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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5 [그랜 토리노] 거장, 멀티플렉스에 강림하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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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집근처 위치한 롯데시네마에서 <그랜 토리노>를 보던 지난 일요일의 일이다. 관객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 번째로 큰 상영관의 70%이상 들어찬 관객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는 이름값이 무색할 정도로 국내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체인질링>이 그랬고 <아버지의 깃발>도 마찬가지였으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아예 개봉조차 되지 않았으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러온 젊은 관객이 이토록 많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물론 영화가 그러했지만)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은 즐거워 웃고 뒤집어졌다는 점이다. 몇 장면에서 키득거리는 것에 그친 나와는 달리 분명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그들. 아마도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내 옆자리의 앉았던 커플은 나를 ‘월터 코왈스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웃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코왈스키의 모습에서 오래전 작고하신 내 아버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실향민이었던 내 아버지 역시 극우의 보수주의자였고 전쟁으로 고향을 등진 탓인지 몰라도 소위 빨갱이라면 치를 떨었으며 타인의 이유 없는 친절을 경계하면서 극도로 축소된 공간 안에서 평생을 머무르셨다. 그에 반해 극장을 찾은 젊은 커플들의 아버지는 아마도 코왈스키보다는 한참 젊은 세대일 것이고 때문에 그의 고약하고 위험천만한 행동이 단순히 우스꽝스럽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가시질 않았다. 대체 이 많은 관객은 뭐고 이들이 합심해서 영화에 몰입하고 정서적으로 동참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홍보를 많이 했던가? 아니면 입소문이 났나. 이도저도 아니면 평단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일까? 정작 놀라운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거의 대부분의 관객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인데, 1972년형 그랜 토리노가 해변도로에서 멀어질 때 즈음 이미 불이 켜졌는데도 그러했다. 그날의 관객을 무시하거나 폄훼할 의도는 없지만 정말로 이건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멀티플렉스에서 이런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니.

후배평론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했다고 말했다. 코왈스키에게서 영기(靈氣)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평생을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다 생의 마지막 날에서야 고해성사를 한 국수주의자의 주검은 스스로를 못 박아 인류를 대속한 예수처럼 온전히 십자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한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온 몽족과 그 옛날 유럽에서 건너온 코왈스키의 선조가 겪었던 처지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두 후손의 화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장면 하나 없이도 허허실실 감정의 파동을 쥐락펴락해대니 어느 관객이라고 매료되지 않을 것인가. 과연 몽족의 거처가 되어버린 도시에 남아 팍스아메리카나의 보안관을 자청한 코왈스키의 처연하지만 감동적인 최후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의 고해성사로 치환되는 순간, 젊은 시절 허리춤에서 신속하게 뽑아들던 총을 버리고 자신의 피로 일그러진 아메리카의 초상을 지우려는 노거장의 진심이 관객에게 전달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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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드몽단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봉 이틀째 날에 보았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생애와 사상이 정리된 느낌이었습니다. 손으로 총을 쏘는 흉내내는 장면에서 옛날 마카로니 서부영화의 주인공 장고의 모습이 머리속에 오버랩되더군요.

    2009.03.25 18:44
    • 100살하고도10년더  수정/삭제

      마카로니 웨스턴 '장고'의 주인공은 프랑코 네로 라는 이태리 배우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무법자 3부작에서 한 번도 장고 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 영화 '장고'에서 프랑코 네로가 손가락 총을 쏘는 장면이 있었나요? 그렇지 않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에서 왜 장고가 오버랩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래는 무법자 3부작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배역

      황야의 무법자- 죠
      석양의 건맨- 몽코
      석양의 무법자(극장명:석양에 돌아오다)- 블론디

      2009.03.31 14:40
  2. Favicon of https://freesopher.tistory.com BlogIcon freesopher™  수정/삭제  댓글쓰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죽음을 감지했다, 는 말이 인상깊게 남는 평이었습니다. 저도 <그랜토리노>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트랙백으로 걸어둡니다 :) 잘 읽었습니다.

    2009.03.25 20: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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