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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시간에 관한 짧은 기억

필진 리뷰 2009. 10. 17. 22:08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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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중


금요일, 하루 업무를 마치고 KTX를 타고 부랴부랴 부산엘 내려갔다. 부산에 내려서는 이미 한 밤중이었다. 부산역에는 기념 삼아 사진 촬영을 하는, 아마도 부산 국제 영화제를 보기 위해 내려온 듯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로 이동했다. 서울의 지하철 보다 조금 폭이 좁은 편이라 자리에 앉으면 건너편의 사람의 무릎이 닿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해운대 바닷가를 서성이다가 숙소로 들어갔다.

이번 부산 국제 영화제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딱 한 작품 때문이었다. 바로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를 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프레스 카드로 아침 일찍 티켓을 구해야하는데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이미 온라인으론 예매가 끝난 상황이고, 현장에도 얼마나 티켓이 남아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영화는 못 보아도 <카페 느와르> 만큼은 꼭 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내려왔지만, 볼 수 있을지 어떨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결론 부터 이야기하자면 ‘기어코’ <카페 느와르>를 볼 수 있었다.

이번 부산에서 본 영화는 순서대로, <경>, <낙원은 서쪽이다>, <카페 느와르>, <익사일> 이다. 뭐랄까 굉장히 불균질한 컬렉션인 것 같다. 사실 영화제를 여기저기 쫒아다니면서 영화를 챙겨 보는 성격은 아니다. 지금 꼭 보지 못하면 안된다. 이런 종류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 오히려 그것에 억눌린 기분 그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성격 탓인 것 같다. 그저 게으른 것일지도 모르고.

김 정 감독의 <경 Viewfinder>은 영화평론가인 김소영 교수의 장편 데뷔작이다. 집을 나간 (혹은 독립하기 위해 집을 떠난) 동생을 찾아 나서는 여자의 이야기를 축으로, 낡은 휴게소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보게되는 상징 같은 것들은 굉장히 직접적으로 드러난 채로 제시가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언니의 이름은 전경이고, 동생의 이름은 후경이다. 휴게소에서 전전하는 남자의 이름은 창(window)이다. 남자는 자신을 디지털 퇴마사, 또는 디지털 탐정으로 소개한다. 누구든, 무엇이든 인터넷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모든 영화는 탐정영화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장르로서의 탐정이 아닌 행동과 결과로서의 탐정영화 말이다. 거의 모든 영화의 내러티브는 상실로 시작되고 그 상실을 수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거나 그 수복의 결과를 제시한다. <경> 역시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나는 언니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사실 이러한 탐색의 과정은 이 영화의 맥거핀에 가깝다. <경>이 보여주려는 것은 언니가 기어코 동생을 찾아 내고 서로의 관계를 수복했다. 는 결론이 아니다. <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일종의 시간의 퇴적층 같은 것들이다. <경>에서 ‘중첩’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중요하다. 과거와 현재, 실재와 환영, 이 모든 것들이 남강이라는 오래되고 낡은 휴게소를 동심원처럼 떠도는 인물들을 통해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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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가브라스의 <낙원은 서쪽이다>는 로드무비 형식의 블랙 코미디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소재들을 다루어 왔던 노장 감독의 신작 치고는 어쩌면 말랑말랑한 영화일 수 있겠지만, 국내에 코스타 가브라스의 이름을 알려준 의 기묘한 유머를 생각한다면, 그다지 낯선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마치 채플린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영어는 못하고, 불어를 아주 조금 알고 있는 주인공은 대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을 걸지만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유머는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다.

이 영화에서 남들에게 통용되는 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적당한 옷을 입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 영화의 처음에 밀입국자들은 신분증을 모두 찢어서 바다에 버린다. 미래를 위해 지금의 자신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거나 지워버리는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파라다이스 리조트의 누드 비치로 떠밀려 살아난 엘리야스는 계속해서 옷을 갈아입음으로써 자신을 위장한다. 리조트 직원의 옷을 갈아입고 직원 행세를 하고, 그에게 호감을 느낀 여자가 사다준 옷을 입고 리조트의 손님행세를 한다. 목적지인 파리까지 가능동안 엘리야스가 갈아 입는 옷은 일종의 여권 Passport처럼 기능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옷은 그저 몸 위에 걸쳐질 뿐이다. 옷은 사람의 본질을 바꾸어주지는 못했다. 샹젤리제 거리에 선 엘리야스에게 마술은 이루어졌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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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느와르>는 개인적으로 작은, 그러나 충만한 위로 같은 영화였다. 이 영화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쓰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짧게 언급할 것이지만, 고다르의 <국외자들>의 카페 댄스 장면을 차용한 것이 분명한 정유미의 춤 장면 하나 때문이라도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의 쾌감이 마치 혈관에 천천히 차오르는 것 같은 정유미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를 기다렸던 시간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두기봉 감독의 <익사일>은 국내 개봉했을 때 너무 작은 상영관에서 거의 끝물에 봐서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였다. 이번 PIFF에서는 CGV 스타리움 관에서 상영하다고 해서 보았는데, 결과적으론 그다지 만족 스럽지 못했다. 화면 크기만 키우고 정작 영사기의 세팅은 제대로 되지 않아서 화면 밝기가 고르지 않았다. 사실 그런 얼룩 같은 느낌이 묘하게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닮은 이 영화의 분위기에 약간의 플러스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만 놓고 보자면 두 번 세 번 지치지 않고 다시 볼 수 있을 정도로 역시! 였다.

두기봉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총을 마치 칼처럼 사용한다. 오우삼이 춤을 추듯 총격을 묘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이퀄리브리엄>의 건카타 처럼 요란한 액션은 아니다. 인물들은 마치 총알을 ‘찔러넣듯’ 발사하는데,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액션은 특히 <익사일>처럼 어두운 공간이 많이 나오는 영화에서는 누가 누구를 겨냥하고 맞추었는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마지막 호텔에서의 총격전에서 인물들은 거대한 하나의 절멸을 향해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 대사로 미루어 보건데, 홍콩 반환 이전의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익사일>은 그저 철지난 소재를 끌어들인 회고조의 영화라기 보다는, 이미 홍콩 반환 이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어디선가 잠자고 있다가 발견 된 것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생생하게 말이다.

위에도 적었지만 이번 PIFF에 참석 했던 이유는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 단 한 작품 때문이었다. 분명히 상영시간과 대중적인 부분 때문에 개봉은 불확실한 부분이고, 그렇다고 해서 영화제나 특별전 형식으로는 언제 볼 수 있을지 어려운 상황이었고, 물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볼 수 있었겠지만, 정말 따끈따끈한 그 대로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영화를 봤다. 뭐 이런식의 등수놀이는 거의 무의미 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질 않았다.

2001년인가 2002년인가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의 <사무라이 픽션>이 PIFF에서 공개 되었을 때, 그것도 출장 길에 시간이 남아 본 것 빼고는 이번이 정식으로 참가한 것은 처음이다. 그저 시간이 맞아 <사무라이 픽션>을 보고선 턱이빠져 달아날 정도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PIFF에는 막상 내려가 정말 ‘별처럼 많은’ 영화목록들을 보니 그 예전에 교보문고를 처음 찾았던 중학생 꼬마의 설레임이 다시 살아났다. 밥벌이의 압박만 아니라면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영화제를 즐기고 싶었다. 영화라는 것이 시간 속에서의 작은 탈주라고 한다면, 영화제는 그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탈주행위다. 그러고보니 이번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탈주’라는 주제로 엮어 볼 수 있을 법한 영화들이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그러한 공간과 시간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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