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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이명세 감독의 [M]이 공개되었다. 예상대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형국이고 의외로 비판의 칼을 든 평자들이 많은 듯한데, 비판과 호평의 간극이 워낙 크다보니 관객입장에서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적지 않은 곤란을 겪는 듯하다. 그런데 특정 영화에 대하여 비판과 상찬이 동시에 벌어질 때면, 대게의 경우 비판 쪽이 우세승을 거두기 마련이다. 웬만큼 명쾌한 논증을 펼치지 않은 한, 작심하고 비판하는 쪽을 이기기에 어렵기도 하거니와 칭찬보다는 비판의 잣대가 더 엄격하고 자극적이며 현란한 언술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M]을 둘러싼 많은 논쟁 글을 보면, 대체로 전통적 영화의 재현방식과 서사에 대한 논의가 대종을 이루고 있음에도, 호불호에 대한 명확한 논증이 뒷받침 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주로 이야기가 약하다거나 비주얼로 허술한 이야기를 가리려했다 것이 논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첫사랑’에 관한 그림을 그린다고 할 때, 피카소처럼 그로테스크하게 그릴 수 도 있고, 장욱진처럼 점묘화법의 동화적 분위기를 낼 수 있으며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 유의 추상적 이미지로 채울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것이 더 사실에 가깝게 묘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첫사랑’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기는 한 것일까?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명세의 근작들은 오히려 19세기 영국화가 윌리엄 터너 William Turner의 빛과 색채의 마술에 가깝다. 터너는 일찍이 "내가 눈보라를 그린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하게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장면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라는 말을 미술학도들에게 남겼다.

이명세는 [M]에서 ‘첫사랑’의 느낌을 담아내는 데 주력했고, 영화근본주의자라고 기꺼이 천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명세가 비주얼에 목을 매건, 빛과 소리에 천착하건 엄밀히 말하자면 관객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또한 감독이 영화에 따라 비판의 대상이 되듯이 비평하는 이들 역시 자신의 글로 평가받아야 한다면, 이야기가 없다거나 내러티브가 단조롭다거나 하는 식의 단편적 서술을 비평도구로 사용해서는 곤란하다. 이는 비평가 자신의 비평적 자산이 빈곤하다는 것을 드러낼 따름이다. 구체적이면서 확실한 논거를 제시해야 하고, 전통적 서사에 대한 이해가 있은 후에 영화비판의 도구로 사용할 때 비판은 설득력을 가지게 되고, 누구라도 귀 기울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초기 영화에는 영화적 이야기라는 것이 애초에 있지 않았다. 최초로 영화가 상영되었던 1895년 12월 28일로 돌아가 보면, 뤼미에르 Lumiere 는 그저 ‘시오타 역에 기차가 도착하고’ ‘공장 노동자들이 돌아가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을 찍었을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이야기도 들어있지 않다. 일상적인 장면을 재현한 것 외에는. 그것은 멜리에스 Georges Melies 가 우연한 순간에 발견한 몽타주를 파악하지 못한 채 마술공연에 사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하자면, 재현된 영상이 이야기를 가지지 않았으므로 감독의 연출이 무의미했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발생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달려오는 기차를 피해 허겁지겁 지하 카페를 빠져나가야 했다. 영화적 재현과는 달리 관객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가 보이고-나를 향해 돌진할지 모르며-위험한 상황이니-나는 피해야한다)

이렇게 초기 영화는 이야기의 발생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의 완성은 관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즉,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였으나 그 자체에 이야기를 품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명세가 스스로 근본주의자라고 했던 근간에는 초기영화가 보여준 이야기의 자연발생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때문인지 몰라도 [M]에는 운동-이미지가 부재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물들의 행동이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데, 오히려 이명세는 시간-이미지의 개념을 빌려와 시공간을 해체하고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자신의 영화가 예술임을 증명하려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비평가는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모순, 그러니까 고전영화의 ‘이야기 없음’과 현대영화의 특징인 ‘시간-이미지’의 이종교배가 뒤엉킴으로 인해 발생하는 관객과의 거리감 또는 이질감을 짚어내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있다. 결국 [엠]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비주얼에 집중한 안일한 연출기법을 문제 삼기보다는 감독이 영화를 인지하는 관념자체를 파헤침으로써 보다 본질적 문제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믿는다.

[M]은 빛과 어둠의 공간을 지배하고 분할하는 전지자로서의 이명세의 역할이 확연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의 교차로에 서성거리는 민우와 미미를 만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필자는 다른 공간과 확연히 비교되며 몇 차례나 등장하는 일식집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혹자는 일식집 시퀀스가 일종의 맥거핀이 아니냐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민우 일행이 언제나 ‘다금바리’를 주문했던 이 공간에서 [형사 Duelist](2005)가 보여준 농염한 화려함이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투박한 낭만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과 돈과 결혼과 집 같은 일상적 화제가 쉼 없이 부상하는 가운데 민우의 현재상태가 드러날 뿐이다.(이명세는 지독하게도 이 장면에서 조차 목소리를 왜곡시키며 현실감각을 마비시키려 한다)

민우의 아파트와 ‘뤼팡’ bar와는 달리 평범한 조명에 단출한 장식이 전부이면서 오로지 일상적 대화가 오가는 장소인 일식집은, 잡지사 편집장과 은혜 아버지 등을 번갈아 만나 같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동안에도 외적 변화가 없다. 결국 일식집은 민우의 혼란스런 현재를 반영하는 도구이며 시공간이 멈춰버린 현실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엄습해오는 옛사랑의 그림자. 추억. 공포들. 그러므로 이야기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유발시킬 수 있었으며, 단지 잠재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이렇게 영화의 가장 많은 소재로 쓰였던 사랑과 죽음, 에로스와 타나토스, 현실과 꿈이 변주되는 동안 이명세는 가장 보편성에 기댄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려가며 끝없이 빛과 어둠을 관객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관객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떠올려가며 ‘첫사랑’을 완결시켜보라는 듯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가 일부 혹은 다수의 관객에게 불편함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자의식의 과잉이요 비주얼에 목맨 자기도취 필름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주장들이다.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M]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일까? (다수 관객은) 이야기 발생 가능성조차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무조건 관객의 무지함으로 몰아세울 일 만은 아니다.

빛과 어둠의 조화로움이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과 만나 황홀한 미장센을 만들어낼지라도, 정말로 그! 첫사랑이 애초부터 가공된 것이라면 우리는 이 현실을(아니면 환상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서 현실과 맞닿은 장소로써의 일식집을 이야기 했지만, 우리의 현실과 영화 속 세계의 괴리감은 차지하고라도 영화 안에서조차 고의적으로 현실이 왜곡되는 것은 우려할 수준이라 여겨진다.

이명세의 근작들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경향들, 이를테면 실재와 가공, 현실과 꿈의 경계를 해체함으로써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방법으로써의 매혹적 영상을 선택한 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다만, 영화관을 나와서도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해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관객이 적지 않다면 그것은 명백히 감독의 책임인 것이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를 오랫동안 좋아했던 이들에게 [M]은 현기증을 유발하는 영화임에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세는 영화근본주의자로서의 행보를 더욱 공고히 가속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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