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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인디스토리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1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다. 일찌감치 초대장이 왔고 만사 제치고 참석하리라 마음먹었던 터라 정시보다 조금은 일찍 도착했지만 아뿔싸! 드문드문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전부라니. 곽용수 대표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는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예정된 인물들이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기야,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느려터진 낙원상가 엘리베이터가 아니던가. 7시에 가까워지면서 안내 데스크에서 손님을 맞는 곽용수 대표의 얼굴은 환해졌다. 불과 20여분 전만하더라도 초조한 표정으로 안팎을 연신 오가던 그였다. 어둠이 깔린 낙원상가 옥상 넓은 공터에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일인 양 들뜬 표정으로 축하인사를 건넸고 독립영화계에 내노라하는 감독들과 영화인들이 하나 된 ‘인디스토리 10주년의 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엄숙하고 격조 있는 여타 기념식과는 달리 흥겹고 자유로운 가운데 치러진 이날 행사는 지난 10년을 추억하고 미래를 기약하는 자리로서 손색이 없어보였다. 마치 만담을 주고받는 듯한 사회자의 격의 없는 진행은 자유와 상상 그리고 거침없는 발언의 독립영화정신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으니, 때론 차분하게 또 때론 생뚱맞은 유머로 좌중에 웃음을 선사하며 화기애해한 분위기를 만들기 충분했다. 곽용수 대표의 환영사에 이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의 축사와 인디스토리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곽 대표의 오랜 영화적 동지인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집행위원장의 회고담과 축사가 이어졌고, 인디스토리 직원 소개와 기념영화제 브리핑을 마친 후 드디어! 기념 영화가 상영되었다.

애니메이션계의 스타 장형윤 감독이 만든 ‘오! 인디풀영화제’의 트레일러는 특유의 상상력과 수채화 풍의 빛깔이 잘 어우러진 담백한 영상이었고, “급하게 찍었기에 완성된 편집본이 아님을 양해바라고, 할 말이 있으면 제 블로그에 댓글로 남겨 달라”던 윤성호 감독의 <인디스토리 10주년 기념영화>는 예상대로 재기발랄함과 날카로운 시대의식이 두루 가미되었는데, 따뜻함을 배경으로 삼아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장센과 인디스토리가 배급한 영화들의 한 컷을 모아 나열한 후반부는 한 배급사의 연혁을 되짚고 기념하기에 충분한 연출이었다. 또한 안국동에서 경복궁에 이르는 길 위의 두 연인을 통해 인디스토리의 족적을 밟아가는 서정적 영상과 웃음 한 방이 돋보인 김종관 감독의 <올 가을의 트렌드>는 단편영화의 묘미를 한껏 보여주기도 하였다. “한국영화계가 힘들다고 말하지만 단편영화는 이와 무관한 것 같다. 내 돈으로 찍으면 된다.”는 김종관의 모두 발언은 무차별적으로 남의 돈 끌어다 대작영화와 흥행지상주의에 매달려온 충무로제작사들의 구태로부터 한국영화산업의 위기가 발로했음을 감안할 때 충분히 시사적이다.

짚고 넘어갈 점은 이번 행사에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진위가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 하고, 예년의 참석 사례를 기억할 때 아마도 가장 많은 초청장을 보냈을 게 틀림 없다. 물론 범세계적 경제위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현실에서 또는 오바마의 미국 자동차산업회생정책과 한미FTA 조기 비준처리를 놓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국면을 맞은 작금의 정치경제상황 하에서 일개 독립영화배급사의 생일잔치가 별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차라리 가수 비가 “불탄 가족사진을 찾았다”는 시답지 않은 기사나 세계대회 2연패를 위한 박태환의 훈련재개 소식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고, 아니면 강만수(한 때 아시아배구를 호령했던 거포 강만수가 아니다)가 오늘은 또 무슨 망언을 했는지, 혹은 유동성을 확보하라고 자금을 지원했더니 그 돈을 꼭 쥐고 앉아 중소기업대출을 묶어버림으로써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려는 금융기관의 꼼수를 보며 낄낄거리는 것이 더 구미를 당길 런지도 모르겠다. 보다 범위를 좁히면 양심수의 독방보다 좁아져버린 유인촌 장관의 입지만큼이나 벼랑 끝에 선 영화진흥위원회의 현재를 고려할 때, 독립영화배급사의 생일파티보다는 발등의 불끄기에 급급한 내부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혹여 행사장에서의 발언이 구설수를 낳을까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범영화인들과의 접촉과 소통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처럼 ‘인디스토리의 밤’이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가운데 진행된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귀퉁이가 비어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2007년 12월 서울독립영화제개막식이 열리던 날 저녁, 교통체증을 돌파하고 도착한 차에서 내려 황급한 걸음으로 식장에 입장하던, 2008년 1월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영화제’에 직원들과 함께 참석하여 축사를 건네던 안정숙 前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정녕, 영화는 영화일 뿐일까? 영화계만이라도 변하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1%의 독립영화시장을 소홀히 하는 영진위의 이해 못할 처신에서 상위 1%를 위한 이명박 정부가 떠오른다면 억지스런 발상일까. 그래도 아니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더 열심히 영화로 투쟁해야한다”는 조영각 위원장의 말이 가슴 절절하게 와 닿은 인디스토리의 밤이었다. 갑작스레 차가워진 밤공기에 답답한 마음을 삭인 후 나는 방명록에 또박또박 적었다. “20주년 기념식 때도 꼭 오겠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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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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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인디스토리 10주년과 ‘오! 인디풀’ 영화제에 부쳐

지금 시대에서야 무의미한 얘기일지 몰라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고, 10년은 한 길을 파야 뭐가 되도 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한길로 10년을 버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90년대 100대 기업 중 20개 회사만이 현재까지 살아남았다는 통계자료가 있듯이, 회사를 세우고 인력관리를 통한 매출 신장과 잉여가치의 증대, 게다가 국가 사회적 책무까지 감당해야 비로소 성공한 기업이라 인정받는 무한경쟁 시대에 영화산업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숱한 영화사와 배급사들이 야심차게 세워졌다 무너지기를 반복해온 지난 10년 간 독립영화배급이라는 척박한 시장에 뛰어들어 오늘에 이른 배급사가 있다. 오는 11일로 설립 10년을 맞이하는 인디스토리다.

10년이라! 한국독립영화협회도 올해로 창립 10년이 되었으니 둘은 일란성 쌍둥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이다. 1998년 당시 문화학교서울의 멤버들 중 몇몇이 그해 여름부터 독립영화배급에 대한 논의로 한 달 간의 트레이닝을 가졌고, 찬반양론이 분분한 가운데 해외배급에 관심이 있던 멤버를 모아 11월 경 정식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인디스토리의 효시이다. 지난 10년간 인디스토리의 필모그래피를 간략하게 짚어보면 독립영화배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대학로에서 매춘하다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를 필두로 독립다큐멘터리의 신기원을 이룬 <송환>을 비롯해 <눈부신 하루> <살결> <상어>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은하해방전선> <쇼킹패밀리> <궤도> <나의 노래는> <여기보다 어딘가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독립장편영화들이 인디스토리의 손을 거쳐 관객과 만났고, 독립단편의 경우는 인디스토리의 배급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배급분야에 머물지 않고 수입과 제작 유통까지 그 영역을 넓혀 왔는데, <눈부신 하루>와 <팔월의 일요일들> <지구에서 사는 법>등을 자체 제작으로, MBC드라마넷과는 합작품 <판타스틱 자살소동>을 내놓기도 하였다. 영화수입으로 눈을 돌리면 <미안해>와 <달빛속삭임> 그리고 수익창출에 톡톡히 기여한 <애프터 미드나잇>을 수입 개봉시킨 바 있다. 이처럼 인디스토리의 역사는 한국독립단편영화 배급의 역사와도 맞물리고 장편 또한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이렇듯 10년을 쉼 없이 독립영화배급에 힘써온 인디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곽용수 대표이다. 사당동 문화학교서울의 사무국장시절 인디스토리를 탄생시킨 그는 전형적인 시네필이었고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 열광했던 소위 ‘큐브릭빠’였다.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문화학교서울에서 발간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곽용수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터인데, 버스터 키튼, 알프레드 히치콕, 프리츠 랑,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소개와 해설을 도맡아 썼을 정도로 그의 영화지식과 안목은 도저(到底)하다. 과거의 시네필에서 오늘의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했지만 여전히 영화보기에 목말라하고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회고전을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시네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적절하려나?

사실 곽용수 대표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몇 해 전이던가,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해운대의 설렁탕집에서 그를 보았고, 또 전주국제영화제 때는 콩나물국밥으로 유명한 ‘삼백집’에서 마주치기도 하였다. 물론 인터뷰 석상에서 또는 극장에서 무수히 만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는 배급사 대표보다는 영화광의 이미지를 품고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네오이마주 3주년 모임에 참석해 “우리 영화제도 꼭 오라”던 그의 표정에는 기대와 설렘이 담겨있었다. 겉으로는 무덤덤해 보여도 10주년을 맞는 감흥이 왜 남다르지 않겠는가!

인디스토리의 지난 10년이 독립영화전문배급사로 대내외에 이름과 역량을 알리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안정적 배급과 더불어 해외세일즈를 강화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마케팅팀을 보강한 것도 이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인디스토리가 소망하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독립영화 네트워크의 조직, 그러니까 서로의 배급관계 또는 공동제작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이 가시화된다면 인디스토리의 영토는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일이란 단순히 영화를 좋아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뜻은 품었으되 시작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고 마음먹는다고 뜻대로 되는 일도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극심한 환경인 때문이다. 한마디로 돈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업수완과 탁월한 시장 판단력 못지않게 끈끈한 인간관계와 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영화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과 사회적 사명감이 보태지지 않고서는 첫 발 떼기도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맙게도 인디스토리는 지난 10년의 굴곡을 잘 견뎌주었다. 그래서 오늘이 있고 그것을 자축하는 영화제까지 열 수 있게 되었다. 인디스토리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훗날 20주년 영화제는 곽용수 대표의 바람처럼 자체 극장에서 열리게 되길 바란다. 어쩌면 이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덕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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