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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FF 2009] [쉬린] 얼굴을 읽다

필진 리뷰 2009.05.08 09:54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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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이 영화, 무슨 내용이야?”라고 묻는데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선뜻 답을 할 수가 없다. “여자들 얼굴만 나와”라고 답하기에는 ‘쉬린’이란 여자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영화 상영 시간 내내 내가 본 얼굴이 누구였는지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새 영화 [쉬린]은 보는 영화가 아니라 체험하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12세기 페르시아의 서사시 “코스로우와 쉬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자막과 함께 “코스로우와 쉬린”의 이야기가 그려진 그림들이 보여진다. 그리고 극장에 앉아있는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게 다다. 극장에 앉아서 무언가를 보는 여인들의 얼굴들의 나열. 그 얼굴의 서사시를 읽지 못한다면 이 영화를 견뎌내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소개 정보에 의하면 줄리엣 비노쉬를 비롯한 이란의 유명 여배우 114명이 연극을 보고 있다는 설정이라고 한다. 관객은 소리만으로 그들이 보고 있는 극의 내용을 추측할 뿐 무대를 볼 수가 없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우리는 소리로만 알 수 있는 ‘쉬린’의 이야기에 따라 변화되는 표정을 감독의 임의대로 편집하고 정교하게 배치한 퍼즐과 같다.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 속 관객들이 ‘쉬린’의 행복에 웃고, 그녀의 불행에 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앞의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 있는 그 많은, 다양한 표정들을 보다보면 그녀들이 우리를 보는 것인지 내가 그녀들을 보는 것인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녀들이 얼굴을 찌푸리거나 놀랄 때, 그녀들이 보고 있는 것을 같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아름다운 공주 쉬린은 이웃나라 왕자 코스로우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 때문에 쉬린은 평생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다. “자매들이여, 나를 위해 울고 있는가”라는 쉬린의 목소리가 들리고 여인들의 눈물짓는 모습을 보다보면 스크린에 보이는 그녀가 쉬린이고 내가 그녀의 자매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 극장 안에 여자만 앉아있는 것은 아니다. 앞줄에 클로즈업 된 여자들의 얼굴 뒤로 남자들의 모습도 보이고, 다른 여인의 얼굴도 보인다. 우리는 볼 수 없는 그들 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의 밝기에 따라 한 여인의 얼굴 좌우로 보이는 얼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여인의 얼굴만을 보여주는 것일까.

쉬린의 불행에 하나같이 눈물짓고 있는 그녀들은, 진정으로 그들이 보고 있는 쉬린과 동화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감독이 임의대로 배치한 결과물이라는 걸 생각하면, 작품이 먼저가 아니라 관객이 우선인 이 영화의 미스터리가 배가된다. 이런 식의 작업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이고,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영화 속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짜맞춘 ‘쉬린’의 감동이 진짜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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