에 놓여있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담아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관객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푸구>는 X, Y, Z 세 남녀의 사랑과 애증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지만, <푸구>의 카메라가 잡아내는 모든 장면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X나 Y, 혹은 Z에 관해 친절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을 지양한다. <푸구>의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거나 화면 밖을 응시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이는 카메라를 통해 아주 천천히, 하지만 적극적으로 묘사된다. <푸구>가 관객에게 다가가는, 다시 말해 <푸구>의 ‘단서’는, 영화에 나오는 단 한 번의 일본어 대사가 전부다. “태초에 사랑만이 있었다. 그리하여 신이 여자 남자 여자를 창조했다. 그리하여 빛이 밤을 더욱 어둡게 어둡게 만들었다.” <푸구>는 X, Y, Z 세 인물이 특정 공간 안에서 부유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목적을 단 세 줄의 대사에 모두 함축시켜 표현한다. 그렇게 함축된 아주 짧은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의 특성과 지속적으로 맞물리며 유령처럼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를 깊게 응시하지만 결코 말을 걸거나 대화의 제스쳐를 건네지 않는다.

문 쪽으로 향해있는 계단 위층에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고, 카메라 앞에는 한 여자가, 그리고 아래층의 문 앞에는 한 남자가 서있다. 여자는 천천히 카메라 밖을 향해 걸어가며 사라지고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여자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문 안으로 들어온다. <푸구>의 인물들은 위와 같이 조용하고 한결같은 리듬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귀 기울여 듣는다. 때문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세 명이 마주하는 장면은 그 존재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낳지만, 직접 마주하게 된 세 인물들은 상대방을 향해 욕설을 퍼붓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무중력의 공간을 떠다니듯 무기력하게 상대의 옆에 털썩 주저앉는 그 잠깐의 순간이 <푸구> 속에 잠재되어있는 갈등의 클라이맥스를 격화시킨다. 한참동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떠보아도 그들은 역시 자신이 있는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며 카메라 밖 어딘가로 시선을 던진다. 남자는 자신을 견디다 못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길바닥에 드러눕지만, 이내 여자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세 명의 인물들이 합의하에 걸어놓은 ‘목을 매기 위한’ 밧줄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푸구>는 한정된 공간 안에 절제된 감정을 풀어놓음으로 인해 육체가 아닌 감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독특한 연출 방식을 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은 다듬어지지 않은 내러티브 안을 마음껏 탐험하며 세 명의 인물들에게 빨려 들어간다. <푸구>는 일반적인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들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인물들만을 살려낸 영화다. <푸구>는 극의 형식을 빌린 실험, 실험의 형식을 빌린 극, 두 가지의 장단점을 갖추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 자체에 익숙해지기까지 비교적 많은 시간이 소비된다. 하지만 <푸구>가 디지털 시네마만이 소화해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파오잔 리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영상으로 쓰여진 시적 운율을 시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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