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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1 철중이와 쇠고기 (1)
  2. 2008.06.30 정재영의 얼굴, [강철중]에서 얻은 유일한 소득

철중이와 쇠고기

필진 리뷰 2008.07.01 13:34 Posted by woodyh98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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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 공공의 적 1-1>에 대한 단상


“형이 돈이 없다고 해서 패고, 말 안 듣는다고 해서 패고, 어떤 새끼는 얼굴이 기분이 나뻐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애들이 4열 종대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오늘 형이 피곤하거든? 좋은 기회잖냐, 그러니 얼른 죄송하다고 해라.”

참 오래도 간다. 참 질기기도 하다. 강우석의 <공공의 적> 시리즈는 허물을 훌훌 벗어가며 많은 세월을 내달렸다. 처음 나타난 강철중은 4열 종대 운운하며 의자에 묶인 발바리 산수를 쥐어 패기 바빴다. 그런 철중은 시간이 흘러 강력계 검사가 되고, ‘천벌 받아 마땅한 놈’을 빌미로 우렁찬 선전포고를 하던 등장과는 달리 양복 좀 빼입고 동창을 처단하기 위해 폭력과 대화를 반복 사용한다. 걸출한 입담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으면 조금 평범한 경찰 이야기로 돌변했을 <공공의 적> 시리즈는 그렇게 ‘인간 강철중’을 키워나가는, 일종의 성장 드라마였다.

설렁탕 국물 마시듯 호쾌하게 욕설을 일삼던 강철중의 얼굴에는 이제 주름이 깊게 잡혔다. 나온 배의 둘레만큼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딸아이 ‘미미’도 그의 곁을 지킨다. 철중이 오래 전에 소탕해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반가운 캐릭터 산수와 용만(의 꽃무늬 흰 수트)이도 더 이상 철중이 쫓아야 할 상대가 아니다. <공공의 적 1-1>로 다시 스크린에 복귀한 형사 강철중은 세월의 흐름을 탄다. 물론 그동안 수차례 사표에 4표를 거듭해 제출하고, 불같은 성질과 말보다 앞서는 주먹은 여전하다.

<공공의 적 1-1:강철중>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꼴통 불도저 강형사’ 연작의 결정체이다. 다시 말해, <강철중>은 전작들에서 유별나게 독특한 위치를 고수했던 캐릭터들의 집대성이라는 것이다. 강철중은 얼굴 한가득 자글자글한 주름을 안고, 왕년에 머리를 수 백 대씩 때려가며 감방에 집어넣던 범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술잔을 기울인다. 자신보다 몇 십 배의 월급으로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전과자에게 전세금을 어떻게 좀 빌려볼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운다. 물론, 뜻대로 말이 나오진 않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강철중은 ‘조금’ 변했다. 그는 세월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강철중>의 캐릭터,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악역을 맡은 ‘코뿔소’ 이원술의 캐릭터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외면상으로는 절대선과 절대악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립은 지난 <공공의 적>에서 보지 못했던 권력과 중점의 이동을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레 강철중이라는 캐릭터를 약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강철중이 맡았던 ‘작품들’의 인간성은 대개 부정사실을 은폐하거나 그것을 밝혀내려는 사람들을 죽였고, 또한 원론적인 범죄를 택했다. 하지만 좀 더 서글서글해진 강철중의 세 번째 맞수는 자신의 뿌리를 인정하고 태생을 숨기려 하지 않는, 악하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재밌는 것은 이원술을 벌하기 위해 강철중이 복선을 깔아 넣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남의 집에서 무전취식하는 철중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이기에 별반 흥미를 유발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 알고 동료가 알았던 강철중의 뒤가 구린 형사생활은, 수사에 착수하는 동시에 간헐적으로 밝혀진다. 상황에 관계없이 밥을 쑤셔 넣으며 입가에 ‘썩소’를 띄는 비굴한 한 형사의 모습이, 자신의 모든 행실을 인정하는 이원술의 얼굴 위에 오버랩 된다.


<공공의 적> 시리즈에는 늘 어김없이 등장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전과자, 혹은 범죄자들의 최고 ‘로망’, 설렁탕. 설렁탕에 듬뿍 얹어진 고기와 깍두기는, 강철중도 먹었고 강철중이 노리는 범죄자의 심복들도 먹었으며, 사건과 상관없는 감초들도 몇 그릇씩 해치우셨던 아이템이다. 강철중의 캐릭터와 유난히도 맞아 떨어지는 설렁탕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조금 더 진득하게, 조금 더 푸짐하게 말이다. 하지만 철중은 설렁탕을 후룩거리는 철창 안의 죄수들을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는 경찰서에서 설렁탕을 먹는 대신 대궐 같은 고깃집에서 5만원을 넘는 ‘최고급 한우’를 통째로 숯불 위에 구워삶는다.

<공공의 적1-1>에서 강철중이 먹어 치우는 소고기의 양은, <공공의 적> 1편과 2편을 통틀어 최고인 셈이다. 그는 직접 저울까지 준비해 무게를 재가며 고기를 우적우적 씹는다. 그다지 질겨 보이지 않는, 그렇다고 다른 고기들과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철중의 ‘한우’그릇. 까맣게 탄내가 올라오는 철판 사이로, 철중은 고기를 굽고 또 굽는다. 꽉꽉 눌러가며, 그 많은 양을 입 속에 털어 넣는다. 그것도 모자라 철중은 지속적으로 고깃집에 들린다. 그가 시키는 고기는 언제나 처럼 한우다. 물론, 이원술의 꼬리를 잡아내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강철중은 고기에 고기를 더해 배를 채운다. 겉과 속이 바짝 익어가는 소고기의 연기 속에 그는 조용하게 중얼거린다. 철중이 내뱉는 단어를 확실하게 포착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 시끄러운 소음 속에 적어도 이 단어 하나만은 온전하게 귀를 덮으리라. ‘광우병’.

<공공의 적> 시리즈와 설경구라는 배우의 이름은 이제 그만 열거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이것은 <공공의 적>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될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장진과 강우석은 이원술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 기존의 강철중을 어느 정도 깎아내리며 오락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장진의 페르소나가 이원술로 대변되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공공의 적 1-1>은 지금까지 줄곧 보아왔던 강철중 시리즈 중에 가장 유쾌하고 아이러니한 경찰청 이야기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이원술과 강철중, 그리고 기타 감초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의 이야기보다 철중이 먹는 쇠고기의 행적에 치중해 영화를 바라보고 싶다. 정확하게 무게를 재고도 못미더운 표정으로 소고기를 털어 넣는 철중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과연 반가운 일일까.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어느 날 갑자기’ 소고기가 미치도록 당긴다면 2008년 6월 개봉작 <공공의 적1-1: 강철중>을 찾아 돌려보면 답이 나올 지도 모르겠다. 물론, 각자의 사연, 각개전투식 결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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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rephonwook.tistory.com BlogIcon 평범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제가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잘 모르겠어요. 인터넷을 둘러봐도 잘 이해가 안가고.. 혹시 쉽게 설명되어 있는 책이나 글 아시면 추천 좀...;;;

    2008.07.01 16:00 신고

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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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구원투수를 자임한 충무로의 승부사 강우석 감독이 <강철중: 공공의 적 1-1>을 들고 다시 강호로 나왔다. 지난 2006년 <한반도>로 비평적 실패를 맛본 후 와신상담해온, "한국영화 침체와 거품의 책임이 시네마서비스에 있다"며 자신이 세운 회사에 칼끝을 겨냥했을 정도로 비장한 출사표를 던진 그였다. 그로부터 1주일, 실로 오랜 만에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를 점유했다는 뉴스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이 있었음에도 흥행과 작품성을 동일시해온 일부영화인들의 아전인수식 논리에 반감을 가졌던 터라, 또 관객 수로 영화를 평가하려는 언론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터라 나까지 나서서 호들갑 떨 이유는 없겠으나 소위 '봐 줘야 할' 영화목록에 <강철중>이 있었음은 인정해야겠다. 요컨대 <강철중>은 단 한 가지 이유로 필자를 만족시켰으니, 다름 아닌 정재영과 그가 연기하는 이원술이라는 인물이 그것이다.

집단적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경험과 절묘하게 조우시키는 것에서 강우석의 장기는 십분 발휘되곤 했다. <투캅스>에서 <공공의 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던 반면 <공공의 적>의 속편 격인 <강철중>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의 제목만 놓고 본다면 주인공은 꼴통형사 강철중이어야 하고, 실제로도 강철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강철중과 대극에 놓인 이원술이라는 캐릭터이다. 그러니까 정재영이 연기하는 새로운 공공의 적 이원술은 주인공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품어내며 스스로 외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인데, 이를테면 대극의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가 충동하는 영화에서 악당의 역할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공식에 지나치게 충실함으로써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장르영화들의 경우와는 달리, 이원술은 강철중과 경찰이라는 견제세력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캐릭터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예로 <범죄의 재구성>에서 천호진이 연기한 '차 반장'과 <씬 시티>에서 미키 루크가 분한 거리의 파이터 '마브' 등이 외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로 꼽히지만 이 분야의 최고는 단연 <배트맨>의 '조커'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필자는 (강우석이 의도했건 안 했건) 주인공 강철중과는 별개로 이원술이라는 캐릭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연기한 정재영 또한 재삼 언급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영화에서 이원술에 대해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자신의 입으로 부르짖는 내면화된 그의 본질이다. "나는 칼질하는 깡패인데 세상은 나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며 보란 듯이 사자후를 토해내는 그의 모습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이때 본질을 숨긴 채 가공된 현실 위를 활보하는 이원술을 악마의 현신으로 탈바꿈시키는 영화적 장치는 의도적인 클로즈업과 독특한 화법이다. 즉 강철중과는 달리 (영화 포스터에도 나와 있듯이) 이원술의 지나치게 매끄러운 턱은 가까이서 보기 불편할 정도로 관객을 압도하고 있는데, 이는 거친 내면과 본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장치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기 위한 강박적 위장술이라 하겠다. 이처럼 이원술의 내면이 정재영의 얼굴을 빌려 완벽하게 재현될 때, 대극에 있는 강철중의 추레한 현실은 극대화되고 이것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이원술은 강철중의 존재 이유이자 기원(起源)인 셈이다. 무성영화의 스타들이 그랬듯이 배우가 얼굴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음을 기억한다면 <강철중>의 정재영 또한 이에 뒤지지 않은 얼굴 하나로 이원술을 연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쉽게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자 정재영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재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또한 이원술은 신경질적인 얼굴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독특한 화법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예측불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어눌한 듯 무식한 듯 그러나 핵심만 잘라서 던지듯 내뱉는 정재영의 말투는 법보다 주먹, 말보다 칼이 앞서는 이원술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문성근과의 독대와 경찰서로 찾아가 강신일 앞에서 뿜어내던 살기는 필자로 하여금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 긴장감을 촉발시킬 정도였다.

장진 감독의 페르소나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 일찌감치 인정받아온 정재영이지만 <거룩한 계보>와 <마이캡틴 김대출> <나의 결혼원정기> 등 그가 근작에서 맡은 캐릭터들은 다분히 인간적이고 세상사에 서툰, 악마적 이중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때문인지 <킬러들의 수다>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정재영을 기억해볼 때 이제는 한 번쯤 냉혹한 인물을 연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차에 만난 이원술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강철중>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정재영의 연기만 놓고 본다면 이렇듯 생생하고 소름끼치는 그럼에도 악인으로 단정 짓기 힘든 캐릭터를 연출해낸 강우석의 능력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공공의 적>이 '강철중'이란 안티히어로를 탄생시켰다면 <강철중>은 오히려 '이원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쨌거나 틀에 박힌 설경구의 연기에 식상해질 즈음 찾아온 정재영이 세공해낸 이원술은 내가 <강철중>에서 얻은 유일한 소득이다.


(추신) 적지 않은 매체들이 강철중을 일컬어 '서민형 캐릭터'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물론 마케팅사의 보도 자료에 의거했거나 기자의 판단에 따라 기술되었을 테고, 후줄근한 옷과 덥수룩한 외모에 중산층과는 먼 경찰이란 직업을 감안하자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표현이기는 하다. 그러나 강철중이 전세방에 살고 전세보증금이 궁하다는 것만으로 서민형 캐릭터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이것은 신흥기업 회장 이원술과의 대구를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보여 지는데, 강철중 스스로가 실토했듯이 "뇌물도 받고 삥땅도 좀 친" 게다가 1편에서는 마약까지 빼돌린 부패한 경찰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서민'이라는 표현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다. 유사한 예로 '시골총각은 순박하고 어눌하며 건실하다'라던가 '장애인은 순수하고 착하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도식화된 평가와 편견이 빚어낸 섣부른 단정은 비평적 사고에 장애가 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유의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잣대는 시선의 확장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감독의 의도마저 오인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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