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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


전주국제영화제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인 디지털 삼인삼색을 보았다. 보고난 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아무리 각자의 위치에서 정점에 있는 감독들이라도, 이런 식의 중편 옴니버스 영화에서 그들의 영화적 기량을 다 펼치기는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세 편 모두 그들의 예전 영화들과 닮아 있고 나름의 매력을 띠고 있지만, 전작보다 더 나아갔다고 보긴 어려운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홍상수는 내가 한국에서 가장 주목하고 좋아하는 감독이며 가와세 나오미는 내가 가장 닮고 싶은 감독이다. 한 편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한 편은 나를 흔들리게 만들었다. 짧게나마 그것에 관해 글을 남기고 싶다.


[첩첩산중]


나는 <극장전> 이전의 홍상수 영화 속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감독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묘하게 왜곡되고 뒤틀린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극장전>부터 희미하게 시작된 여성 캐릭터의 해방은 <해변의 여인>에서 만개했으며, 디지털 삼인삼색의 <첩첩산중>에서는 여성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내레이션의 화자가 되기에 이른다. 나는 홍상수의 영화에서 여성이 계속 생기 있게 변화해가며 새로운 자리를 찾아 나아가는 것이 반갑다. 동시에 부끄럽다. 왜냐하면 변화할수록 그녀들은 현실의 실제 여성들과 가까워지고, 이는 나와 가까워져서 그녀들에게서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깊숙이 숨겨놓았던 치졸한 모습, 내 무의식중의 이기심들을 그녀들이 스크린에서 표출할 때, 나는 통쾌하면서도 부끄러움에 몰래 움츠린다.

작가가 되고 싶은 무명의 지망생인 미숙이 벌이는 일들은 안쓰럽고도 코믹하다. 교수이자 등단한 작가인 상옥에게 집착하고, 예전에 자신을 좋아했고 지금은 유명 문학상에서 수상한 동기 명우를 불러내어 하룻밤도 보내고, 유명작가 집 앞에 가서 쪼그려 앉아 있기도 한다. 나 또한 감독이 되고 싶은 지망생이라서 일까, 미숙의 행동들과 히스테리는 부끄러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게 꼭 부끄럽지만은 않은 것이, 미숙의 이런 면들은 상옥, 명우, 상옥이 만나는 또 다른 여자이자 미숙의 친구 진영보다 더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끝까지 간다.

감독의 의도와는 별개로 내가 영화를 다 보고난 후 이상하게 받은 위로 한 가지. 무명의 예술가 지망생이건 현재 진행 중인 연애를 하고 있는 여자건 유명한 예술가건, 그들은 모두 여전히 엄마랑 싸운다. 홍상수가 반복하는 대구와 변주는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사람 가슴을 울린다. 미스터리다.


[코마]


가와세 나오미에 대해서는 좀 더 길게 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며, 위에서도 밝혔듯 내가 가장 닮고 싶어 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언급하고 싶은 것은 가와세 나오미가 어떻게 자신의 영화에 관객의 마음을 끌어들이는지에 대한 것이다. 가와세 나오미는 때때로 영화 속에서 자기 세계에 대한 연민 혹은 자신에 대한 연민에 깊이 빠진다. 그러한 자기 연민은 가와세 나오미가 처음 8mm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게 만든 원동력인데, 그 정도가 지나칠 때 영화가 조금 힘들어진다.

<코마> 같은 기획성으로 단기간에 만든 중편영화를 한 번 보고 가와세 나오미의 영화적 태도의 변화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모가리의 숲>부터 핸드헬드 촬영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 약간 불안하다. 과도한 흔들림과 빈번한 클로즈업은 경우에 따라 거대한 포장지 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은 개인적 취향에서 오는 생각일 수도 있다. 나는 가와세 나오미가 픽스 샷과 롱테이크로 담아낸 자연의 풍경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들을 더 좋아한다.

그런 약간의 우려를 가지고 영화를 지켜보던 중 영화는 마지막 씬에 이르렀다. 여주인공 하츠코는 기차역의 강준일에게로 뛰어간다. 바람이 불고 낙엽들이 우수수 날린다. 하츠코는 강준일을 끌어안는다. "당신이 날 꽉 안아줬듯이 누군가도 당신을 그렇게 안아줬을 거에요. 그래서 당신이 나를 그렇게 안아줄 수 있는 거에요." 둘은 얼굴을 마주 보고,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며 가까워진다. 나에게 그 씬은 정말 완벽했다. 다가올 새로운 시간과 지나간 시간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대사였으며 기차역의 공기는 스크린 너머의 나에게도 느껴질 만큼 생생했다. 가와세 나오미는 영화가 진행되는 때때로 우리를 지치게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그 감성으로 관객을 무장해제 시켜 버린다. 가와세 나오미의 광팬임을 자처하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비슷한 의미로 이렇게 썼다.


'가와세 나오미는 나를 꼬인다.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만 해, 라고 다짐을 하고 있는데도 자꾸만 아니에요, 그건 너무 매정한 처사예요, 라고 그 누군가가 내 소매를 잡아 이끄는 것만 같다. 감싸 안고 싶은 알 수 없는 동정심. 물론 가와세 나오미가 만들어내는 하소연의 숏이 있다. 정말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감정의 순간.'

가와세 나오미에게 끌리는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낸 문장을 찾지 못해서 정성일 평론가의 글을 잠시 옮겼다. 나에게 <코마>에서의 하소연의 숏은 바로 저 장면이다. 영화감독이 '하소연의 숏'을 연출하여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세계에 대해 연민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와세 나오미의 그러한 영화적 힘을 지금까지 믿어 왔고, 앞으로도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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