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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곽경택 안권태 공동연출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하 <눈눈이이>)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한석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닥터 봉>에서 <텔 미 썸딩>까지 영화데뷔이후 9연타석 홈런을 날렸음에도 <이중간첩>으로 명성에 상처를 입고는, 와신상담하며 찍은 영화들에서조차 별 재미를 못 본 그의 연기 인생이 <눈눈이이>를 통해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관심사였다는 얘기다. 영화를 보기 전 평을 읽지 않는 습관임에도 <눈눈이이>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몇몇 매체와 관객리뷰를 읽어보고는 극장으로 향했다. 한석규의 연기를 칭찬하는 다수의 리뷰가 있었고 몇몇 매체에서는 작품 평가와는 별개로 배우들의 호연에 주목하고 있었다. 물론 한석규와 차승원의 연기도 좋았고, (아! 정말) 송영창의 연기는 발군이었다. 하지만 한석규는 ‘좋았다’라는 수사로 끝나서는 안 되는 배우이다. 어쩌면 <눈눈이이>를 본 후 허탈한 감정이 앞섰던 것도 그의 연기가 ‘단순히 좋은’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니 이 글의 시작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다.

<눈눈이이>에서 한석규가 연기하는 ‘백성찬’은 회색 머리에 은빛 트렌치코트와 틈날 때마다 질겅질겅 씹어대는 껌이 말해주듯이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인 인물이다. 이전 영화에서 한석규가 연기했던 유사 캐릭터, 즉 <쉬리>의 유중원이나 <텔미 썸딩>의 조 형사와 비교할 때 백성찬은 판이하게 다른데, 마치 잘 아는 사람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을 때의 낯선 느낌이랄까? 거칠게 말하자면 한석규의 연기력을 논하기엔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빈약했고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지울 수는 없을 일이지만) 영화가 혹은 곽경택이 한석규의 이름값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범죄수사물에서 주인공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요컨대 내러티브를 견인하는 동시에 현장을 지배하고 정리하는 강력한 이미지로 어필함으로써 캐릭터를 극대화시키며 영화의 긴장감과 흥미로움을 배가시키는 것일 테다. 이를테면 차승원이 연기하는 범죄자 ‘안현민’과 수사반장 백성찬은 대극에 놓여있는데, 경쟁자이면서 파트너일 수 있고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는 동시에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범죄세계에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니 최고의 범죄자가 베테랑 형사를 몰라 볼 리 없다. 각자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정상에 오른 만큼 자존심도 강해서 조무래기들과 노닥거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고수는 고수의 눈에만 띄고 잡히거나 혹은 패배하더라도 그 대상은 반대편의 다른 고수여야 한다는 것이 범죄수사물의 특징이자 그 세계의 생리라는 말이다. 이처럼 상위 인물들의 대결구도는 영화의 잔재미와 긴장감을 촉발함으로써 범죄영화를 필수구성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할리우드 영화의 예를 보자면, 마이클 만의 <히트>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하는 민완형사반장 ‘빈센트 한나’와 로버트 드니로가 분한 범죄자 ‘닐 맥컬리’의 관계망이 유사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죽도록 잡고 싶은’ 대상을 쫓아다니는 동안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 과정에서 분노가 연민으로 뒤바뀌면서 헛웃음을 칠 수밖에 없는 것, 혹은 <넘버 3>에서 태주가 마동팔 검사를 살려준 것도 다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현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면서도 현장 이외의 장소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갈등이나 고독 같은 하위 질료들을 적절히 결합시킨 것이 한석규의 이전 캐릭터들이었다면, <눈눈이이>의 백성찬은 사무실에 앉아 지휘자로서의 역할에만 머물면서 단선적 내러티브에 무임승차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눈눈이이>에서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은, ‘섬세하면서도 투박한 한석규의 아우라가 어떤 방식으로 상대배우를 경쟁과 조력의 관계망 속으로 포섭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영화는 다른 차원의 캐릭터를 만들고 있었다. 즉 차승원이 범죄기획과 현장 지휘는 물론 직접 행동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건을 만들어가는 반면, 한석규는 부하에게 현장을 일임한 채 머리로 밑그림을 그리는 일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물론 캐릭터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니 감독의 의도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주지할 것은 한석규의 명성을 만들어주었던 과거의 캐릭터들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의 캐릭터가 각기 다른 세계를 넘나들면서 영화를 만들어갔다는 말이다.

한석규의 이미지는, 강한 카리스마로 영화전반을 압도하는 최민식이나 거칠고 어눌하지만 뚝심 있는 송강호, 잡초 같은 끈질김과 능청스러움을 겸비한 설경구의 이미지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왔다. 다른 이들이 연극무대를 통해 스케일과 액션이 큰 연기와 풍부한 성량 전달에 익숙한 것과는 달리, 성우와 TV드라마 출신의 한석규는 특유의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에 섬세한 연기를 보여 왔다. 뒷골목 인생이지만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했고 조직과 출세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아내와 가정을 소중히 여겼으며, 사랑과 이념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생의 마지막 직전 다가온 사랑 때문에 가슴아파하는 인물들. 결코 한 가지로 특징지어 설명할 수 없고 단순한 가정사와 과거지사로 논의할 수 없는 다층적인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한석규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남자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한석규는 90년대 한국영화 부동의 남자 주인공이었음에도, 권위와 힘이 느껴질 만한 캐릭터를 가진 적이 없었거니와 다른 배우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는 사실이다. 때론 강하고 거칠게 또 때론 순박한 인물을 연기해왔지만, 그 바닥에는 언제나 낭만주의자의 그림자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석규는 그런 배우였다. 어느 변두리 어스름한 가로등 아래 쭈그리고 앉아 연신 “씨팔 씨팔”을 내뱉으며 훔친 지갑을 뒤지다가도 귤 한 꾸러미 들고 누군가를 안심시키러 잰 걸음을 걷는 인물이 한석규였다는 말이다. 때문인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석규의 캐릭터는 <넘버 3>의 ‘태주’다. 어차피 삼류로 기억될 삶이지만 그 안에서나마 넘버 2가 되고자하는 인간의 욕망과 비루한 남성성을 여실히 까발리던 태주는, <초록물고기>의 막동에서 <구타유발자들>의 문재에 이르기까지 한석규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한데 넣고 버무려 만들어낸 인물이란 생각에서이다. 그런 그가 도무지 정돈되지 않는 인물을 뒤집어쓴 <눈눈이이>로 돌아왔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구타유발자>들에서 품었던 희망이 물거품이 될 지경이었다. 나는 한석규가 제 몸에 맞는 옷을 입기를 바란다. 그 자신과 그의 팬을 위해서 무엇보다 한국영화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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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헤르미온느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타유발자들.. 정말 인상깊은 영화내용과 배우들이었죠. 눈눈이이에 안토니오가 나와서 은근 구타..가 오버랩 됐다는 ㅎㅎ 그래도 저는 한석규가 다시 예전의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발견했답니다. 일단 백발 컨셉은 정말 굿 아이디어 인 것 같아요!

    2008.08.06 16:38
  2. gdw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석규 씨? 의 강점은 정확한 발음인거같아요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볼때 발음이 정확하지않은 연예인때문에 무슨 애기를 하는지 도저히 모를때도 있는데 성우출신(?) 이시라고 하니까 발음이 정확하니까 극의 흐름도 잘 따라가는거같고 음...머랄까 흡인력이있어요

    2008.08.06 22:25
  3. 마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어느 변두리 어스름한 가로등 아래 쭈그리고 앉아 연신 “씨팔 씨팔”을 내뱉으며 훔친 지갑을 뒤지다가도 귤 한 꾸러미 들고 누군가를 안심시키러 잰 걸음을 걷는 인물이 한석규였다... " 인상적인 표현이네요.
    어느 배우도 지니지 못한 인간미를 지녔던 배우....



    끄덕끄덕하면서 읽었어요 ^^
    눈눈이이는 정말 백반장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풀어갔으면
    제대로 흥미진진했을 겁니다. ㅠㅠ 처음에는 왠지 단선적이지 않고 다층적이었을
    캐릭터를 중간에 바꾼 듯한 느낌도 들고... 재촬영하면서 다층적에서 단선적으로
    바꿔버린 느낌이랄까요;

    (그럼에도 영화평에 가장 많은 말이 한석규씨에 대한
    연기 감탄사들이더군요... ^^;; 아마 이번에 극장에서 한석규의 연기를
    처음 본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 맞는 듯. 새로운 세대들.)



    배우 한석규...라고 하면 저도 정말 할말이 엄청 많아지는데...
    제가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의 이야기다.. 영화다.. 연기 잘한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봐오다가,

    영화가 아니라 저 영화 안의 배우는 진짜 어딘가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 동화되서 보기 시작한게
    한석규씨 영화를 보면서부터.........!! 그런 느낌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ㅠㅠ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석규란 배우 안에 동화되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90년대에 처음 접하는 순간부터 그가 출연하는 영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갈수록
    어마했다고 생각되요... 저처럼 느낀거겠죠, 다들 ^^



    3년이란 공백기간, 이중간첩의 실패 후 다른 메이져급 영화배우들과는 다른듯한
    행보를 보이시길래 좀 놀랍고 수시로 변화하는 것에 벅차고 그랬는데...
    또 역시나 색다른 재미를 주고 계신 느낌...
    한명의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성격과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신달까^^;;
    구타유발자들에서 의 모습은 정말.................!

    영화계가 스스로 판 무덤에 걸려 하나가 뜨면
    똑같은 모양새가 주구장창 찍어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한석규라는 배우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아 보여요.



    아마 그가 나온다면, 어떤 영화든지, 끝까지 믿을을 가지고 보게될 듯...
    개인적으로는 배우를 통해 영화를 보게 해준 최초의 배우 ^^
    그를 통해 봐왔던 세상, 보게되는 세상...은 아마 평생 기대하게 될듯 ^^



    잘 읽었습니다.^^

    2008.08.08 20:48
  4. 광화문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그렇지요..잘 읽었습니다

    머지않은 언젠가 황제의 자리를 탈환하시리라는 걸

    이번영화 보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답니다

    몸에 꼭 맞는 옷같은 그런 배역으로요..

    2008.08.11 18:11

한국영화, 여성 좀 그만 괴롭혀!

필진 리뷰 2007.11.05 00:38 Posted by woodyh98
  여성을 가학으로 몰아가는 남성 판타지


최근에 나는 많은 편수의 한국 영화를 보지 못했다. 아니, 못 본게 아니라 볼 영화가 없어서 안본 것이지만 최근에 본 <행복>과 <엠>은 정말 형편없었다. 이 영화들을 비판하는데에는 다른 어떠한 관련 지식이나 거창한 수식이 필요없이 그냥 영화적으로 비판하면 된다. 왜 자꾸 말도 안되는 영화들을 글로써 포장하려고 드나? 형편없는 영화를 말이 되게 하기 위해 그 사람은 자꾸만 거짓말을 하거나 말들을 지어낸다. 이것은 그 사람의 영화보기에도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비평가로써의 자격을 제대로 가추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안타까움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특히 이 두 영화가 불편했던 이유는 상업적, 형식적인 과장된 포장에 있어서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여성을 남성적 판타지의 영역 안에 봉인해 버림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정당화화려는 영화적 제스추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이 영화들에게서 적지 않은 실망과 당혹감을 받았다. 이것이 <행복>에서는 서사적으로, <엠>은 작가적 목적 자체가 결여된 것에서 비롯되는데 우선 <행복>에 짧은 첨언을 해보자. 나는 이미 이 영화에 대해 비교적 긴글을 썼으며, 그 안에 이 영화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는 모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진호가 서사를 진행시키는데 있어서 관객이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하도록 교묘히 짜놓은 간교의 기술에 대해 보다 핵심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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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을 보면서 가장 섬뜩했던 순간은 영수가 은희의 유골을 뿌리고 그들이 살던 시골집에서 영수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마치 속죄의 의미로 은희의 사진을 부여잡고 대성통곡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불편한 것은 그저 장면에서 드러나는 센티멘탈리즘이 아니라, 영수가 마지막 요양원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왜 그전에 그들이 살던 집을 거친 후에 비로소 요양원으로 들어가는가? 라는 점에 있다. 그때 영수 돌아온 그 집은 1년전 그가 떠나기 직전 상태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은희가 병원에 입원하기 바로 전까지에도 혼자 그 집에서 생활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 일으킨다. 다시 말해서 모두가 의아해 하는, 영수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 마치 단죄를 받듯이 철저하게 망가져가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불편한 게 아니라, 영수가 그러는 동안 생략된 은희의 서사는 마치 시골의 단둘이 행복했던 그 집을 죽기 직전 끝까지 영수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그 둘만의 공간을 홀로 지키고 있었을 거라는 잉여를 만들어 내는 순간, 영화가 굉장히 섬뜩해지는 동시에 역겨워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을 확인한 후에 비로소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영수를 보여주는 씬의 배치는, 남성의 판타지 안에 여성을 지나치게 도구화시켜버리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요양원에 돌아가는 영수의 모습으로 끝내버림으로써 판타지가 실제로 전이하기 이전에 그 세계 자체를 아예 완전히 봉인시켜버리는 굉장히 나쁜 결론을 만들어 낸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행복>은 올해 최악의 한국 영화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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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 <엠>은 애초부터 영화적 목적 자체가 결여된 영화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을 막을 생각이 없지만 이 영화를 보고 굉장하다, 영화란 매체에 입각한 영화다, 이명세는 대가이다. 라고 말할때 나는 속된 말로 식겁한다. 이것은 영화에 대한 취향이나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이다.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도 지적하였지만 <엠>을 비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너무 뻔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야기를 묻어버리는 이미지의 과잉, 이건 과잉이 아니라 과시한다. 라는 게 맞다.

어떻게 해서든 현란한 영상으로 영화를 채워 넣으려는 과욕, 그리고 그것을 흥이나듯 자랑하는 이명세를 바라보아야 하는 우리의 민망함, 그 민망함을 무마시키기 위해 한다는 얘기가 또 결국은 그 고색창연한 첫사랑에 대한 사연, 여기에는 <행복>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판타지를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반드시 여성의 죽음을 거쳐야만 한다는 일종의 가학이 존재하지만 <엠>은 그 보다 더 나아가 한국 남자들이 갖는 첫사랑에 대한 철저한 환상, 자기 연민을 유치함으로 오히려 드러내 놓고 보여줄 때 자신의 영화 안에서 이야기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스스로 창조해낸 그 세계가 실제적 세계라는 믿음을 관객에게 제시하지도 못하는 감독의 무능을 감추려는 안쓰러움이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꿈과 현실이 경계가 불분명하다라는 것은 정확한 논점이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이 영화 안의 세계 자체가 아무런 생기도 없는데 이런 논쟁이 가당키나 한가? 당신은 정말 <엠>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 세계 안에 살아있는 인물들이라고 느껴지는가? 또 그들의 삶이 실제라고 믿어지는가? 그냥 스타들의 육체만 가지고 와서 소리지르고 과장된 제스추어를 한다고 그것에 없던 감정이 생기나?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서 무엇하러 배우들을 데리고 와서 연기를 시키고, 또한 그들의 연기를 무엇때문에 우리는 보는가. 말 그대로 다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라는 세계 안에 몰입시키기 위해 이제껏 영화라는 매체가 만들어 낸 역사가 아닌가. 왜 이명세는 영화가 만들어 온 역사를 부정하려고 드는가. <엠>이 영화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나는 뭐라고 답해 줘야 하나. 나는 지금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두 영화는 영화 자체로도 나쁘지만 그것이 어떤 남성의 판타지를 작용시키고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해 여성을 도구화하고 영화적으로 과장한다는 점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예 서사의 기승전결을 포개놓은 곽경택의 <사랑>을 거론한다는 것은 구차한 일이다. 여기에선 (당연히)여성은 죽고 그것에 더해 남자도 기꺼이 그 길을 택한다. 영화에서 주진모의 마지막 제스추어와 그 순간을 붙잡아 두려는 곽경택의 프리즈 프레임, "이 환상에서 깨져버릴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남자의 저 처절한 몸부림. 이것을 영화 바깥에서 보면 마치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거의 한국 영화의 자멸을 보는 듯 하다.

물론 최근 한국 영화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영화계에 중심에 있는 중견감독들의 신작들이 하나같이 전작에 비해 미학적으로 한발짝도 나아가지도 못하고 더군다나 같은 얘기를 비슷하게 변주해 나간다는 점은 관객의 한사람으로 거의 절망적이라 할 만하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더이상 할 얘기가 없다면 나 역시도 그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이것이 관객을 현혹시키고 또한 그것을 소비하게 만드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한 것이라면 이제 더이상 그들의 새로운 영화를 볼 일은 아마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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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d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걸 글이라고..ㅉㅉㅉ

    2007.11.05 14:26
  2. ddd2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 따진다면 온 세상은 남성을 도구화한 영화로 가득차 있습니다. 남성이란 이유로 그냥 당연시 되는 것들..너무 많지 않습니까.

    2007.11.05 15:33
  3. ddd3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휴.....................................ㅜㅜ
    너무나 소중한 글입니다. 왜 아직 우리 남성 감독들은 케케묵은 여관방 감수성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답답할 따름이에요.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심지어 새로운 남성성 모델이라고 매스컴이 그렇게 떠들어대는 강동원이 M에서 사용되는 방식만 봐도 한국 영화계는 여전히 답보중이라는게 아이러니하게 드러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답답해요..

    2007.11.05 18:00
  4. hdfkg,d  수정/삭제  댓글쓰기

    M에대해선 할 말씀이 없으셔야 할 듯....중요한걸 이해하지도 못하고 글을 쓰다니...ㅠㅠ M에서 강조하고 있는것만 빠뜨리고 얘기를 하고 계시니 저야말로 답답하네요...ㅠㅠ

    2007.11.05 22:18
  5. 흠..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서 언급된 영화를 모두 보지 않은터라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ㅎㅎ 다만 영화를 너무 여성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셔서 많은 남성분들이 불만을 토로하실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별거가지고 다 따진다고 하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 같지만 영화든 무엇이든간에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맘에 드네요~
    다만 전체적으로 글이 너무 딱딱하고 어려워서 쉽게 읽히지는 않는군요. 그래서인지 우디님에게 그 영화가 왜그리도 끔찍했는지 공감하기가 힘듭니다. 아..역시 영화를 보지 않아서겠죠?^^;; 아무튼 잘 읽고 갑니다~좋은 글 많이 쓰세요~

    2007.11.06 01:11
    • Favicon of https://neoimages.tistory.com BlogIcon woodyh98  수정/삭제

      제가 쓴 글이 아니지만 대답을 드리자면요, 남성적 시선에 갖힌 판타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류태희 필지가 제기한 것이지요. 또 두 영화 다 전작과 미학적으로 발전한 것이 없지 않느냐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대로 다양한 시각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2007.11.06 03:03 신고
  6. 쩝.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딜가도 패미가 문제구만. 왜 사람과 사람의 일로 보지 않고 남자와 여자로 양분해서 세상을 보지? 이게 흔히 말하는 여자들의 패거리 문화인가? 주인공의 성별이 서로 바뀌었다면 그건 남자에 대한 폭력인가?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이 얼마나 비논리적인가를 보여주는 글.. 페미들은 정말 지겨워 페미야 말로 남녀차별의 원흉이지.

    2007.11.06 01:18
  7. ddd4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여자라서 공감가고 남자들은 공감이 안가는가보군요. 흠님 댓글읽고 써봅니다. 이 글이 너무 여성적인 시각으로 본다라.. 단지, 영화에서 너무 남성의 판타지만 강조한다는 생각을 쓰는 것만으로 시선이 여성적인건가..? 그것이 패미라는건가? 이게 편견인가? -_-; 나 참.

    2007.11.06 01:21
  8. 쩝.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치 이글에 반대하는 의견은 남자라서 그렇다는 원천봉쇄를 하고 있네요. 남성적인 판타지? 이 영화 어떤 부분이 남성적인 판타지인지? 자기를 지고지순으로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여자가 있다는게 남성적인 판타지인가? 만약 지고지순하게 기다려주는 남자였다면 이건 여성적인 판탄지라고 욕할라나? 그냥 자기가 기분나쁘면.. 자기랑 비슷한 사람이면, 자기랑 같은 성이면 즉 손해좀 보는것 같으면 상대성의 판타지이구만.. 그걸 모르고 꼭 남성과 여성으로 이분해서 보는것 그게 페미. 사람과 사람의 일로 보시오.

    2007.11.06 01:38
  9. Kirk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한데 각종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쓰이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여성적인 판타지죠? 쓰레기같은 여성적 판타지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할 의향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가치관과 비판의식을 갖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다만, 편협하고 편향적인 시선으로 어느 한쪽만의 일방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면 거기서부터 공감을 얻기가 힘듭니다.

    2007.11.06 07:27
  10. 관객  수정/삭제  댓글쓰기

    둘 다 나름 재밌게 본 관객으로서 다소 불쾌하네요. 물론 전 여자.. ㅎㅎ 이 글 쓰신 분은 아마도 여자분이시겠죠?? 이 글은, 같은 여자로 하여금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 참으로 답답하네요.. 왜 세상을 꼭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서 보시는 건가요?? 그리고 <행복>에서.. 글쎄요.. 전 은희가 그 집에서 혼자 계속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던데요?? 제가 영화를 잘못 본 건가요?? 전, 은희가 그 뒤로 어떻게 살았을까.. 아마도 희망원에 다시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살았던들 그게 무슨 대순가요? 여자, 남자를 떠나서,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단지 그것뿐인데.. 부디 '여성'의 시각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여성'이 아닌 '우리'로서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 비로소 남성으로부터도, 또한 같은 여성으로부터도 진정으로 인정 받는 패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2007.11.06 09:52
    • Favicon of https://neoimages.tistory.com BlogIcon woodyh98  수정/삭제

      이 글의 필자는 남자입니다. 페미니스트도 아니고요. 필자가 비판을 하는 건 소재나 주제가 아니라 감독이 영화 안에서 여성을 가둬두기 위하 파놓은 형식들이랍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2007.11.06 20:00 신고
  11. 뭐라는거야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영화의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딴지건다는게 말이 되는가?
    어떤 소설의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딴지건다는게 말이 되는가?
    수많은 예술이나 과학 들의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따지는 건 종교주의자들과 님같은 페미들이다.
    예술은 있는 그대로 봐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명작도 있고 졸작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당신처럼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비평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예술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2007.11.06 10:25

[사랑] 자기 연민의 처절한 과거

필진 리뷰 2007.09.24 11:49 Posted by woodyh98
2007.09.23


곽경택의 [사랑]은 전작의 자장안에 있는 영화이다. [친구]를 넘어서고 싶은 감독의 의도야 어찌되었든 [사랑]은 [친구]의 변주이면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서사구조를 곽경택식으로 고스란히 껴안는 영화이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일관적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감독이 흔하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사랑]은 신파 멜로라는 특성상 루즈할 수 있지만 흥미로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곽경택의 과거는 ‘자기 연민’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연민의 첫 출발은 ‘부재’에서 시작한다. [친구]의 경우 부재한 아버지(들)을 친구에게서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사랑]은 아버지의 부재를 친구에서 찾지 못하자 사회의 권력 관계안에서 찾고 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부재하며, 어머니를 경멸의 상대와 애증의 상대로 그리고 있다. 어머니가 없을 경우에는 그 자리에 여자 친구가 나타나 유렁처럼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우고 근친상간이 일어난다. 남자는 아버지를 질투하고 어머니를 탐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비극은 어머니와 동반자살하거나 어머니를 부정하고(혹은 여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자기 눈을 찌르는 오이디푸스처럼 자멸하게 된다. 세상은 눈뜨고 태양을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비참한 곳이었다.

‘자기연민’의 두 번째는 자기삶의 부정이다. 곽경택의 과거는 얼핏 보기에는 향수로 느껴진다. [친구]에는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이나, 의상, 자갈치 시장, 재개봉관의 아스라한 추억들에 시대의 증거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반면 [사랑]에서는 그 코드들이 최대한 절제되면서 과거를 새롭게 재편성한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그 시대의 상징물은 ‘켄터키 치킨’정도? 곽경택의 과거는 보편적인 과거가 아니라 사적 소유물이라고 보는게 더 편할 듯 하다.

특히나 [사랑]은 인호를 중심으로 미주와 함께 했던 과거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과거는 향수이기 이전에 사적인 소유물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인호가 미주를 처음 만났던 시간과 공간이 영화안에 남고, 다시 점핑했을 때 인호가 미주를 위해서 한 몸을 불살랐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곽경택의 과거는 찬란하지 않고 비루하다. 친구는 창녀처럼 살아가는 어머니를 껴안고 집에 불을 질러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인호가 사랑하던 미주는 부모가 남기고 간 빚 때문에 깡패들에게 겁탈당한다. 인호는 그 과거가 차마 지울 수 없는 상처다. 그래서 스스로 연민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불쌍해 한다.

특이한 건, 이 영화안의 주체는 인호이지만 정작 인호 자신만의 과거는 없다는 점. 이 영화에서 인호의 성장담은 고스란힌 담기지 않는다. 이를테면, 인호와 미주의 과거나 인호와 상우의 과거는 존재하지만 인호의 가정사나 인호의 성장담은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어떤 이유에서 건, 그 시대를 살았던 인호는 자기 시간을 시대에 차압당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인호는 자기 몸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시간에 끌려다니고, 암묵적으로 시대가 강요하는 체제와 질서속에서 반항아적으로 살아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곽경택은 과거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건 인호의 역사다. 인호가 한 말 “지랄같네 ...사람인연”, 왜 지랄같은 시대에 이들은 살아야만 했고, 지랄같은 인연이 괴롭혔던 것일까? 풀 수도 없는 풀기도 싫은 숙제일 뿐.

[사랑]은 너무나 신파적이다. 또한 너무나 과거에 얽매있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결말에서 인호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건 이상하게도 실존주의적인 태도다. 자기 삶을 한 번도 산 적이 없었던 인호가 스스로 절벽아래로 떨어지는 모습. 곽경택은 그 장면을 엔딩으로 택했고, 정지된 화면으로 오랫동안 보여준다. 곽경택의 마초이즘은 화려함을 위장하지만 한번도 화려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묵직하고 절제되어왔던 게 아닐까 싶다.

사시미가 육체를 짓이기고, 폐쇄된 공간(가장 자주 등장하는 건, 얼음창고인데 [친구]나 [사랑]모두에서 그 만의 공간 활용이 인상적이다.)에는 오리털이(오리털 점퍼에서 삐져나와 휘날리던 오리털은 이상하게도 홍콩 느와르의 변종처럼 보인다.) 휘날린다. 곽경택이 달라진 점이라면 빈번한 칼부림에서 절제된 단 한 번의 칼부림으로 수위를 낯추었다는 점이다. 그만의 액션은 무엇일까? 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한 영화라면 [사랑]이 더 제격일 듯 하다. 그래서 신파멜로 [사랑]을 읽기보다는 액션의 자기세계를 구축하는 곽경택의 [사랑]으로 보는 건 어떨 까? 액션에 대해서는 무지한 지라,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다른 분들이 더 잘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곽경택의 영화는 늘 기대이상은 아니었지만, 그의 세계는 늘 흥미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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