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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


영화를 영화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쇼트(shot)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카메라로 찍은 한 장면이 편집 과정에서 길이와 다른 여러 가지들이 조정된 후 최종적으로 완성된 영화의 한 쇼트가 될 때, 여기에는 감독의 결단이 들어간다. 나는 이 결단의 흔적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영화들이 진정 영화다운 영화라 생각한다. 전주에서 본 라브 디아즈의 <멜랑콜리아>는 매 쇼트마다 감독이 내렸을 결단들이 전해져 온다. 결단들은 비장하며, 비장함은 쌓여 슬픔을 낳는다. <멜랑콜리아>는 결코 글로 정리하여 이해할 수 없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역시 몇몇 쇼트들이 내포하는 결단에 대해 말해야 한다.

여덟 시간 동안 영화 속 90퍼센트 이상의 쇼트들은 인물에게서 멀리 떨어져 관찰자의 시선을 가진다. 사실 롱 테이크와 롱 쇼트의 연속들을 한 시간 넘게 보다 보면, 어느새 그에 익숙해진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와중에도 라브 디아즈의 롱테이크는 가히 엄청나서, 서너 시간이 지나도 적응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감독의 결단이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인물과 세계를 관찰하던 카메라가 '관찰하지 않을 때'이다. 황폐한 인물과 더 황폐한 공간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카메라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인물의 뒤를 따를 때, 나아가 인물의 눈이 되어 직접 공간을 볼 때.


영화의 첫 쇼트는 한 여관방에서 힘없이 짐을 푸는 알베르따의 모습이다. 이후 몇 개의 길고 긴 고정 쇼트들이 이어지다가, 매춘부의 옷차림으로 밖을 나선 알베르따의 뒤를 카메라가 걸으며 따르기 시작한다. 다음 쇼트는 모금 바구니를 든 수녀 리나의 얼굴로 넘어간다. 리나는 알베르따처럼 천천히 걷고, 카메라는 리나의 앞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며 뒤로 움직인다. 마치 알베르따의 얼굴이 리나의 얼굴 같고, 둘은 한 사람처럼 보인다. 내 기억으로 이렇게 핸드헬드로 인물을 따르는 쇼트는 이후 두어 시간동안 등장하지 않는다. '창녀와 성녀' 모티브를 눈치 챈다면 불쾌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지만 이 영화에는 잠시 후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며, 몇 시간 뒤 밝혀지는 그들의 상처와 반성으로 인해 저 두 쇼트는 특별함을 가진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 둔 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극복하려 거리로 나선다. 혁명을 꿈꾸고 실천하던 소중한 이들은 죽음을 맞았고,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은 사라져 버렸다.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을, 카메라는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기는 힘들다는 듯 따라간다. 동행의 결단. 여덟 시간동안 카메라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영화에서, 시작 후 삼십분도 되기 전에 인물을 따라 걷는 쇼트가 쌍을 이루어 나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감독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함께 옆에서 혹은 뒤에서 그들과 걷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거대한 깊은 우울(melancholia)이 감독과 카메라를 멀리에 붙잡아 두는 것일까.

롱 쇼트의 다섯 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면 다시 한 번 쌍을 이루는 특별한 쇼트들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쇼트 중 가장 주관적이라 말할 수 있는 시점 쇼트다. 리나를 죽게 한 자신의 실험이 틀렸다는 것을 안 줄리앙이 보는 흘러가는 강물, 또 다시 사라진 양딸을 찾으며 문득 멈춰선 알베르따가 보는 흘러가는 강물. 그들은 강물 앞에서 무기력하다. 소중한 이의 죽음을 극복하려 발버둥 쳤고 시대와 싸웠던 시간을 긍정하려 노력했지만, 지금 이 순간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흔들리는 시선 속 어둠과 강물에서 나는 그들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좌절을 본다. 난데없는 시점 쇼트의 등장은 우리에게 그들이 보는 것을 함께 보며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함께 느껴보자고 제안한다. 이 또한 동행과 동조의 결단이다. 힘겹게 멀리서 지켜보는 카메라는 영화의 초반에 잠시 인물을 따르고 후반에 잠시 그들의 눈이 된다. 여덟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도 감독과 함께 아주 천천히 영화의 인물과 세계에 동화되어 간다.

언급한 주관적인 쇼트들보다 더 결단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두 시간, 3부에 나온다. 라브 디아즈는 여기서 카메라를 아예 놓아 버린 듯이 찍었다. 혁명에 실패한 세 남자가 울창한 정글 속에서 쫓기며 은신하는 장면. 화면은 온통 새카맣고 군데군데 하얀 점들만이 보인다. 그들이 잠깐 몸을 움직일 때 하얀 점이 움직인다. 수 분간 이런 장면이 지속된다. 도망자의 숨막힘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함이 프레임을 넘어서서 나에게 덮쳐 온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쇼트는 그들이 보는 한밤중 숲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감독은 우리에게 그들이 보는 암흑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결단 내린다. 동시에 그들이 견디는 시간을 우리가 함께 견뎌 내도록 결단 내린다. 이 결단은 세 남자 중 한 명이 연인 알베르따에게 쓰는 편지 중 한 마디, '이 전쟁에서 존재하는 모든 광기는 결국 슬픔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어.' 만큼이나 힘겹고, 슬프다.


영화를 본지 5일이 지나가는 지금에도 영화의 비장한 슬픔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감독으로 하여금 이 정도의 결단을 내려가며 영화를 찍게 만들었을까. 작고 나약한 나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어떤 기운이 여덟 시간 동안 스크린에 서려 있었다. <멜랑콜리아>는 이 기운을 영화가 자신의 생명을 얻는 '쇼트' 라는 것으로 구체화하여 표현해 낸다. 라브 디아즈는 가장 영화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한동안 이 영화를 내게서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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