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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가능성 많이 있습니다만 하루 빨리 이 영화가 개봉되길 바라며 졸고를 올립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누구나 끼니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는 것, 하루에 몇 번씩은 화장실을 꼭 가야 하는 것 등 귀천이 없는 당연한 것들이 우리 주위에 참 많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누구나 가위를 든 미용사 앞에서는 꼼짝없이 얌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인물들의 관계와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점묘화 같은 면이 있다. 굵직한 선 사이로 촘촘히 들어선 점들이 모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가 감독이 애초에 전달하려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복잡한 물건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만의 마력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싼 우발적 살인과 그에 따른 세 사람의 관계변화를 다루고 있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풍성한 상징성을 갖는 것은 굵은 내러티브 사이로 촘촘히 박힌 또 다른 무엇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예준과 그의 친구인 재문, 그리고 그의 아내인 지숙, 이렇게 세 인물이 등장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이 영화의 화자는 예준이다. 그러나 영화는 균등하게 세 사람의 심리와 관계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 영화를 보던 간에 감상의 폭은 전혀 줄지 않는다. 특히 지숙의 위치와 그녀의 일련의 행동들은 가장 크게 관객의 심리를 파고든다. (필자는 감히 지숙이 근래 한국영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라고 평가한다.) 그 중 필자가 주목하는 곳은 예준의 눈높이이다.



그가 그들에게 준 것


영화는 꽤 고급스러운 거실에 앉아 예준과 전화 통화를 하는 재문과 지숙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통화내용에 따르면 아마도 분에 넘치게 고급스러운 숙박을 제공한 것은 예준인 듯하다. 그렇게 재문과 지숙의 결혼식 비디오가 나오는 프롤로그를 지나면 재문과 지숙은 나란히 예준의 앞에 앉아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예준의 눈높이는 그들보다 위에 있다. 영화 속에서 예준은 그들에게 지식과 돈을 제공한다. 재문의 대사에 따르면 예준은 군대에서 재문에게 “평등”을 깨우쳐주었고, ‘철학에세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재문과 지숙의 아이 이름으로 ‘민중혁명’의 줄임말 ‘민혁’과 칼 맑스 아내의 이름인 ‘예니’를 주었다.



그들에게 그가 받은 것


지숙과 하룻밤을 지내고 난 다음날 아침 지숙이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예준은 밥숟가락을 내던지며 소리친다. “이것들이 누구 덕에 살고 있는데!” 예준이 그들을 먹여 살리는 꼴이 되는 동안 그가 그들에게 받은 것은 무엇일까. 외환딜러로 승승장구 하는 예준은 직장 동료들에게 비난 받고 재문에게 찾아와 위로를 받는다. 예준에게 재문은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신념의 잔재이고 어떤 부탁이라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막말로 하자면 막 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예준은 재문과 지숙의 아들을 죽인다. 물론 사고였지만 재문은 예준의 죄를 스스로 지고 감옥에 간다. 예준은 살인죄를 피했고 친구의 아내를 차지한다.



GIVE & TAKE


미용박람회를 위해 파리에 간 지숙은 유람선 위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미국과 프랑스가 그것을 주고 받은 사연을 말한다. 세상은 그렇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영화는 곳곳에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뿌려두고 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숙이 켜 놓은 TV에서는 한미FTA에 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재문과 지숙 사이에서 정신 나간 예준이 있던 회의실에서 예준의 동료들은 한미FTA가 가져올 GIVE&TAKE에 대해 말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 혹은 말로 주고 되로 받는 것. 이런 정치적 암시가 자연스럽게 예준과 재문, 지숙의 관계에 오버랩 된다.

지숙과 처음으로 오붓한 대화를 나누던 저녁, 예준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건 내 자리와 이름을 걸고 추진한 겁니다. 절대 번복할 수 없습니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예준에게 지숙은 말한다. “예준씨는 힘이 있어요.” 영화는 어느 순간, 힘이 있는 자들의 공평하지 않는 주고 받음에 대한 비꼼을 드러낸다.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남자가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자 지숙이 말한다. “얼마면 되나요?” 남자는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다가 지숙이 내민 돈다발을 슬그머니 받아 들고 나간다. 돈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 유쾌한 풍자다.



눈높이의 변화


영화 초반, 재문과 지숙은 미국 이민을 위해 영어를 배우고 돈을 모으고 있다. 재문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씬이 두 번 나오는데 비해 지숙의 눈높이는 변함이 없다. 아이가 죽고 정작 신분 상승을 하게 되는 것은 지숙이다. 일층의 작은 미용실을 하던 지숙은 미국에 다녀오고 난 후 비싼 동네에 넓은 통 유리로 된 헤어숍을 개업한다. 그 때부터 지숙은 2층 유리 안에서 밖을 내려다본다.


미국에서 돌아온, 몰라보게 달라진 아름다운 지숙이 예준에게 전화를 걸어 개업식에 와달라고 말한다. 지숙의 전화를 받고 나서 예준은 운동기계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그의 눈높이가 추락할 차례이다. 예준은 그 때부터 지숙의 가게 앞에서 지숙을 올려다본다. 재문이 출소하고 같이 떠난 바닷가에서 재문과 예준은 나란히 서있지만 재문은 바위 위에서 예준을 내려다본다. 지숙이 두 남자를 가게로 불러내 결단을 내리던 마지막 밤, 예준은 간이 침대에 누워 묶인다. 두 사람을 올려다보는 예준. 완벽한 눈높이의 변화다.



천장 모서리의 대구법


영화 후반에 천장 모서리가 세 번 나온다. 지숙이 재문을 만나러 치킨가게에 갔을 때 바퀴벌레가 통풍구를 타고 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고급스런 모텔의 천정 모서리가 나온다. 그리고 불이 나던 미용실 천장의 모서리가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나온다. 세 번의 천정은 경제적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높아 봤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에 휩싸이는 사각형의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의 아이 민혁이를 화장할 때와 겹쳐진다. 세 선이 만나는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 그리고 예준의 종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같다. 지숙은 그 곳에서 세 사람이 모두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여자, 그리고 어머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필자는 이 영화가 두 남자의 잘못된 우정 때문에 피해를 본 여성의 복수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아이보다 자신이 중요해서 프랑스로 날아갔던 지숙도 무고할 수 없었고 모든 비극을 끝내기 위해 그녀가 내린 선택이 다시 그들을 살게 했다고 보여진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임신을 한 지숙은 손님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가위질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편지가 도착하고 아무 말 없이 편지를 건네고 받아 드는 재문과 지숙의 행동 위로 묵묵히 가위질 소리만 들린다. 모든 인간이 미용사 앞에서 얌전한 아이가 되는 것은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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