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박흥기


슬픔에 대해 영화가 이야기 하는 것 들 [멜랑콜리아]

8시간 동안 영화를 본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전히 발전 중 에 있는 영화의 새로운 영역에 대하여 이 영화가 어떤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중간 인터 미션을 제외한 441분을 어둠속에서 숨죽이고 관람한 가운데, 다시 100여분을 감독과의 대화를 거쳐 길고도 긴 9시간 40여분의 대장정의 마무리는 만족감과 동시에 성취감에 도취된 열광적인 박수 속에 마무리 되었다.

<멜랑콜리아>는 보통의 영화들보다 다소 길다. 이 부분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이 긴 런닝 타임이 의도적인 동시에 필연적인 결과라는 사실이다. 우선 라이브 디아즈 감독은 극장에 걸리기 위한 상영 시간의 제한을 일찍이 무시했던 전적이 많다. 전작 <엔칸토에서의 죽음>의 경우 9 시간 짜리 영화였으며, <필리핀 가족의 진화>의 경우 12시간이 넘는 대작이기도 했다. 라브 디아즈 감독 말에 따르면, 영화라는 예술이 상업에 규제 받는 것은 개 같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라브 디아즈 감독은 이 부분에서 연신 퍽 킹(fucking!)을 외쳐댔다- 일 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무비 혹은 시네마로 부르지 않고 ‘캔버스’라고 부르는 그의 말 처럼, 그는 영화를 온전한 예술의 형태로 대하고 있다. 그가 택한 포맷 역시 제작 기간과 상영 시간에 상업적인 부담이 적은 디지털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6개월이란 긴 촬영기간 동안 시나리오도 없이 즉흥적인 각색을 통해 촬영된 이 영화는 디지털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음이 확실하다.

또한 라브 디아즈 감독의 미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 긴 런닝 타임은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멜랑콜리아>의 시점 샷 몇 개를 제외한 영화의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관찰자 시점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우선 화면이 고정된 상태에서 인물이 프레임으로 들어오기 전까지의 장면과 인물이 프레임을 빠져 나간 후의 장면을 보통의 영화보다 무척이나 길게 오래 지속시킨다. 또한 인물이 프레임에 나타나 사라지기 전까지 혹은 프레임 안의 인물이 행동을 시작하여 행동이 끝 날 때까지 영화는 결코 단 한 차례의 장면 전환을 시도하지 않는다. 지독하다 말한 만큼 영화는 꾸준히 롱 테이크를 유지해 나간다. 하지만 이것은 타르코프스키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유려한 카메라 워크를 뽐내며, 인물을 추적하는 그것과는 다르게, 라브 디아즈 감독은 고정된 장면에서 우선 화면의 구도를 추구하고 그 안에서 인물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가에 대하여 연구한다. 흡사 인궘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일가족이 화면에서 사라 질 때까지 ‘진도 아리랑’을 부르던 그 시퀀스를 연속으로 8시간 동안 관람하는 것과 같다. 이런 쇼트의 특징은 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엄청나게 증가시킬 수 밖 에 없게 만든다.

영화의 몽타주 효과는 영화의 쇼트 길이를 점차로 더 짧게 분절시켜 놓았다. 화면 오른쪽에서 등장한 인물이 화면의 왼쪽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이 인물의 이동을 끝까지 주시할 필요는 없다. 출발 장면을 찍고, 이동하는 인물의 이동 장면을 이어 붙이고, 도착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넣으면, 관객은 그렇게 믿게 된다. 더 간단하게 하려면, 인물이 이동하는 장면을 풀샷으로 잠깐 인서트 해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라브 디아즈 감독은 이를 고집스럽게 처음부터 끝까지 체워 넣는다. 한 쇼트 한 쇼트에 절대 응축의 화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쇼트에는 인물이 등장하기 이전의 배경이 필수적으로 존재하고, 인물이 프레임에 사라진 후에도 사라진 인물의 체취가 느껴지는 공간의 모습이 여전히 남는다. 편집의 힘으로 이를 간단하게 표현하려 노력하는게 아니라. 모든 표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공을 기울인다. 또한 이러한 쇼트의 여유는 심지어 시적인 운율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누가 그랬던가.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라고.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세 번째 파트이다. (긴 런닝타임으로 두 번의 인터미션을 가졌고, 이 글에서는 필자 임의 대로 이 영화의 인터미션 사이의 영상을 각각 1,2,3부로 나누겠다. 그렇다고 이를 필자 마음대로 나눈다는 것은 아니다. 인터미션은 감독의 의도에 의하여 나뉘어졌고, 각기의 부분은 과거, 현재, 과거 이전의 과거라는 시제로 독립적으로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혁명을 기도하다 이가 실패하자 정글에 잠입하여 위태로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실패한 혁명 전사들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긴 롱테이크는 이 부분에서 진가를 들어낸다.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적에 대한 공포는 고정된 화면 프레임이 그 공포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등장인물의 불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묘사하는 장면은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 중에서 최고라 말 할 수 있는 장면은 일체의 조명도 사용하지 않은 체 정글 안에서 삶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대로 영화에 담은 감독의 과감함이다. 화면은 심하게 어두워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음향과 간간이 번쩍이는 극소량의 빛이 선사하는 감추어질 수 없는 감정이 퍼져 나오면서 우리를 정말이지 극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장장 8시간에 이르는 라브 디아즈의 <멜랑콜리아>의 줄거리를 여기서 모두 설명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애초에 이 영화의 첫 번째 파트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2시간여의 줄거리를 모두 전복시켜 버린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 쇼트 한 쇼트가 가지고 있는 미학적인 가치와 이 모든 쇼트들이 모여 만드는 영화의 강렬함일 것이다. <멜랑콜리아>는 전적으로 슬픔이란 감정에 귀착하여, 모든 이야기의 원인을 지목한다. 모든 예술은 사람들의 슬픔에서 기인한다고 말하며, 영화는 사람들이 가진 슬픔이란 정서가 무엇이며, 그것이 가진 힘에 의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하여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멜랑콜리아>는 대작이다. 단순히 러닝 타임의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는 슬픔에 관한 실존적인 질문에 대한 상당히 성실한 대답인 동시에 필리핀의 현대사를 영화사를 통하여 조망하는 문제의식 또한 뛰어난 이 시대 거장의 대작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8,893
  • 0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